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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머금은 밤

달을 머금은 밤

사색

Last update: 2025-03-19

제1화 지옥의 염라대왕

  • 칠흑같이 어두운 밤, 사내가 여인의 몸 위에 올라탔다.
  • 사내는 여인의 빨간 배두렁이를 잡아채어 옆에 던졌다.
  • 어둠 속에서 여인만의 아름다움이 드러났다.
  • 소지우는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웠다.
  • ‘내가 교통사고로 죽은 게 아니었나? 어떻게 여기 있는 거지?’
  • 그녀는 아련한 기억을 더듬었다.
  • 원래 여기는 3000년 전의 고대였다. 그녀의 아버지 소무는 여국의 대장군이고 어머니는 본 기억도 없었다.
  • 어젯밤, 장군부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녀의 아버지 소무는 적과 내통했다는 누명을 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숙부 소군 가족이 장군부를 차지했다.
  • 숙모와 사촌 여동생은 그녀를 붙잡아 약을 먹인 뒤 이춘원에 던졌다!
  • 곧이어 이 사내가 창문을 깨고 들어왔다. 원래 소지우는 수치심과 분노로 죽었다.
  • 그때 마침 그녀가 와서 소지우의 몸을 가졌다.
  • 가물가물한 의식 속에서 그녀의 가녀린 발목이 커다란 손에 잡혀 사내의 어깨에 걸쳐졌다.
  • 곧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다.
  • 아팠다!
  • 두 발에 부쩍 힘이 들어갔다.
  • 소지우는 바로 정신을 차리고 발칵 화를 내며 눈앞의 사내를 밀었다.
  • “개자식, 나가! 얼른 꺼져!”
  • 사내는 소지우가 의식을 잃은 틈을 타서 그녀의 몸을 차지하고 있었다!
  • 그러나 아무리 밀어도 사내의 가슴은 바위처럼 까딱 움직이지도 않았다!
  • 영진은 차갑게 웃으며 소지우의 손을 잡아 그녀의 머리 위로 올리고 꼼짝달싹 못 하게 눌렀다.
  • “기생 주제에 무슨 얌전을 빼는 것이냐? 나를 잘 모시면 좋은 점이 있을 것이다.”
  • 그는 말을 마치고 그녀의 몸을 더더욱 거세게 공격했다.
  • 소지우는 갑자기 왠지 모르게 몸이 뜨거워지며 말 한마디도 제대로 내뱉을 수 없었다.
  • 인제 더 이상 저항할 힘도 없는 그녀는 그냥 파도에 몸을 내맡기고 말았다.
  • 그녀는 이 몸이 왜 이렇게 나른해졌는지 알 수 없었다.
  • 사내의 몸에 밀린 무릎이 어깨까지 닿았다.
  • 그녀는 예전에 아무리 허리를 굽혀도 손이 발등에 닿지 못했다.
  •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사내의 불길이 서서히 꺼졌다.
  • 소지우는 어둠 속에서 영진의 등을 문지르다가 X 모양의 흉터에 손을 멈췄다.
  • “네놈을 기억할 거야!”
  • 그녀는 이를 갈며 말했다.
  • “반드시 이 원수를 갚을 거야!”
  • “너 사내가 처음이었느냐?”
  • 영진은 차가운 가면 속에서 나지막하게 웃었다.
  • “넌 이런 곳에 오지 말았어야 했다.”
  • 영진은 천천히 고개를 들고 지옥의 소리처럼 음산하게 말했다.
  • 순간 소지우는 영진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 그대로 굳어지고 말았다.
  • 정확히 말하면 그녀가 본 것은 영진의 얼굴이 아니라 차가운 가면이었다.
  • 가면에 가려진 얼굴에는 그윽한 눈동자와 차가운 입술만 드러나 있었다.
  • ‘설마 이놈이 지옥의 염라대왕인 거야? 아니면 숨결이 왜 이렇게 차갑지?’
  • “너 누구야?”
  • 소지우는 살기 띤 목소리로 물었다.
  • 영진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 “염라대왕이야.”
  • 그는 일어나 훤칠한 몸에 검은색 두루마기를 걸치고 창문으로 나갔다!
  • 창밖으로 네 귀가 번쩍 들린 지붕이 보이고 지붕 위의 하늘에서는 뭇별이 차갑게 반짝이고 있었다.
  • 지옥의 염라대왕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9개월 뒤.
  • 성밖의 한 허름한 토담집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기운차게 들려왔다.
  • “아씨, 나왔습니다. 나왔습니다. 오누이 쌍둥이입니다! 아씨께서 오누이 쌍둥이를 낳으셨습니다!”
  • 유모 문씨는 너무 기뻐 울먹거리며 말했다.
  • “보여 주세요.”
  • 소지우는 힘없이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 “아씨, 보세요. 아기들이 참 예뻐요.”
  • 문씨의 품에 안긴 아기는 옥으로 조각한 듯 예쁘고 귀여웠다.
  • 소지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그녀는 그날 아침에 일어나 곰곰이 돌이켜보았지만, 기억 속에 있는 것은 통틀어 그 차가운 가면 한 장과 손끝으로 느낀 X 모양의 흉터뿐이었다.
  • 지옥의 염라대왕 같은 그 사내의 존재는 아직도 사람인지 귀신인지 분별할 수 없었다.
  • 그때 그녀는 자기가 10개월 뒤에 틀림없이 두 명의 흉악한 귀신을 낳을 줄로 알았다.
  • 어쨌든 그녀의 몸에 씨를 뿌린 사람은 차갑고 음산한 지옥의 염라대왕이었으니까.
  • 하지만 지금 눈앞의 이 두 귀여운 아기는 분명히 인간이었다.
  • 아기들을 보는 순간 그녀의 걱정은 가뭇없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