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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후계자와 결혼

재벌 후계자와 결혼

오키드올레

Last update: 2024-12-05

제1화 급한 마음에 결혼을 했다

  • 8월의 서울 날씨는 엄청나게 무더웠다.
  • 구청 혼인 신고 서류 접수 창구 앞에서 안율은 한창 펜을 들고 필요한 정보들을 적어 넣고 있었고, 그런 그녀의 옆에는 차가운 인상의 귀티가 흐르는 남자가 하나 서 있었다.
  • 그 남자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남다른 분위기에 직원들은 저도 모르게 그를 힐끔거렸다.
  • “윤…”
  • 소녀가 갑자기 펜을 멈추더니 고개를 돌려 그에게 물었다.
  • “이름이 윤 뭐라고 했었죠?”
  • 그 말에 직원은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 “두 분 서로 모르는 사이세요?”
  • 남자는 주위의 놀란 듯한 반응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소녀가 들고 있던 펜을 가져가더니 허리를 숙여 빈칸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 넣었다.
  • 윤재환.
  • 그렇게 두 사람은 사인을 하고 도장을 찍은 뒤 서류 발급까지 모든 과정을 마치고 구청을 나섰다.
  • 윤재환이 짙은 눈썹을 찌푸린 채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 “나야 할아버지 때문에 결혼하는 거지만, 넌 무슨 의도로 나와 결혼을 하겠다고 한 거지?”
  • “늘그막에 벗이 필요해서요.”
  • 안율은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
  • “우리 집 형편으로 봐서는 아무도 저랑 결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을 거예요. 자칫하면 혼자 늙어 죽을지도 모른다고요.”
  • 이같이 솔직한 대답은 남자의 예상을 훨씬 벗어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에 대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 “오후에 할아버지를 뵈러 가야 하니까 데리러 갈게.”
  • 그러더니 그녀에게 열쇠와 키카드를 건넸다.
  • “더 플라워 라운지 88동 2801호. 최대한 빨리 짐 가지고 들어와.”
  • 소녀는 가볍게 달싹이는 그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그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말에는 그 어떤 온도도 담겨있지 않았다.
  • 그녀가 손을 뻗어 열쇠와 키카드를 건네받기가 무섭게 남자는 곧바로 몸을 돌려 떠나갔다.
  • 안율은 그런 그의 훤칠한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 멀지 않은 곳에 세워져 있는 차 한 대도 보였다.
  • 하지만 그녀는 그것이 람보르기니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윤재환의 정체 역시 알지 못했다.
  • 그녀는 오늘 그를 처음 만난 것이었다.
  • 그럼에도 이렇게 급히 그와 혼인 신고를 한 것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였다.
  • 사실 안율은 윤재환의 할아버지와도 그다지 잘 아는 사이가 아니었다. 고작 두 번 만나본 것이 다였다.
  •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의 할아버지는 그녀를 콕 집어 마음에 들어 했다.
  • 람보르기니가 쏜살같이 떠나가고, 정신을 차린 안율은 손을 뻗어 택시를 한 대 잡았다.
  • 택시 뒷좌석에 올라탄 그녀의 마음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 그녀는 저도 모르게 딴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 “안승호! 당신은 정말이지 어디까지 날 실망시킬 셈이야! 아들 수능이 코앞인데 당신은 도박으로 도대체 얼마를 날린 거야? 빚쟁이들이 학교까지 찾아갔다고! 명훈이가 공부하는 데 영향을 준 건 그렇다 치고, 잘못되면 학교에서 제적당할 수도 있단 말이야! 그럼 애 장래는 망하는 거라고!”
  • “너는 허구한 날 땍땍거리는 것밖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냐! 싫으면 이혼하던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애 양육권 줄 테니까, 네가 알아서 키우던지!”
  • “나라고 이혼 안 하고 싶은 줄 알아? 명훈이 때문에 계속 참고 있는 거야! 애 대학만 가면 당장 이혼할 거야! 어디 가서 구걸을 하고 다니더라도 당신한테는 한 푼도 안 바라! 아들한테 완전한 가정을 주려고 했는데 이 지경으로나 살게 하고… 흑흑…”
  • 부모님은 오늘 아침에도 또 한 번 크게 다투었다.
  • 어머니가 절망에 차 히스테리를 부리기 시작한 건 빚쟁이들이 집안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TV마저 가져간 뒤였다.
  • 하지만 안율을 숨 막히게 만든 건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그녀를 진짜로 숨 막히게 만든 건 어젯밤 무심결에 듣게 된 그 통화였다.
  • 도박에 빠진 아버지가 4천만 원을 위해 그녀를 팔아버리려 하고 있었다. 그것도 동네의 악질 졸부에게 억지로 시집을 보내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 이로 인해 그녀는 오늘 급한 마음에 윤재환의 할아버지의 부탁을 수락해 윤재환과 결혼을 한 것이었다.
  • 그의 할아버지가 자신의 손자는 집도 있고, 차도 있는 데다, 직업도 안정적이고, 나쁜 취미 같은 것도 없다면서 그녀더러 한번 생각해 보라고 했었던 것이다.
  • 택시는 신림동으로 향하고 있었다.
  • 안율은 정신을 차리고 휴대폰을 꺼내 자신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엄마, 내가 지금 데리러 가고 있으니까 짐 챙겨. 오늘부터 나와서 지내.”
  • “율아, 오지 마…”
  • 어머니의 말이 미처 끝나지도 않았는데, 다음 순간 수화기 너머에서는 규칙적인 신호음이 흘러나왔다. 누군가에게 휴대폰을 빼앗긴 것이 분명해 보였다.
  • “엄마! 여보세요? 엄마!”
  • 안율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휴대폰을 꽉 움켜쥐며 택시 기사에게 빨리 가달라고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