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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 성재석은 의식을 잃은 한은하를 안아 든 채 침착한 걸음으로 클럽을 빠져나왔다.
  • 품에 안긴 몸은 지나치게 가벼웠다. 가냘픈 몸은 멈추지 않고 떨리고 있었고, 마치 상처 입은 어린 새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 그녀의 몸을 덮고 있던 수트 재킷은 금세 빗물에 젖어 들었고, 차가운 빗방울이 창백한 뺨 위로 떨어질 때마다 이미 잔뜩 찌푸려진 미간은 더욱 깊어졌다.
  • “회장님.”
  • 비서 서종호가 우산을 받쳐 들고 빠르게 따라붙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박 회장님과의 미팅이 곧 시작됩니다.”
  • 성재석의 시선은 혈색 하나 없는 한은하의 입술에 머물렀다.
  • “취소해.”
  • 짧고 단호한 한마디였다. 망설임은 조금도 없었다.
  • 서종호는 잠시 놀란 기색을 보였지만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 “알겠습니다.”
  • 차에 올라탄 성재석은 조심스럽게 한은하를 눕혀 자신의 무릎에 머리를 기대게 했다.
  • 차 안의 따뜻한 온기가 서서히 바깥의 습기와 냉기를 몰아냈고, 계속 떨리던 그녀의 몸도 조금씩 안정을 되찾았다.
  • 성재석은 피와 술에 얼룩지고 유리 파편까지 박혀 있는 그녀의 손바닥을 말없이 바라봤다.
  • 피와 상처로 엉망이 된 손 아래로 가늘고 예쁜 손의 윤곽이 어렴풋이 드러났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 이유를 알 수 없는 익숙함이 가슴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올라왔다.
  • 조금 전 클럽 복도에서 그녀를 처음 봤을 때도 그랬다.
  • 난장판 한가운데 쓰러져 있던 그녀를 무심코 바라본 순간, 마치 두 발이 바닥에 못 박힌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고, 이어 들려온 힘없고 애처로운 목소리에 석 달 전의 기억이 거칠게 되살아났다.
  • 3개월 전.
  • 성재석은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느라 무리하게 일을 하다가 지병이 재발했다.
  • 비서의 권유로 회사 옆 호텔 스위트룸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게 됐다.
  • 어둠이 내려앉은 방 안으로 은은한 치자꽃 향기를 풍기는 여인의 그림자가 조용히 다가왔다.
  • 그때의 그는 두통 때문에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 “꺼져...”
  • 차갑게 내뱉었지만 상대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 여자의 상태는 분명 정상이 아니었다.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고 숨도 거칠었다.
  • 뜨거운 손이 그의 셔츠 안으로 파고들어 단단히 긴장된 가슴을 더듬었다.
  • “도와줘요... 너무 힘들어요...”
  • 애원과 갈망이 뒤섞인 쉰 목소리는 마치 사람을 홀리는 요정처럼 달콤하고 위험한 울림을 품고 있었다.
  • 성재석은 몸을 홱 뒤집어 그녀를 단단히 아래에 눌러 가두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원초적인 정복 욕망만이 남아 있었다.
  • 그는 거칠게 상대의 옷을 잡아당겨 벗겨내고, 손바닥으로 가슴의 부드러운 살결을 힘껏 움켜쥐었다.
  • 손끝에 닿는 매끄럽고 고운 피부는 그를 더욱 흥분하게 만들었다.
  • “읏!”
  • 여자는 고통에 짧게 비명을 지르며 그를 밀어내려 했다.
  • “안 돼요... 이러지 마요...”
  • “네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 성재석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그녀의 가느다란 목덜미를 깨물어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 그의 두 손은 그녀의 무릎 뒤를 붙잡고 강압적으로 다리를 벌렸다.
  • “오늘 밤... 넌 내 거야.”
  • 어떤 다정한 준비도 없이 그는 몸을 밀어 넣으며 그녀를 거세게 차지했다.
  • “읏...”
  • 극도로 조여 오는 감각과 뜨거운 온기에 그는 낮게 신음했다.
  • “아, 아파요... 제발 멈춰요...”
  • 여자는 그의 아래에서 흐느끼며 울었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 하지만 그녀의 몸짓은 오히려 성재석을 더욱 자극할 뿐이었다.
  • 그는 그녀의 허리를 단단히 붙잡고 더욱 거칠게 움직였다. 마치 벌을 주듯 강한 힘이 실린 동작이 이어졌고, 몸이 부딪히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 “멈추라고? 네 몸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 것 같은데... 이렇게 꽉 조이고 있으면서.”
  • 여자의 울음과 애원은 오히려 최고의 자극제가 되었다.
  • 성재석은 완전히 통제를 잃은 야수처럼 그녀를 몰아붙였다.
  • 희고 가느다란 손톱은 그의 등에 수많은 붉은 자국을 남겼고, 가냘픈 신음과 흐느낌이 끊어질 듯 이어졌다.
  • “원한다고 말해.”
  • 성재석은 명령하듯 말하며 더욱 강하게 몰아붙였다.
  • “저... 원해요...”
  • 그녀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겨우 말을 내뱉었고, 몸은 어느새 그의 리듬에 휩쓸리기 시작했다.
  • 어두운 조명 아래 두 사람은 서로 얽혀 타오르는 두 개의 불꽃 같았다.
  • 성재석은 자세를 바꾸어 그녀를 차가운 유리창에 기대게 한 뒤 더욱 깊이 그녀를 몰아붙였다.
  • 고요한 방 안에서는 두 사람의 거친 움직임 소리가 유난히 선명하게 울렸다.
  • 공기에는 욕망과 치자꽃 향기가 뒤섞여 퍼져 있었다.
  • 성재석은 끊임없이 그녀를 탐했고, 결국 그녀는 그의 품 안에서 힘이 빠진 채 늘어졌다. 의식 없는 듯한 흐느낌만이 희미하게 새어 나왔다.
  •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그를 괴롭히던 유전성 두통은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다.
  • 평소라면 며칠씩 고통을 견뎌야 겨우 가라앉는 증상이었는데, 이번에는 단 하룻밤 만에 깨끗하게 사라진 것이다.
  • 하지만 그 여자는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 침대 위의 흐트러진 흔적과 공기 중에 남아 있던 옅은 치자꽃 향만이 지난밤이 환상이 아니었음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 그 후 성재석은 오랫동안 사람을 풀어 그녀를 찾았다.
  • 알아낸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 그날 호텔을 준비한 비서가 어머니가 자신의 곁에 심어 둔 사람이었다는 사실.
  • 치자꽃 향을 두른 여자는 감쪽같이 자취를 감췄고,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 결국 그는 어머니가 붙여 둔 사람들을 모조리 정리해 버렸고, 그날 밤의 기억 역시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다.
  • 그런데 지금.
  • 눈앞에서 잠들어 있는 한은하를 바라보며 그녀의 머리카락 사이로 흘러나오는 옅은 치자꽃 향을 맡는 순간, 터무니없고도 대담한 생각 하나가 머릿속에서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시작했다.
  • “회장님,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 서종호의 목소리에 성재석은 회상에서 깨어났다.
  • 병원 복도에는 소독약 냄새가 진하게 퍼져 있었고, 성재석은 응급실 앞에 선 채 위에 켜진 붉은 불빛만 바라봤다.
  •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초조함이 가슴속을 뒤흔들었다.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 응급실 문이 열리고 의사가 밖으로 나왔다.
  • 마스크를 벗은 의사는 피곤한 얼굴로 성재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 “환자 남편분 맞습니까? 도대체 어떻게 한 겁니까? 유산 조짐이 있는 임신부를 이렇게까지 충격받게 만들다니요. 몸 곳곳에 외상도 있고 과다출혈까지 있었습니다. 남편이면 최소한 보호는 해줬어야죠.”
  • 성재석은 변명하지 않았다.
  • 그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 “산모와 아이 상태는 어떻습니까?”
  • “산모는 일단 고비를 넘겼습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상당히 불안정한 상태라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 아이 쪽이 문제입니다. 원래 임신 초기에는 유산 위험이 높은 시기인데 이번 충격이 너무 컸어요. 앞으로 48시간이 고비입니다. 아이를 지킬 수 있을지는 그때 가봐야 압니다.”
  • 그 말에 성재석의 마음이 순식간에 바닥까지 가라앉았다.
  • 잠시 뒤 그는 병실 문을 조용히 열었다.
  • 한은하는 병상 위에 고요히 누워 있었다.
  • 얼굴은 창백하다 못해 혈색이라고는 한 점도 남아 있지 않았고, 손바닥의 보기만 해도 아찔한 상처는 꼼꼼하게 치료되어 있었다.
  • 잠들어 있는 와중에도 미간은 깊게 찌푸려져 있었다. 마치 무서운 악몽이라도 꾸는 것처럼.
  • 성재석은 그녀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날 밤의 흐릿한 기억들이 점점 선명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녀의 미간에 맺힌 주름을 펴주고 싶었다.
  • 손끝이 그녀의 피부에 닿기 직전.
  • 침대 위에 누워 있던 한은하의 속눈썹이 가볍게 떨렸다.
  • 그리고 다음 순간, 그녀가 눈을 번쩍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