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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 점심 무렵, 간호사가 식사 카트를 밀고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 임산부 전용 식사를 침대 위 식판에 하나씩 정갈하게 차려 놓았다.
  • 송이를 넣은 잡곡 흑미밥에 고려인삼 사골국, 구운 자바리살과 제철 산나물볶음, 수정 무김치까지 곁들여진 식사였다.
  • 한은하가 막 국을 한 모금 떠먹으려던 순간이었다.
  • 병실 밖에서 갑자기 시끄러운 실랑이 소리가 들려왔다.
  • 듣기만 해도 진저리가 나는 오민준의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 "내가 남편인데 왜 막아요? 한은하 나오라고 해요!"
  • "한은하! 당장 나와! 우리 오늘 끝장을 보자고!"
  • 문 앞을 지키던 경호원들은 벽처럼 꼿꼿이 서 있었고 오민준이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밀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 몇 번이나 힘껏 밀어붙여 봤지만 경호원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결국 그는 복도에서 욕설을 퍼부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 주변 병실의 환자들과 보호자들까지 하나둘 고개를 내밀었다.
  • 한은하는 미간을 찌푸렸다.
  • 더 이상 미친개처럼 아무나 물어뜯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 그녀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냅킨으로 입가를 닦은 뒤 경호원을 향해 말했다.
  • "들여보내세요."
  • 문이 열리자마자 오민준이 거칠게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 넥타이는 비뚤어져 있었고 양복은 구겨질 대로 구겨져 있었다.
  • 온몸에서 감출 수 없는 초조함과 초라함이 묻어났다.
  • 그는 침대 옆 의자를 거칠게 끌어당겨 앉더니 죄인을 심문하듯 한은하를 노려봤다.
  • "한은하, 이제 좀 컸네? 대체 무슨 돈으로 경호원까지 붙인 거야?"
  • 한은하는 싸늘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 "당신이 알 바 아니야. 무슨 일로 왔어? 또 이수아 편들러 온 거면 지금 당장 나가."
  • 예상 밖의 냉담한 반응에 오민준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 그는 억지로 화를 눌러 삼키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 "은하야, 어제는 내가 말이 좀 심했어. 그래도 다 너를 위해서였어."
  • 한은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 오민준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목소리를 한층 부드럽게 낮췄다.
  • "나랑 수아는 그냥 오누이 같은 사이야. 처음부터 끝까지 네가 오해한 거라고. 그리고 네가 수아를 다치게 한 것도 사실이잖아. 수아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이씨 가문의 영애야. 손에 흉터라도 남으면 일이 커져."
  • 한은하는 차갑게 웃었다.
  • "그래서?"
  • 그녀의 태도가 누그러진 줄 착각한 오민준은 서둘러 말을 이었다.
  • "수아한테 사과해. 임신 때문에 감정이 불안정해서 순간적으로 실수했다고 말하면 돼. 그러면 이 일은 여기서 끝내자. 나도 이번 네 철없는 행동은 용서해 줄게. 예전처럼 다시 잘 살아보자."
  • 마치 큰 은혜라도 베푸는 것처럼 말하는 그의 뻔뻔한 얼굴을 보자 한은하는 속이 뒤집혔고 구역질이 치밀었다.
  • "오민준, 당신 사람 말 못 알아들어?"
  • 그녀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한 글자 한 글자 또렷하게 말했다.
  • "난 사과 안 해. 그리고 당신이랑도 안 살아. 이혼 협의서는 변호사를 통해 보낼 거야."
  • 이혼이라는 말이 나오자 오민준은 꼬리를 밟힌 고양이처럼 벌떡 일어났다.
  • "이혼? 꿈도 꾸지 마! 지금 회사가 한연지위 프로젝트 입찰을 준비하는 중요한 시기야. 내 이미지에 흠집 하나 나면 안 된다고! 지금 이혼하겠다는 건 내 앞길을 망치겠다는 거야?"
  • 그 순간 한은하는 확실히 깨달았다.
  • 그가 이혼을 반대하는 이유는 사랑도, 미련도 아니었다.
  • 오직 자신의 이익 때문이었다.
  • 한은하는 속으로 비웃음을 삼키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 "그건 당신 일이야. 나랑 상관없어."
  • 강압적으로는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오민준의 눈빛에 계산이 스쳤다.
  • 그는 침대 곁에 쪼그려 앉아 억지 미소를 지었다.
  • "은하야, 네가 상처받은 거 알아. 다 내 잘못이야. 어젯밤에 널 밀친 것도."
  • 그는 일부러 다정한 목소리를 냈다.
  • "한 번만 더 참아주면 안 될까?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가정을 위해서라도 말이야. 프로젝트만 끝나면 너랑 아기 데리고 제주도로 갈게. 그때 못 갔던 신혼여행도 꼭 다시 보내줄게."
  • 그 말이 오히려 한은하 가슴속 깊이 눌러두었던 분노를 완전히 폭발시켰다.
  • 결혼 직후 그녀는 두 달 전부터 신혼여행 일정을 직접 준비했었다.
  • 하지만 출국 직전 이수아에게 전화가 왔다.
  • 친구들과 여행을 가는데 오민준도 함께 가자고 불러낸 것이다.
  • 당시 난처해하는 오민준을 보자 그녀는 결국 마음이 약해져 양보했다.
  • 그때 오민준은 나중에 반드시 더 좋은 신혼여행을 보내주겠다고 장담했다.
  • 하지만 그 이후 그 약속은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 잊은 게 아니었다.
  • 그저 그녀를 위해 시간을 쓰는 게 아까웠을 뿐이었다.
  •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 이 모든 말은 그녀를 붙잡고 이용하기 위한 핑계에 불과했다.
  • 한은하는 그를 바라보며 무표정하게 말했다.
  • "오민준, 지금 내가 바라는 건 딱 하나야. 내 눈앞에서 당장 사라져."
  • 오민준은 혀끝으로 볼 안쪽을 밀어 올렸다.
  • 남아 있던 인내심도 완전히 바닥난 듯했다.
  • 바로 그때 주머니 속 휴대폰이 진동했다.
  • 그가 휴대폰을 꺼내는 순간 한은하의 시선이 화면을 스쳤다.
  • 웨딩홀 시안 이미지였다.
  • 새하얀 장미가 가득 깔려 있었고 정교하게 장식된 꽃문 아래에는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 오민준 & 이수아.
  • 오민준은 황급히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 처음으로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 "은하야,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겼어. 지금 바로 가봐야 해. 넌 병원에서 정신 좀 차리고 반성이나 해. 생각이 바뀌면 나한테 연락하고."
  • 그는 목소리를 낮춰 경고하듯 덧붙였다.
  • "이혼 이야기는 다시 꺼내지 마. 안 그러면 나도 더는 예전 정을 생각하지 않을 거야."
  • 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도망치듯 병실을 빠져나갔다.
  • 얼마 지나지 않아 한은하의 휴대폰도 진동했다.
  • 모르는 번호로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 사진 속에는 붕대를 칭칭 감은 이수아를 품에 안은 채 병원 복도에서 키스하고 있는 오민준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 사진 아래에는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 [한은하 씨, 민준 오빠가 그러는데 내 입술이 그쪽 것보다 훨씬 부드럽대요. 그쪽이랑 있을 땐 아예 서지도 않는다더라고요.]
  • 한은하는 사진을 말없이 바라봤고 손톱이 손바닥을 깊게 파고들었다.
  • 그녀는 천천히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 "그렇게 둘이 사랑 놀음이 하고 싶어? 좋아. 그럼 내가 제대로 맺어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