제5화 그의 가면을 벗기다
- 이것은 엄격히 따지면 임금을 속인 것이다. 목을 벨 만큼 큰 죄다!
- 아니, 가족 전체가 참수당할 수도 있다!
- ‘이걸 어떡하나?’
- 소지우는 등골이 오싹하고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느낌이 들었다.
- 두 다리에 힘이 빠진 그녀는 그대로 털썩 무릎을 꿇었다.
- “알면 됐다.”
- 영진은 겁에 질려 창백해진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눈가에 언뜻 웃음을 스치고 차갑게 말했다.
- “네 목은 잠시 놔뒀다가 어느 날 네가 또 잘못을 저지를 때 함께 따져서 잘라 버릴 것이야!”
- “그러지 마세요. 폐하!”
- 소지우는 황급히 소리쳤다.
- “저는 단지 가족을 먹여 살리기가 막막해서 돈냥이나 좀 벌어 보려고 그랬을 뿐이에요. 정말 속일 생각은 없었어요. 제발 명을 거두어 주세요!”
- “가족을 먹여 살린다고?”
- 영진은 말에서 뛰어내려 훤칠한 몸으로 소지우의 앞에 우뚝 서며 미간을 찌푸렸다.
- “네 집에 또 누가 있느냐?”
- “…”
- 소지우는 상대방의 강한 살기에 겁을 집어먹고 부들부들 떨며 말까지 더듬거렸다.
- “의지할 곳이 없는 유모가 있어요.”
- “다른 사람은 없느냐?”
- 영진은 눈썹을 찡그렸다.
- “…”
- 소지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 “없어요.”
- 영진은 눈길을 거두고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서 저도 묻고 싶어요.”
- 소지우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 “말을 치료하는 것과 장병들을 치료하는 게 대우가 같나요?”
- “무슨 뜻이냐?”
- 영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 “저는 빨리 많은 돈을 벌어야 해요. 가족들은 제가 돈을 벌어 오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 소지우는 용기를 내었다.
- 그녀의 여린 모습은 더없이 가여워 보이고 청순한 아름다움은 사내 옷차림에도 전혀 가려지지 않았다.
- 마치 그날 밤 그가 미친 듯이 짓밟은 여인처럼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가냘프면서도 아름다운 느낌이 들었다.
- 영진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럼 똑같이 대우해 주마.”
- “고마워요. 보스.”
- 소지우는 기쁨을 금할 수 없어 손뼉을 쳤다.
- 막 말에 올라 떠나려던 영진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 “뭐라고 했느냐?”
- 소지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 “보스라는 것은 우두머리, 제일 높은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 영진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눈살을 찌푸리고 말에 채찍질하며 떠났다.
- 10여 필의 전마가 그의 뒤를 따라가며 흙먼지를 뽀얗게 일구었다.
- …
- “야, 새로 온 놈!”
- 뒤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 소지우는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이 옆에 있는 기와집에서 나왔다. 차림새를 보면 말 사육사 같았다.
- “하이, 형제들, 안녕.”
- 소지우는 얼른 그들에게 인사했다. 어쨌든 남의 집 처마 밑에 있으니 모르는 척할 수 없었다.
- “이쇠 장군이 너는 여기서 놀아도 된다고 했다.”
- 두 사람 중에서 키가 작고 뚱뚱한 사내가 야릇한 목소리로 말했다.
- “그러니까 네가 할 일을 우리가 나누어서 하는 셈이지.”
- 소지우도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았다.
- “세상에 어디 공짜로 해 주는 일이 있겠느냐?”
- 이번에는 키가 크고 마른 사내가 입을 열었다.
- “그러니 넌 형제들에게 고마워해야 하지 않겠느냐?”
- 소지우는 이 두 사람이 사례금을 받으려 한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 하지만 지금 그녀의 몸에는 은자 세 냥밖에 없었다. 그것도 하루 일이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 아이들에게 떡을 사다 주려던 돈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들에게 사례하면 떡이 없어질 것이 아니겠는가?
- “오늘은 안 될 것 같아.”
- 소지우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무의식중에 품속의 염낭을 가렸다.
- “닥쳐라.”
- 뚱보가 발끈했다.
- “규칙을 모르는 것이냐? 아니면 우리 체면을 무시하는 것이냐?”
-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것이냐?”
- 말라깽이는 아예 소매를 걷어붙였다.
- “내가 직접 들춰 볼까?”
- 소지우가 어찌 이 사내들이 직접 자기 몸을 들추게 내버려둘 수 있겠는가? 그러면 그녀가 여인이라는 사실이 바로 들통나지 않겠는가?
- 눈앞의 손해부터 피해야 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은자 세 냥을 꺼내어 두 사람 앞에 던졌다.
- 그리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녀는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서 얼른 마구간으로 들어갔다.
- 날이 저물고 마침내 하루 일이 끝났다.
- 식량을 나르는 마차를 타고 성안으로 돌아온 소지우는 텅 빈 주머니를 만지며 슬픔을 금할 수 없었다.
- 무슨 돈으로 소묵과 소봉에게 떡을 사다 준단 말인가? 무슨 돈으로 유모 문씨에게 풍습 통증을 누그러뜨리는 고약을 사다 준단 말인가?
- 소지우는 홀로 터벅터벅 걷다가 문득 길가의 여의술집 앞에 잡일을 할 사람을 찾는다고 써 붙인 글을 보았다.
- 그녀는 두 눈을 반짝 빛내며 재빨리 술집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 “지금부터 문을 닫을 때까지 일하면 은자 한 냥을 주지.”
- 술집 주인이 말했다.
- “한 냥이요?”
- 소지우는 손가락을 내밀었다.
- “그러나 저는 세 냥이 필요해요.”
- “어이가 없군.”
- 술집 주인은 그녀를 흘겨보았다.
- “이 일을 하겠다는 사람은 많고도 많으니 하기 싫으면 어서 물러가거라.”
- “제가 할게요!”
- 소지우는 마음속으로 일단 한 냥만 있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먼저 문씨에게 고약을 사다 주고 아이들의 떡은 내일 사도 되지 않겠는가? 소묵과 소봉은 그래도 철이 들어서 괜찮았다.
- 그녀는 연거푸 대여섯 개의 방에 어지럽게 널린 그릇을 치우고 마지막으로 3층에 이르렀다. 3층의 가장 호화로운 방에서는 두 사내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 “방금 떠난 사람은 여섯째와 넷째입니다. 짐작이 맞았습니다. 역시 그들은 여기서 음모를 꾸몄습니다.”
- “응.”
- 나지막하고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 “한송아, 너 얼른 사람을 데리고 성 밖으로 나가서 그들의 누구를 만나는지 지켜보거라.”
- “네.”
- 한송은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새매처럼 몸을 날려 창문으로 날아 나갔다.
- 소지우는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널따란 방에서 검은색 옷차림의 훤칠한 사내가 창문을 마주하고 서 있었다.
- 그 사내는 방금 누구와 한바탕 싸웠는지 사치스러운 옷이 찢어져 밤바람에 나부끼며 근육질의 등이 드러났다.
- 곧 X 모양의 흉터가 소지우의 눈에 들어왔다.
- ‘이 흉터는…’
- 4년 전의 그날 밤, 소지우는 자기 순결을 빼앗은 그 염라대왕의 등에서 이런 X 모양의 흉터를 만졌다. 그녀는 이 흉터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이미 낙인처럼 머릿속에 새겨져 있었다!
- 바로 이 흉터의 주인 때문에 그녀는 처녀의 몸으로 임신하고 온갖 손가락질을 받으며 허름한 토담집에서 오누이 쌍둥이를 낳았다.
- 물론 아기들은 아주 귀여웠다.
- 그러나 그녀는 갖은 고생을 다 했다.
-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여인은 아무래도 힘들다. 그녀는 지금도 은자 세 냥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지 않는가?
- “염라대왕, 너였어?”
- 치욕과 분노가 한꺼번에 치밀어 올랐다. 소지우는 들고 있던 행주를 바닥에 버리고 쏜살같이 달려가 사내의 어깨를 잡았다.
- 이 사내는 어쨌든 그녀 아이들의 친아버지이다. 그녀는 이 사내가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