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주장, 노아는 한태윤과 정반대였다. 한태윤이 ‘얼음 왕자’라면, 노아는 ‘어둠의 기사’라 불릴 만한 인물이었다. 거칠고, 효율적이고, 같이 일하기 아주 까다롭기로 악명 높았다. 지난 두 시즌 동안 팀 닥터만 세 명을 잘랐다.
소문엔 무능한 사람만 보면 질색한다나.
이메일을 열었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맴돌았다. 이력서는 필요 없다. 리그에서 내 평판이 다 말해주니까. 간단하게 제목만 쳤다.
제목: 근무 가능 여부.
타이탄스 단장에게 보냈다. 답장은 며칠, 길면 일주일 뒤에나 오겠지 싶었다.
노트북을 닫고 커피를 내리러 부엌으로 갔다가, 임신한 게 떠올랐다. 대신 물 한 잔을 따라 마셨다.
부르르.
카운터 위 폰 화면이 번쩍 켜졌다.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와 있었다.
[미확인: "테터보로 공항. 전용 4번 격납고. 한 시간 안에 와."]
미간이 찌푸려졌다. 누구지?
바로 다음 문자가 또 왔다.
미확인: "여권도 가져오고. - 노아."
숨이 턱 막혔다. 노아? 내 개인 번호를? 게다가 지금 뉴욕에 있다고?
말도 안 돼, 너무 위험하다. 라이벌 팀 주장을 만난 게 들통나는 순간 바로 배신자로 낙인찍힐 거니까.
하지만 딱이네.
가방이랑 여권, 늘 준비해 둔 메디컬백을 낚아챘다.
45분 뒤, 아우디를 4번 격납고 그림자에 댔다.
활주로엔 새까만 걸프스트림 전용기가 서 있었고, 엔진은 낮게 윙 하고 돌고 있었다. 계단 아래엔 남자 한 명이 서 있었고, 양옆엔 정장 차림의 경호원 둘이 버티고 있었다.
멀리서 봐도 노아가 뿜어내는 압도적인 분위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한태윤보다 한 키 더 크고 어깨는 훨씬 넓었다. 내 차보다 훨씬 고급일 법한 차콜색 수트를 걸치고 넥타이는 매지 않은 채 셔츠 윗단 단추 하나를 풀어, 그 아래 구릿빛 피부가 희미하게 드러났다. 어두운 머리는 뒤로 넘겨 날카롭고 거칠었다.
차에서 내려 그에게 걸어갔다. 바람이 머리카락을 마구 휘날렸지만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의 눈이 내 눈을 정확히 붙들었다. 폭풍구름 같은 날카로운 회색. 한태윤처럼 내 몸부터 위아래로 훑는 시선이 아니었다. 영혼까지 그대로 꿰뚫는 눈빛이었다.
“차유나 씨.” 그의 목소리는 공기까지 울리는 저음이었다. “시간 잘 지키네. 마음에 들어.”
난 가방 끈을 꽉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노아 씨, 이십 분 전 단장님께 메일 발송했는데, 어떻게 바로…”
“네 이름 알림 걸어 놨어.” 그는 담담하게 말을 끊었다. “우린 2년째 당신을 데려오려고 했거든, 편하게 차유나라고 불러도 돼?”
낯선 입술에서 내 이름이 나오는 순간,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추워서가 아니었다.
“그렇게 하세요.” 나는 말했다. “하지만 오해가 있는 것 같네요. 전 아직 글레이셔스와 계약 중이에요.”
“비자 스폰서에 묶인 계약이지.” 노아의 시선이 내 손가락의 반지로 스르르 내려갔다. “게다가 소문엔 조이권이 말을 듣지 않으면 지원을 끊어버릴 거라고 협박했다던데.”
눈이 커졌다. “그걸 어떻게 아세요?”
노아는 위험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난 이 리그에서 벌어지는 건 다 알아. 한태윤이 바보라는 것도, 조이권이 뱀 같은 인간이라는 것도. 그리고 네가 아니었으면 한태윤 무릎은 벌써 가루가 됐을 거라는 것도 말이지.”
그가 전용기 문을 가리켰다. “들어가자. 밖은 얼어 죽겠고, 넌… 안색이 안 좋아 보여.”
나는 머뭇였다. “두 시에 약속이 있어요. 도시를 벗어날 수는 없어요.”
노아가 잠시 멈칫했다. 그는 나를 똑바로, 제대로 보았다. 내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걸 읽기라도 한 듯, 눈빛이 아주 잠깐 누그러졌다.
“활주로 안에서만 있을게.” 그가 약속했다. “그냥 얘기만 하자.”
나는 그를 따라 계단을 올랐다.
전용기 안은 말 그대로 럭셔리였다. 크림색 가죽, 마호가니 우드, 에스프레소와 비싼 향수 냄새. 그가 앉으라고 손짓했고, 그는 내 맞은편에 앉았다.
“바로 본론으로 갈게요.” 내 손이 무릎 위에서 살짝 떨렸다. “일이 필요해요. 비자 스폰서도요. 저를 뽑으면 제 연구, 재활 프로토콜, 전부 다 가져가실 수 있어요. 근데 빨라야 해요. 제 신분이… 복잡해서요.”
노아는 몸을 등받이에 기대고 긴 다리를 꼰 채 말했다. “난 네 프로토콜만 원하지 않아, 차유나. 난 네가 필요해. 우리 팀은 강하지만 쉽게 부서져. 우린 세상에서 선수 몸을 제일 잘 고치는 사람이 필요하고.”
“그럼 저를 고용하시겠다는 거예요?”
“그 정도로는 부족하지.”
그는 재킷 안주머니로 손을 넣더니 벨벳 상자를 꺼냈다. 우리 사이 테이블 위에 툭 놓았다.
나는 그것을 노려봤다. “저게 뭐죠?”
“해결책.” 노아가 담담히 말했다. “취업 비자는 처리에 몇 달씩 걸려. 특히 조이권이 방해하면 더 그렇지. 조이권은 이민 쪽에 줄이 닿아 있거든. 네 신청을 질질 끌어서 결국 쫓겨나게 만들 수도 있어.”
맞다. 조이권이 딱 그렇게 협박했었다.
“대기 기간을 뛰어넘고, 너를 아무도 못 건드리게 만드는 방법은 하나뿐이야.” 노아가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반지가 있었다. 한태윤이 준 소박한 다이아몬드와는 달랐다. 이건 거대한 라디언트 컷 사파이어가 다이아몬드에 둘러싸여 있었다. 무게감이 느껴졌다. 마치 왕족이 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