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그 사내를 다시 만나다
- “4년 뒤 현국 강성의 성 밖.
- “어머니, 배고파요. 밥 주세요.”
- 길가에서 예쁘게 단장한 계집애가 고개를 쳐들고 소박하면서도 정갈한 여인의 치마를 잡아당기며 어리광을 부렸다.
- 그녀들의 옆에 서 있는 사내아이는 이목구비가 반듯하고 두 눈이 별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크면 틀림없이 빼어나게 잘생길 얼굴이었다.
- 사내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까만 눈으로 여인을 간절히 쳐다보기만 했다. 분명히 자기도 배고프다는 표정이었다.
- “알았어. 우리 지금 먹자.”
- 소지우는 방긋이 웃으며 보자기에서 떡 두 조각을 꺼내어 아이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 “어머니, 고마워요!”
- 누이 소봉은 쩝쩝거리며 맛나게 먹었다.
- “어머니, 감사해요.”
- 오라버니 소묵은 점잖고 두 눈이 초롱초롱했다.
- 소지우는 빙그레 웃었다. 기분이 아주 좋았다.
- 지난 4년간 비록 고생스럽기는 해도 두 아이의 존재가 그녀의 삶에 많은 즐거움을 주었다.
- 게다가 그녀는 다른 세계의 의학 지식으로 여기 시골에서 의사 노릇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먹고살 걱정은 없었다.
- 하지만 인제 아이들이 공부할 나이가 되었는데 시골에는 학당이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지금 문씨와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시골을 떠나는 길이었다.
- 탁탁!
- 앞의 산길에서 갑자기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 소지우는 문씨에게 눈짓했다. 곧 두 사람은 아이들을 하나씩 안고 풀숲에 들어가 몸을 숨겼다.
- 멀지 않은 곳에서 얼굴을 가린 사내 10여 명이 한 사내를 에워싸고 있었다.
- 소지우는 대뜸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 청총마를 탄 사내는 몸매가 훤칠하고 기세가 사나웠다.
- 그 사내는 차갑고 음산한 지옥의 염라대왕 가면을 쓰고 있었다.
- 휙!
- 사내의 등에 검 빛이 스쳤다. 순간 금실로 수놓은 두루마기가 찢어지며 붉은 피가 튀었다.
- 그리고 근육질의 등에 X 모양의 흉터가 드러났다!
- ‘엉? 저 사람이? 어떻게 여기서 저 사람을 만날 수 있지?!’
- 소지우는 눈앞이 아찔하며 등골이 서늘했다.
- 이 사내가 바로 그녀의 순결을 빼앗은 범인이고 지금 그녀가 안고 있는 아이들의 아버지였다!
- 쟁강쟁강!
- 사내는 7척의 청봉검으로 10여 명의 자객과 싸우고 있었다. 검 빛이 번뜩이며 자객 한 명이 쓰러졌다.
- “아!”
- 소봉은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소지우는 얼른 소봉의 입을 막았다.
- 탁!
- 또 한 명이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나머지 자객들은 황급히 도망쳤다.
- 갑자기 멀리서 말 네 필이 흙먼지를 뽀얗게 일구며 달려왔다.
- 그들은 재빨리 말에서 내려 청총마 앞에 무릎을 꿇었다.
- “저희가 늦었습니다. 벌을 내려 주십시오!”
- “일어나거라!”
- 영진은 시원스럽게 손을 흔들었다.
- 그리고 소지우가 있는 이쪽을 힐끗 보았다.
- 밤하늘의 별처럼 차가운 눈동자에 살기와 의심이 번뜩이었다.
- 그는 문득 낯익은 얼굴을 본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사방을 둘러보아도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 소지우는 그들이 말에 채찍질하며 멀리 떠난 뒤에야 넋을 잃은 표정으로 문씨를 부축했다.
- “어머니, 방금 그 사람은 누구예요? 그 사람들은 왜 여기서 싸운 거예요?”
- 소묵은 앳된 얼굴을 쳐들고 소지우를 바라보았다. 잘생긴 얼굴에 약삭빠르고 용감한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 “그 사람들은…”
- 소지우는 눈빛이 염라대왕을 빼닮은 소묵을 보며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녀는 소묵의 물음에 어떻게 대답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 “어머니, 봉이는 무서워요.”
- 소봉은 작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 “그 사람들은 많은 피를 흘렸어요…”
- “어서 갑시다!”
- 문씨는 짐을 지고 일어섰다.
- “얼른 여기를 떠나야 합니다!”
- 일행 네 사람은 서둘러 성으로 들어갔다.
- 소지우는 머물 곳을 마련하고 곧장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 지금 그녀는 네 사람이 먹고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무엇보다 급했다. 몸에 남은 은자 열몇 냥으로는 며칠밖에 버티지 못할 것이다.
- 그녀는 서른세 번째 가게에서 거절당한 뒤에야 좋은 기회를 만났다. 능력이 있고 경험이 풍부한 어의 정영이 급히 의원 30명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었다!
- 이것은 그녀의 마음에 딱 드는 일자리였다!
- 그녀는 다른 세상의 의대에서 한의학과 양의학을 모두 전공한 수재였다.
- “정 어의는 사내 의원만 모집합니다.”
- 방을 붙이는 사환이 말했다.
- “아씨는 왜 그리 좋아하십니까?”
- “사내?”
- 소지우는 어리둥절했다.
- “왜 꼭 사내여야 하죠? 여 의원은 뭐가 부족하나요?”
- “여 의원에게 무엇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 사환이 말했다.
- “저도 궁의 심부름꾼들에게서 들은 말인데 이번에 의원을 모집하는 것은 장병들을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들은 종군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흘이 되도록 겨우 몇 명밖에 모집하지 못했답니다.”
- “장병?”
- 소지우가 말했다.
- “그럼 군의관을 모집한다는 거예요?”
- 사환은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잠깐 생각한 뒤에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런 셈입니다.”
- “군의관이 좋죠.”
- 소지우는 기분이 좋아 손뼉을 치며 미간을 찌푸렸다.
- “군의관은 대우가 높고 철밥통이잖아요!”
- 사환은 그녀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 입을 삐죽거리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가 버렸다.
- 소지우는 곧장 사람들 틈을 뚫고 나와 장터로 달려갔다.
- 조금 뒤, 그녀는 청포 두루마기 차림에 두건을 쓰고 정영이 의원을 모집하는 장소로 면접을 보러 갔다.
- 역시 사환의 말대로 정영이 의원을 모집하는 장소에는 방문객이 한 명도 없었다.
- 소지우는 두건을 바르게 쓰고 약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 그러나 그녀가 얼굴을 들이밀기 무섭게 사동이 다짜고짜 그녀의 팔을 잡고 안으로 끌면서 소리쳤다.
- “나리, 마침내 한 명이 왔습니다!”
- “어서 안으로 모시거라!”
- 곧이어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옷차림이 화려한 노인 한 명이 휘청거리며 걸어 나왔다.
- “뭐 하는 거예요?”
- 소지우는 의아했다.
- “얼른 이거 놔요. 저는 지원하러 온 사람이지 도둑이 아니에요.”
- “바로 이분입니다.”
- 사동이 말했다.
- “정 나리께서는 아직 한 사람이 모자라서 사흘 동안이나 밤잠을 주무시지 못했습니다!”
- “마침내 30명을 채우게 되었군.”
- 정영은 바로 소지우의 손목을 잡았다.
- “서른 명을 채우지 못하면 내 목이 날아갈 것이야!”
- 소지우는 손목을 잡힌 그대로 천기영까지 끌려갔다.
- 정영은 단정하고 엄숙하게 말했다.
- “이따가 폐하께서 순찰하러 오실 터이니 모두 말과 행동을 삼가시오. 그러지 않으면 당사자는 물론 이 정영까지도 목숨을 잃게 될 것이오.”
- ‘폐하?’
- 소지우는 눈을 깜빡거렸다.
- ‘폐하는 어떤 사람이지?’
- 바로 이때 밖에서 황제가 도착했다는 전갈이 들어왔다!
- 소지우는 몸을 돌렸다. 멀리서 완전히 무장한 전마들이 흙모래를 뽀얗게 일구며 천기영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 위풍이 당당하고 살기가 등등했다.
- 곧이어 맨 먼저 들어온 가라말이 정영의 앞에서 두 앞발을 쳐들고 길게 울부짖었다.
- 순간 차가운 기운이 덮쳐 오며 사람들을 오싹하게 했다.
- 이 기운은 가라말 위에서 온 것이었다. 말 위에는 몸매가 훤칠하고 얼굴이 잘생긴 젊은 사내가 타고 있었다!
- 소지우는 그 사내의 얼굴을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 ‘저, 저 사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