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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레스토랑에서

  • 한서윤과 강민우는 레스토랑 구석의 아늑한 자리로 안내받았다.
  • 은은한 조명이 와인잔 위에 부드럽게 번졌고, 폭신한 소파는 몸을 감싸 안듯 편안했다. 이상할 만큼 포근하고 집 같은 분위기였다.
  • 주문을 마친 뒤에야 한서윤은 처음으로 긴장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 아침부터 줄곧 짊어지고 있던 보이지 않는 무게가 조금씩 어깨에서 흘러내리는 기분이었다.
  • “고마워, 민우야. 날 데리고 나와 줘서.”
  • 한서윤이 따뜻하게 웃으며 말했다.
  • “나 이런 느긋하고 아무 걱정 없는 날들, 분명 그리워질 것 같아.”
  • 강민우는 미세하게 미간을 좁혔다.
  • “꼭 나랑 작별 인사하는 사람처럼 말한다?”
  • 한서윤은 강민우를 바라봤다.
  • 그에게만 보여 주는 특별한 눈빛이 있었다.
  • 부드럽고 다정한 빛이었다.
  • “그럴 리 없지.”
  • 한서윤이 조용히 말했다.
  • “넌 세상에서 날 제일 잘 아는 사람이야. 난 널 잃고 싶지 않아.”
  • 잠시 말을 멈춘 한서윤은 괜히 웃어 보였다.
  • 하지만 그 웃음 뒤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아픔이 숨어 있었다.
  • “그냥... 언젠가는 네게도 가족이 생기고 아내도 생길 거잖아.”
  • 한서윤은 시선을 살짝 내리깔았다.
  • “그러면 누가 알겠어. 네 아내가 우리 관계를 어떻게 생각할지.”
  • 강민우는 천천히 시선을 떨궜다.
  • 그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 오랫동안 가슴속에 묻어 둔 진심도 있었고, 이미 목 끝까지 차오른 말들도 있었다.
  • 조금만 더 용기를 냈다면 모든 걸 털어놓았을지도 몰랐다.
  • 하지만 그 순간 레스토랑 입구 쪽이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들려오자 자연스럽게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 그리고 한서윤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 강민우는 그녀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 한서윤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그는 곧 이유를 알아챘다.
  • 레스토랑 안으로 교수진이 들어오고 있었고, 그들 사이에는 새 총장 강민혁도 함께 있었다.
  • 그리고 그의 곁에는 한지원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있었다.
  • 한지원은 유난히 밝은 목소리로 웃으며 계속 강민혁에게 말을 걸었고, 예의라는 선을 넘을 만큼 가까이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
  • 누가 봐도 강민혁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모습이었다.
  • 한서윤은 순간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 가슴 한구석이 세게 조여 들었고 목 안에는 단단한 덩어리가 걸린 듯 답답했다.
  • 고개를 돌리는 순간에는 메스꺼움마저 밀려왔다.
  • “서윤아...”
  • 강민우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 목소리에는 걱정이 담겨 있었다.
  • “괜찮아?”
  • 한서윤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 마음속에서 휘몰아치는 감정을 억누르려는 듯 애쓴 뒤 억지로 태연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 “그냥... 교수님들까지 여기 올 줄은 몰랐어.”
  •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가볍게 말했지만 강민우는 그녀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 굳어 있는 손끝도, 미세하게 긴장한 어깨도, 작게 떨리는 속눈썹도 놓치지 않았다.
  • 그는 한서윤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 처음으로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 얇지만 선명했고, 유리 위에 생긴 금처럼 쉽게 사라지지 않을 침묵이었다.
  • 그래도 강민우는 캐묻지 않았다.
  • 한서윤이 말하고 싶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자신이 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그래서 그는 늘 그래 왔듯 그녀의 곁에 머물렀다.
  • 한서윤은 다시 시선을 들어 교수들이 있는 쪽을 바라봤다.
  • 그녀의 눈은 계속 강민혁을 따라가고 있었다.
  • 강민혁은 동료들 사이에서 차분하게 미소 짓고 있었지만, 그 곁에서 한지원은 지나칠 만큼 다정한 태도로 계속 맴돌고 있었다.
  • 그 순간이었다.
  • 무언가를 느낀 듯 강민혁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 하지만 그 짧은 눈맞춤만으로도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봤다.
  • 크루즈에서의 기억과 미처 정리하지 못한 후회,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눈빛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 강민혁의 얼굴 위로 아주 희미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 하지만 그는 곧 표정을 가다듬고 다시 한지원 쪽으로 몸을 돌려 차분하게 대답했다.
  •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교수들은 별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 남겨진 건 멀어져 가는 목소리의 잔향뿐이었다.
  • 한서윤은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 가슴속 어딘가가 계속 조여 오는 느낌이었다.
  • 강민우는 그런 한서윤을 바라봤다.
  • 그녀의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와 시선이 향하는 곳, 그리고 가벼운 숨소리마저 놓치지 않았다.
  • “서윤아.”
  • 강민우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너... 뭔가 달라졌어.”
  •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 “자꾸 멀어지는 느낌이 들어.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네가 이야기하고 싶어질 때가 오면 난 항상 네 옆에 있을게.”
  • 한서윤은 천천히 강민우를 바라봤다.
  • 눈가에는 옅은 물기가 맺혀 있었고, 그 안에는 지친 감정이 잔잔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 강민우는 늘 그런 사람이었다.
  • 폭풍 속에서도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고, 언제 침묵해야 하는지와 언제 아무 말 없이 곁을 지켜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이었다.
  • 피는 이어져 있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가까운 사람이기도 했다.
  • 그래서 한서윤은 가끔, 특히 이렇게 조용한 순간이면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 왜 강민우처럼 좋은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걸까.
  • 왜 마음은 끝내 다른 곳을 향하는 걸까.
  • 강민우는 다정했고 섬세했으며, 말하지 않아도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었다.
  • 그런데도 마음은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 그리고 한서윤의 심장은 끝내 다른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 “고마워, 민우야...”
  • 한서윤은 조용히 속삭이며 강민우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 고맙고 소중한 마음이 담긴 행동이었다.
  • 하지만 그 안에는 피할 수 없는 슬픔도 함께 담겨 있었다.
  • 강민우는 그 순간 깨달았다.
  • 아무리 애써도 넘을 수 없는 거리가 있다는 것을.
  • 그래도 억지로 다가가려 하지는 않았다.
  • 대신 부드럽게 웃으며 한서윤의 손을 가볍게 감싸 쥐었다.
  • 그리고 가라앉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일부러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 “그보다 네 졸업 컬렉션 얘기 좀 해 봐. 아까 그렇게 필사적으로 주제 찾던데? 그 정도면 이미 머릿속에 아이디어 다 나온 거 아니야?”
  • 한서윤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