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새로운 총장
- 한지원이 헛기침을 했다.
- 평소와 다름없이 단정하고 엄격한 모습이었다. 학생들은 또 늘 하던 개강 인사가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 그런데 한지원이 고개를 들고 미소를 짓는 순간, 강당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 모두가 눈을 의심했다.
- 오랫동안 학교를 다닌 학생들조차 한지원이 저렇게 부드럽게 웃는 모습을 본 기억이 거의 없었다.
- 오늘은 모습부터가 달랐다.
- 늘 빈틈없이 올려 묶던 머리를 자연스럽게 내렸고, 차가운 느낌의 정장 대신 한결 부드러운 분위기의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언제나 날카롭고 빈틈없어 보이던 인상까지 눈에 띄게 누그러져 있었다.
- 하지만 학생들을 가장 놀라게 한 건 따로 있었다.
-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 한지원이 입을 열었다.
- 평소와는 전혀 다른 따뜻한 목소리였다.
- “예술대학교는 오늘 이 특별한 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누군가에게 오늘은 영감과 색채, 그리고 움직임의 세계로 향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학창 시절 마지막 한 해의 시작이 되겠죠.”
- 한지원은 객석을 천천히 둘러봤다.
- “하지만 여러분이 어디에 있든, 우리에게는 모두 소중한 학생들입니다.”
- 강당 안이 조용해졌다.
- 학생들은 서로 눈치를 살폈다. 방금 들은 말이 정말 한 부총장 입에서 나온 게 맞나 싶었다.
- 한서윤도 무심코 강민우를 돌아봤다.
- 강민우는 작게 어깨를 으쓱였다.
- 둘만 그런 생각을 한 건 아니었다. 강당 안 대부분의 학생들이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 가장 먼저 박수를 친 건 교수진이었다.
- 곧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가 이어졌고, 금세 강당 전체로 퍼져 나갔다.
- 학생들도 뒤늦게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 처음에는 머뭇거리던 박수 소리가 점점 커졌다.
- 강당이 박수 소리로 가득 차자 한지원은 한층 환하게 웃었다.
- 지금 무대 위에 서 있는 사람이 복도를 걸을 때마다 학생들을 긴장시키던 바로 그 한 부총장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 “올해 우리 예술대학교에는 몇 가지 변화가 있습니다.”
- 박수가 잦아들자 한지원이 다시 입을 열었다.
- “개인적인 사정으로 윤서진 총장님께서 자리에서 물러나시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책임자가 여러분과 함께하게 됐죠.”
- 한지원은 무대 뒤편을 향해 몸을 돌렸다.
- “강민혁 총장님, 앞으로 나와 주시겠습니까?”
- 강당 안 공기가 순간 달라졌다.
-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 학생들은 숨조차 죽인 채 무대 뒤를 바라봤다.
- 이윽고 무대 뒤편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 키가 큰 강민혁은 차분하면서도 자신감 있는 걸음으로 무대 중앙을 향해 걸어왔다. 자연스럽게 흐트러진 짙은 색 머리와 잘 재단된 수트는 넓은 어깨와 반듯한 체격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 강민혁이 무대 중앙에 멈춰 서자 조명이 얼굴 위로 내려앉았다.
- 순간 여기저기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 잘생겼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했다.
- 반듯한 이목구비에 사람을 압도하는 분위기까지 더해지니 쉽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 마치 유명 패션 잡지에서 막 걸어 나온 모델 같았다.
- 강당 곳곳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 “세상에...”
- “진짜 잘생겼어.”
- “저 사람이 총장님이라고?”
- “신입생이라고 해도 믿겠다.”
- 흥분한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 하지만 한서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온몸이 굳은 듯 움직일 수 없었다. 주변의 소음도 희미하게 멀어져 갔다.
- 한서윤의 시선은 오직 강민혁에게만 머물러 있었다.
- 설마 싶었지만 틀릴 리 없었다.
- 크루즈 여행에서 만났던 바로 그 남자였다.
- 늘 깊은 슬픔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사람.
- 여름 내내 잊지 못했던 사람.
- 그 사람이 지금 새 총장이 되어 눈앞에 서 있었다.
- 강민혁이 무대 위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심장은 쉴 새 없이 뛰었고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했다.
- 그러다 어느 순간 강민혁이 객석을 향해 시선을 들었다.
- 그리고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 하지만 한서윤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 강민혁 역시 자신을 알아본 것만 같았다.
- 강민혁의 표정에 아주 미세한 변화가 스쳤다.
- 금방 사라졌지만 한서윤은 분명히 봤다.
- 바로 그때.
- “서윤아.”
- 강민우가 옆에서 작은 목소리로 불렀다.
- 그러면서 한서윤의 어깨를 가볍게 건드렸다.
- “괜찮아?”
- 한서윤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 “응...”
- 겨우 입 밖으로 나온 대답이었다.
- 하지만 한서윤의 시선은 여전히 무대 위에 머물러 있었고 강민혁에게서 도무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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