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예술대학교의 소문
- “그럼 넌 어땠어, 민우야?”
- 한서윤이 곁눈질로 강민우를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 “여름 잘 보냈어? 설마 드디어 이상형이라도 만난 거 아니지?”
- 강민우의 표정이 순간 굳었고 늘 자연스럽게 올라가 있던 입꼬리가 살짝 내려앉았다.
- 사실 강민우는 이미 오래전에 이상형을 만났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지금도 그의 눈앞에 서 있었다.
- 웃을 때마다 깊게 패이는 보조개와 반짝이는 눈동자, 듣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목소리까지. 강민우는 그 모든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 하지만 마음속에 품은 진심만큼은 끝내 꺼내지 못했다.
- “아니.”
- 짧게 답한 강민우가 되물었다.
- “넌?”
- 한서윤의 표정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 뺨이 옅게 붉어졌고 시선도 자연스럽게 아래로 떨어졌다.
- 강민우의 마음은 꿈에도 모른 채, 한서윤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나... 외할머니랑 크루즈 여행 갔을 때 어떤 남자를 만났어.”
- 평소보다 한층 조심스러운 말투였다.
- “그 사람도 할머니랑 같이 여행 중이었어. 제대로 이야기해 본 적도 없고 소개받은 적도 없는데... 이상하게 자꾸 눈에 들어오더라.”
- 한서윤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듯 숨을 골랐다.
- “늘 너무 슬퍼 보였거든. 아무도 모르는 아픔을 혼자 안고 사는 사람 같았어. 할머니 말고는 거의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않았고. 직원들도 괜히 어려워하는 분위기였고.”
- 강민우는 아무 말 없이 이야기를 들었다.
- 가슴 한구석이 묵직하게 조여 왔다.
- “누군지 알아?”
-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지만 목소리에는 긴장이 묻어났다.
- 한서윤은 고개를 저었다.
- “전혀 몰라.”
- 작게 웃었지만 아쉬움은 감추지 못했다.
- “근데 그 사람 눈이 아직도 잊히질 않아. 눈만 감으면 다시 보여. 너무 조용하고 깊었어. 무슨 사연을 품고 있는지 궁금할 정도로.”
-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 강민우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서윤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 남자가 누구인지도. 그녀가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적어도 아직은 자신에게 기회가 남아 있었다.
- 강민우는 천천히 숨을 내쉬며 굳어 있던 표정을 풀었다. 이내 평소처럼 편안한 미소가 얼굴에 자리 잡았다.
- “근데 예술대학교 소식 들었어?”
- 강민우가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 한서윤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 “아니. 무슨 일인데?”
- 강민우는 주위를 둘러본 뒤 한서윤의 손목을 살짝 잡고 기둥 쪽으로 이끌었다.
- “윤 총장님이 올해 총장 자리를 아들한테 넘겼대.”
- 한서윤은 그대로 눈을 크게 떴다.
- “뭐?”
- 놀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 “하지만 예술대학교 자체가 원래 강태준 회장님이 윤 총장님을 위해 세운 거잖아. 윤 총장님은 그 일을 정말 좋아하셨어. 학생들도 좋아하셨고 수업도 좋아하셨고...”
-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 얼굴 가득 번졌다.
- “직접 말씀하셨잖아. 예술대학교 벽 하나하나가 다 자기 집 같다고. 그런데 왜 갑자기...”
- 한서윤은 말끝을 흐렸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 강민우도 미간을 찌푸렸다.
- “나도 모르겠어. 근데 들으니까 짐까지 다 정리하고 가족 저택에서도 나오셨다던데.”
- 강민우는 목소리를 낮췄다.
- “상상이 가냐? 평생 살던 집을 떠나서 벚꽃길 쪽 작은 집으로 옮겨 갔다더라.”
- “정말?”
- “응.”
- 강민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 “너 그 근처 살잖아. 뭐 들은 거 없어?”
- 한서윤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 “아니. 아무것도 못 들었어.”
- 아랫입술을 살짝 깨문 한서윤의 얼굴에 걱정이 스쳤다.
- “이상해, 민우야. 뭔가 말이 안 맞아.”
- 강민우가 입을 열려던 순간 종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 예술대학교 전체 집합을 알리는 신호였다.
- 맑은 종소리가 건물 곳곳으로 번져 나갔고, 학생들의 목소리도 하나둘 커지기 시작했다.
- 조용하던 복도는 순식간에 활기를 되찾았다.
- 학생들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을 반갑게 맞으며 대강당으로 향했다.
- 손을 흔드는 학생도 있었고, 반가움에 달려가 서로를 끌어안는 학생도 있었다.
- 복도는 금세 사람들로 가득 찼다.
- 한서윤과 강민우도 잠시 서로를 바라봤다.
- 짧은 순간이었지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 두 사람은 사람들 틈에 섞여 대강당으로 향했다.
- 잠시 후 무대 위로 한 부총장이 올라섰다.
-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엄격한 분위기였다.
- 한지원은 마이크를 가볍게 두드리자 웅성거리던 대강당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 기대와 긴장이 뒤섞인 공기가 강당 안을 채웠다.
- 한지원은 오랫동안 부총장직을 맡아 왔다.
- 예술사를 가르칠 때면 날카로운 통찰력과 빈틈없는 분석으로 학생들을 압도하곤 했다.
- 학생들은 강의실에서 한지원을 발견하는 순간 괜히 허리를 곧게 폈다. 사소한 실수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고, 작은 부주의조차 놓치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 학생들을 가장 자주 불러 세우는 사람 역시 한지원이었다. 그런데도 윤서진과 비교하면 어딘가 차갑게 느껴졌다.
- 한서윤은 윤 총장을 떠올렸다.
- 실패한 학생에게도 따뜻한 격려를 아끼지 않았고, 누구에게나 먼저 미소를 건넸다.
- 총장실 호출조차 벌이 아니라 조언을 듣는 시간처럼 느끼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 그래서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 윤 총장의 퇴장은 너무 갑작스럽고 이상했다.
- ‘딱 1년만 더 계셔 주실 수는 없었던 걸까.’
- 한서윤은 씁쓸한 마음으로 생각했다.
- 마지막 학년만큼은 평온하게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조차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새 총장이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 수 없었으니까.
- 지나치게 엄격한 사람일 수도 있었다. 학생들에게 관심조차 없는 사람일 수도 있었다. 더 나쁘게는 예술도, 학생들의 꿈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일 수도 있었다.
- 한서윤은 손가락을 꼭 움켜쥐었다.
- ‘새 총장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 왜 이렇게 갑작스럽게 총장이 바뀐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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