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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 “짝!”
  • 날카로운 소리가 시끌벅적한 룸 안에 울려 퍼졌다.
  • 시끄러운 음악 소리마저 단숨에 묻혀버릴 정도였다.
  • 정교하게 화장한 이수아의 얼굴이 한쪽으로 홱 돌아갔다.
  • 하얀 피부 위로 선명한 손가락 자국 다섯 개가 순식간에 떠올랐고 이수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 그러더니 중심을 잃은 척하며 바닥에 흩어진 유리 파편 쪽으로 그대로 쓰러졌다.
  • “아악!”
  • 이수아가 비명을 질렀다.
  • 손바닥이 날카로운 유리 조각 위를 짚었고, 곧바로 선홍빛 피가 배어 나왔다.
  • “수아야!”
  • 그제야 오민준이 정신을 차렸다.
  • 허겁지겁 달려와 이수아를 일으켜 세운 그는 그녀를 품 안으로 끌어안았다.
  • 그리고 고개를 홱 돌려 벌게진 눈으로 한은하를 노려보며 어깨를 거칠게 밀쳤다.
  • “한은하, 씨발! 너 미쳤어?”
  • 원래부터 아랫배가 묵직하게 당기는 통증 때문에 다리에 힘이 풀려 있던 한은하는 그충격을 버티지 못했다.
  • 몇 걸음이나 휘청거리며 뒤로 밀려난 그녀의 허리가 대리석 테이블 모서리에 세게 부딪혔다.
  • 허리가 부서지는 듯한 묵직한 통증이 순식간에 온몸으로 번져 나갔다.
  • 그와 동시에 배 속을 쥐어뜯는 듯한 고통도 더욱 거세졌다.
  •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내장을 미친 듯이 잡아당기는 것만 같았다.
  • “윽...”
  • 한은하는 눈앞이 새까매질 만큼 아파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 몸을 지탱하려고 손을 짚었지만 하필 그곳에는 깨진 유리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다.
  • 날카로운 파편이 손바닥을 깊숙이 파고들었고 뼛속까지 저미는 통증이 온몸을 휘감았다.
  • 붉은 피가 갈색 술과 뒤섞여 번지며 손바닥과 바닥을 물들였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오민준의 시선은 오직 이수아에게만 향해 있을 뿐 등 뒤에서 한은하가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 그는 이수아의 다친 손을 감싸 쥐며 마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말했다.
  • “수아야, 괜찮아? 많이 아프지? 지금 바로 병원 가자. 상처부터 치료해야 해.”
  • 이수아는 힘없이 그의 품에 기대며 울먹였다.
  • “민준 오빠... 난 그냥 은하 언니랑 장난 좀 치려던 것뿐이야. 이렇게까지 화낼 줄은 몰랐어... 일부러 그런 거 정말 아니야.”
  • 훌쩍이는 척하면서도 그녀는 슬쩍 시선을 내려 바닥에 쓰러진 한은하를 바라봤다.
  • 눈빛에는 계획대로 일이 흘러간 통쾌함이 스쳐 지나갔다.
  • 한은하는 창백한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 배를 쥐어짜는 통증은 점점 심해졌고, 허벅지 사이로 따뜻한 액체가 천천히 흘러내리는 감각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 안 돼.
  • 제발 아이만은...
  • 커다란 공포가 가슴을 옥죄었다.
  • 한은하는 떨리는 손을 뻗어 오민준을 향해 간신히 입을 열었다.
  • “민준... 병원 좀 데려가 줘... 제발... 배가 너무 아파...”
  • 그제야 오민준이 힐끗 뒤를 돌아봤다.
  • 하지만 그 눈빛에는 걱정도, 안타까움도 없이 차가운 혐오와 짜증만이 가득했다.
  • “한은하, 수아 손에 피 나는 거 안 보여? 네가 이렇게 악독한 줄은 진짜 몰랐네. 난 지금 수아 병원 데려갈 거니까 그만 쇼해. 또 불쌍한 척하지 말고.”
  • 그는 몸을 숙여 이수아를 번쩍 안아 올렸다.
  • 동작은 자연스럽고도 다정했다.
  • 한은하 곁을 지나치던 그는 잠시 걸음을 멈추더니 둘만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낮게 경고했다.
  • “또 잔꾀 부리지 마. 알아서 집에 들어가. 오늘 일은 나중에 따로 얘기하자.”
  • 말을 마친 오민준은 고개 한 번 돌리지 않은 채 이수아를 안고 룸을 빠져나갔다.
  • 문 너머로 그의 뒷모습이 사라지는 순간, 한은하가 붙잡고 있던 마지막 희망마저 무너져 내렸다.
  • “쟤 좀 봐. 그냥 한 번 부딪힌 걸로 뭘 저렇게 유난이래?”
  • “수아가 누군데. 이씨 가문의 금지옥엽이잖아. 진짜 흉터라도 남으면 책임질 수는 있고?”
  • “그러니까. 임신했다고 뭐라도 된 줄 아나? 조금 다친 걸로 저 난리야?”
  • 오민준 곁을 맴돌던 친구들은 하나같이 비웃음과 조롱을 쏟아냈다.
  • 끝없는 절망이 차가운 파도처럼 밀려와 한은하를 완전히 집어삼켰다.
  • 의식은 점점 흐려졌고, 귓가를 때리던 조롱도 서서히 멀어져 갔다.
  • 배 속을 찢어놓는 듯한 고통과 손바닥을 파고든 유리 조각의 통증만이 유난히 선명했다.
  • 그렇게 의식을 잃기 직전, 커다란 그림자가 눈앞을 덮었다.
  • 눈부신 조명과 악의 어린 시선들을 한꺼번에 가려주는 듯했다.
  • 순간 룸 안의 웅성거림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 한은하는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 역광 속에서 보이는 건 훤칠하고 길게 뻗은 남자의 실루엣뿐이었다.
  • 남자는 잘 재단된 검은색 수트를 입고 있었다.
  • 이 난장판 같은 공간 속에서도 범접할 수 없는 기품과 서늘한 거리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고 압도적인 존재감에 숨이 막힐 정도였다.
  • 조금 전까지만 해도 손가락질하며 떠들던 사람들 역시 입을 다물었다.
  • 그들의 얼굴에는 두려움과 경외심이 뒤섞여 있었다.
  • 남자는 바닥에 쓰러진 한은하를 내려다봤다.
  • 깊은 눈동자에서는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 그가 누구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절박한 본능이 그녀를 움직였다.
  • 피로 얼룩진 손을 들어 그의 바짓단을 꽉 붙잡았다.
  • 그리고 마지막 힘을 쥐어짜 애원했다.
  • “제발... 병원에 데려가 주세요... 우리 아이 좀 살려 주세요...”
  • 남자의 시선이 그녀의 피 묻은 손바닥과 바닥에 번진 붉은 흔적 위를 천천히 훑으며 짙은 눈빛이 더욱 깊게 가라앉았다.
  • 그 침묵에 한은하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 하지만 다음 순간.
  • 체온이 남아 있는 고급 수트 재킷이 조심스럽게 그녀의 몸 위를 덮었다.
  • 망가진 몰골과 초라한 모습을 가려주듯...
  • 남자는 몸을 숙여 한은하를 조심스럽게 안아 올렸다.
  • 그리고 망설임 없이 룸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 남자가 담담히 입을 열었다.
  • “가장 가까운 사립 병원으로.”
  • “네, 회장님.”
  •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민준 일행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았다.
  • 한은하는 그의 품 안에서 몸을 웅크렸다.
  • 옷깃 너머로 남자에게서만 풍기는 서늘하고 깨끗한 향이 코끝을 스쳤다.
  • 룸 안을 가득 메운 술 냄새와 싸구려 향수 냄새와는 선명하게 대비되는 향이었다.
  • 팽팽하게 긴장했던 신경이 조금씩 풀려나갔고 결국 더는 버티지 못한 채, 의식은 깊고 짙은 어둠 속으로 완전히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