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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병원에 가서 할아버지를 만나

  • 조금 전 머리를 부딪친 것에 화가 난 졸부는 자신의 어설픈 싸움 실력을 믿고 곧바로 노발대발하기 시작했다.
  • “이런 씨발! 죽고 싶어 환장했어!?”
  • 그러더니 그들을 혼내주려는 듯 하나 둘 차에서 뛰어내렸다.
  • 하지만 주먹을 내뻗기가 무섭게 반격이 날아들었다. 딱 보기에도 상대는 그들보다 훨씬 강했다.
  • 안율은 그들이 순식간에 바닥에 쓰러져 배를 움켜잡고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아이고, 살려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만 때리십시오.”
  • 차 문이 열려 있었던 터라 아직 충격이 채 가라앉지 않은 안율은 그 장면에 더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 ‘저 사람들은 또 뭐 하는 사람들이야? 설마 나 더 엄청난 사람들한테 걸려버린 건가?’
  • “사모님, 이제 내리셔도 됩니다.”
  • 한 남자가 선글라스를 벗으며 그녀를 향해 공손하게 인사를 하자, 안율은 그제야 조금 정신을 차리고 그 남자를 쳐다보았다.
  • “……”
  • 그러면서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남자가 부드러운 태도로 입을 열었다.
  • “저희는 윤 대표님의 지시로 사모님을 모시러 온 겁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놀라게 해 드렸네요.”
  • 안율은 정신을 차리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차에서 내렸다. 그녀는 조금 반신반의하고 있는 상태였다.
  • 하지만 차에서 내린 그녀는 단번에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몇 대의 차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 그리고 그중 한 대가 바로 구청 앞에서 떠나갔던 그 차였다.
  • ‘정말 그 사람인가?’
  • 귓가에 울리는 앓는 소리에 그녀는 또 시선을 돌려 자신의 발만치에 쓰러진 채 나뒹굴고 있는 졸부를 쳐다보았다.
  • “걱정 마십시오, 사모님. 이쪽은 저희가 경찰에 넘겨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 남자가 공손한 말투로 말하며 손을 뻗어 한쪽을 가리켰다.
  • “윤 대표님께서는 저 차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 “고맙습니다.”
  • 안율은 마냥 당혹스러운 와중에도 예의를 잊지 않았다.
  • 그녀는 발걸음을 옮겨 열려 있는 람보르기니의 문 옆에 멈춰 섰다. 그 안에 앉아 있는 남자의 완벽한 옆얼굴을 그녀는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의 등장은 정말이지 그 타이밍이 너무 절묘했다.
  • “당신 도대체 누구예요?”
  • 안율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의 신분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했지만 왜인지 그가 엄청난 능력을 갖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 윤재환이 고개를 돌려 잘생긴 그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 “네 남편.”
  • 그는 차가우면서도 거리감이 느껴지는 눈빛으로 그녀를 훑어보았다.
  • “타, 나랑 같이 할아버지를 뵈러 가자.”
  • “하나만 더 도와줄 수 있어요?”
  • 안율은 차 옆에 서서 그런 그의 시선을 마주한 채 자세를 낮추고 말을 이어갔다.
  • “저희 엄마 좀 구해주세요.”
  • 소녀의 두 눈에는 걱정의 눈물이 맺혀있었다. 하지만 남자의 연민을 얻지는 못했다.
  • “일단 나랑 할아버지를 뵈러 병원부터 가.”
  • 윤재환은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했다. 조금 전 할아버지에게서 재촉 전화가 걸려 온 터라 그에게는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 그녀 역시 자신에게는 그와 조건을 따질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그의 잘생긴 얼굴에는 화난 기색은 전혀 없었지만 내내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그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빛에 안율은 온몸에 한기가 감도는 것을 느꼈다.
  • 이에 그녀는 하는 수 없이 차에 올라타 얌전히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이내 차 문이 닫히고, 람보르기니는 병원으로 출발했다.
  • 가는 길 내내 그는 단 한마디도 없었고, 그녀 역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차 안의 분위기는 무겁기 그지없었다.
  • 안승호에게는 가정 폭력 경향이 있었기에 안율의 머릿속에는 온통 어머니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 병원에 거의 도착할 때쯤 윤재환이 그녀를 향해 말했다.
  • “할아버지를 기분 좋게 해 드리면 너희 어머니를 구해줄게.”
  • 그 말에 순간 소녀는 고개를 돌려 그의 아름다운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 그녀는 그가 분명 자신의 집안 사정에 대해 다 알아본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렇게 딱 맞춰 나타났을 리가 없었다.
  • 그에게서는 성숙한 남자의 침착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또한 그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 “감사합니다, 윤 대표님.”
  • 안율은 진심 어린 감사를 전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말에 불쾌한 듯 눈살을 찌푸리는 윤재환의 모습에 소녀는 얼른 호칭을 바꾸어 다시 말했다.
  • “고마워요, 재환 씨.”
  • 그로부터 10분 뒤, 병실 안.
  • “할아버지.”
  • 그토록 마음에 들어 했던 손자며느리가 손자의 팔짱을 낀 채 함께 병실로 들어서는 잘 어울리는 한 쌍의 모습에 그저 감기에 걸린 것일 뿐이었던 윤창범은 침대 위에 앉아 순간 얼굴 가득 기쁜 기색을 드러냈다.
  • “정말이니 너무 잘 됐어! 이 할애비의 소원대로 너희 두 사람이 한 쌍이 되었구나! 어서 이 할애비에게 서류를 보여주렴!”
  • “할아버지, 왜 아직도 못 믿으시는 거예요?”
  • 윤재환의 표정은 온화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마치 다른 사람 같은 모습으로 군 말없이 혼인관계증명서를 건넸다.
  • 노인은 그 종이를 건네받아 보고 또 보았다.
  • 그런 그의 기쁜 얼굴과는 달리 윤재환은 담담하기만 했다. 한시연과 결혼할 수 없다면, 누구와 결혼하든 그에게는 다 똑같았다.
  • 노인은 혼인관계증명서를 다시 그에게 돌려주고는 기쁜 듯 두 젊은이의 손을 잡아들더니 소녀의 손을 남자의 손 위에 포개어 놓았다.
  • 윤재환은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었지만 이를 참아내며 거의 강제로 안율의 손을 잡았다.
  • 반면에 안율은 조금 긴장하고 있었다. 이제껏 남자와 이런 식의 스킨십을 한 적이 없었던 그녀는 약간의 불안감을 품은 채 부끄러운 듯 시선을 돌려 윤재환을 바라보았다.
  • 그의 얼굴은 아름답다고 느껴질 만큼 준수했지만, 어딘가 서먹하고 차가운 느낌이었다.
  • 그는 항상 그녀를 보지 않았고, 그녀가 볼 수 있는 건 언제나 그의 옆얼굴이었다. 두 사람의 손의 온도가 서로 뒤엉켰다.
  • 윤창범은 두 사람의 손을 꼭 잡으며 진지하게 말을 내뱉었다.
  • “이제 부부가 됐으니, 앞으로는 한 가족인 거야. 그러니 서로 보살피며 잘 지내도록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