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 다음 날 아침.
- 병실 문이 밖에서 거칠게 걷어차이며 벌컥 열렸다.
- 쾅!
- 엄청난 충격음이 순식간에 병실 안의 고요를 산산조각 냈다.
- 오민준이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문가에 서 있었고, 그 뒤에는 이수아가 바짝 붙어 따라 들어왔다.
- 한쪽 팔은 붕대로 칭칭 감긴 채 목에 걸려 있었다.
- 그 모습을 본 한은하는 웃음이 나올 뻔했다.
- 분명 어젯밤 이수아는 손바닥이 조금 베인 정도였는데, 지금은 마치 팔 전체가 부러진 사람처럼 과장되게 꾸며 놓은 상태였다.
- 오민준은 성큼성큼 병상 앞으로 다가와 한은하를 내려다봤다.
- “한은하! 아주 배짱이 늘었네? 병원으로 숨어 들어오면 끝인 줄 알아? 네가 수아를 어떻게 만들어 놨는지 봐! 당장 사과해!”
- 한은하는 병상에 누운 채 그를 올려다봤다.
- 분노로 목소리가 떨렸다.
- “민준 씨, 양심은 있어? 나 어젯밤 유산할 뻔했어. 그건 우리 아이였어!”
- “우리 아이? 그건 그냥 사...”
- 순간 말을 멈춘 오민준의 눈빛이 흔들렸다.
- 하지만 곧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바꿨다.
- “임신했다고 네 마음대로 굴어도 되는 줄 알아? 잘 들어. 수아는 집안부터가 달라. 넌 고작 전업주부잖아. 뭘로 수아랑 비교하려고 해?”
- 전업주부.
- 그 말은 칼날처럼 가슴을 찔렀고, 한은하는 문득 과거를 떠올렸다.
- 오민준과 결혼하기 위해 집안에서 정해 준 혼처를 거절했고, 한씨 가문의 딸이라는 자리까지 포기했다.
- 그렇게 모든 걸 버리고 선택한 결혼이었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끝없는 멸시와 모욕뿐이었다.
- “민준 오빠, 은하 언니한테 그렇게 말하지 마...”
- 이수아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 “다 내 잘못이야. 내가 괜히 은하 언니한테 장난을 쳤어. 나 때문에 언니랑 싸우지 마. 언니도 아직 임신 중이잖아...”
- 겉으로는 말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말뿐이었다.
- 예상대로 오민준의 화는 더 커졌다.
- “들었어? 수아가 얼마나 착한지! 그런데 넌 어때? 악독한 여자나 다름없잖아!”
- 그는 한은하의 손목을 거칠게 움켜잡고 병상에서 끌어내리려 했다.
- “일어나. 수아한테 사과해!”
- 방금 치료받은 손바닥 상처에 힘이 가해지자 날카로운 통증이 순식간에 퍼졌다.
- 손등에 꽂혀 있던 수액 바늘도 함께 당겨졌고, 관 안으로 피가 역류했다. 붉은 핏자국이 선명하게 번져 나갔다.
- 마침 회진 중이던 간호사가 급히 달려왔다.
- “보호자분! 진정하세요! 환자분은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
- 하지만 오민준은 간호사를 거칠게 밀쳐냈다.
- “비켜요! 우리 집안 일이에요!”
- 그는 충혈된 눈으로 한은하를 노려봤다.
- “잘 들어. 오늘 이 사과는 네가 하고 싶든 말든 반드시 하게 만들 거야!”
- 분노로 일그러진 그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 한은하의 마음은 완전히 식어 버렸다.
- 더 이상 미련도 없었다.
- 그녀는 저항을 멈추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 “민준 씨, 우리 이혼해.”
- 오민준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곧 비웃음을 터뜨렸다.
- “이혼?”
- 그는 코웃음을 쳤다.
- “한은하, 머리라도 다친 거야? 나 없이 네가 어떻게 살아? 네가 입고 먹고 쓰는 것 중에 내가 안 해준 게 뭐가 있는데? 또 애처럼 떼쓰는 거지?”
- 그는 한은하가 홧김에 하는 말이라고 확신했고, 결코 자신을 떠나지 못할 거라고 믿고 있었다.
- 그가 다시 입을 열어 모욕적인 말을 쏟아내려는 순간, 병실 문이 다시 열렸다.
- 검은 정장을 입은 경호원들이 줄지어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 차가운 압박감이 순식간에 병실 전체를 짓눌렀다.
- 선두에 서 있던 경호원이 병상 앞으로 다가와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 “아가씨.”
- 그 한마디에 오민준과 이수아의 얼굴이 동시에 하얗게 질렸다.
- 오민준은 애써 허세를 부리며 소리쳤다.
- 하지만 목소리는 눈에 띄게 떨리고 있었다.
- “당신들 누구야? 지금 뭐 하는 거야?”
- 이수아는 겁에 질린 채 오민준의 팔을 꼭 붙잡았다.
- “은하 언니... 이게 다 뭐예요? 이 사람들 언니가 부른 거예요?”
- 한은하는 두 사람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 그저 경호원들을 향해 턱만 가볍게 들어 올렸다.
- 곧바로 경호원 두 명이 앞으로 나와 오민준을 양쪽에서 붙잡았다.
- 그제야 상황을 깨달은 오민준이 미친 듯이 발버둥 쳤다.
- “젠장! 놔! 내가 누군지 알아? 한은하, 이 미친 년! 감히 나한테 이래?”
- 하지만 경호원들의 완력 앞에서 그의 저항은 아무 소용도 없었다.
- 다른 두 명의 경호원은 곧장 이수아에게 다가갔다.
- 이수아는 연신 뒷걸음질 치며 비명을 질렀다.
- “만지지 마요! 우리 아빠가 누군지 알면—”
-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경호원의 손이 그녀의 입을 막아 버렸다.
-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 잠시 뒤,
- 욕설을 퍼붓던 오민준과 울먹이며 몸부림치던 이수아는 그대로 병실 밖으로 끌려 나갔다.
- 문이 닫히자 병실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 조금 전 밀쳐졌던 간호사는 멍한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고 손에 들고 있던 차트를 떨어뜨릴 뻔할 정도였다.
- 문밖에서는 여전히 오민준의 고함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 “한은하! 두고 봐! 반드시 울면서 나한테 돌아오게 만들어 주겠어!”
- 하지만 한은하의 마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 그녀는 조용히 침대 머리에 몸을 기댔다.
- 한때는 뼛속까지 사랑했던 남자였다.
- 하지만 이 순간부터 오민준은 그녀와 아무 관계도 없는 남자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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