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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 나는 월세방으로 돌아오자마자 문을 잠그고, 커튼을 끝까지 내려 외부의 빛을 차단했다.
  • 방 안에는 휴대폰 화면에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빛과, 손에 쥔 작은 USB 하나뿐이었다.
  • 나는 그것을 노트북에 꽂았다.
  • 폴더가 뜨자마자 여러 개의 파일이 정리된 채 나타났다.
  • 첫 번째 파일은 서준호의 일기 스캔본. 훨씬 또렷했다.
  • 삐뚤빼뚤한 글씨로, 강도혁이 들고 있던 ‘작은 수첩’을 봤다고 적혀 있다. 거기엔 수많은 그림의 이름과 숫자가 나열되어 있었다. 일부 금액은 비현실적으로 커, 뒤에 길게 이어진 ‘0’들이 눈에 들어왔다.
  • 서준호가 옆에 물음표를 그려 놓고 썼다. “그림이 이렇게 비싸? 사탕보다 훨씬 비싸.”
  • 그 아래에는 또 다른 문장이 남아 있었다. 사고 나기 며칠 전의 날짜였다. “세아 누나가 내 화첩을 가져갔어, 공부한다고 한대. 기분이 안 좋아 보였어.”
  • 두 번째 파일은 은행 거래 내역이었다.
  • 기록은 명확했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 강도혁은 신탁기금의 자금을 빼돌려,
  • 일부는 윤세아 명의의 아트 스튜디오로 넘기고,
  • 나머지는 여러 단계를 거쳐 결국 자신의 해외 계좌로 빼돌렸다.
  • 서준호의 삶을 보장하겠다던 약속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보였다.
  • 세 번째 파일은 사진 파일이었다.
  • 윤세아의 성형 전후 비교 사진.
  • 수술 전의 얼굴은 평범했다. 쉽게 기억에 남지 않는, 익숙한 인상의 한 조각에 불과했다.
  • 수술 후… 그 얼굴은 스무 살 무렵의 나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었다!
  • 눈매, 입꼬리 각도, 심지어 내 턱에 있는 그 작은 점까지 의도적으로 재현된 흔적이었다.
  • 강도혁! 이렇게까지 서둘러, 내 자리를 대신할 사람을 찾은 것도 모자라
  • 끝내 나를 본뜬 얼굴로 만들어야 했던 걸까?
  • 그 사실이 견딜 수 없을 만큼 불쾌했다.
  • 나는 화면을 응시했다. 눈이 말라 따가웠지만, 눈물은 끝내 흐르지 않았다.
  • 온몸의 피가 머리로 치밀어 오르듯, 관자놀이가 미세하게 떨렸다.
  • 증오.
  • 그 감정은 끓어오르는 기름처럼 내 안 깊숙한 곳을 뒤흔들었고, 나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 그때였다.
  •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 급하지도, 그렇다고 망설임도 없는 일정한 박자. 어딘가 확신에 찬, 여유로운 두드림이었다.
  • 나는 벌떡 일어나 문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
  • 문밖에 서 있는 사람은, 남이 아닌 강도혁이었다.
  • “서이린.”
  • 그가 입을 열었다. 여전히 부드럽고 듣기 좋은 목소리였다. 한때 나는 그 목소리에 속아 넘어가곤 했다.
  • “나왔네. 사람을 보내 찾아보게 했지만 못 찾더라. 그래서 직접 왔어.”
  • 그의 손엔 얇은 봉투 하나와 열쇠 한 벌이 들려 있었다.
  • “이거, 받아.”
  • 그는 봉투와 열쇠를 내밀었다. 마치 아무렇지 않은 호의라도 베푸는 사람처럼. “안에는 오백만 원짜리 수표가 들어 있어. 교외에 있는 아파트도 하나 마련해 두었으니, 거기서 지내. 거기서 지내. 서준호 일은… 사고였어. 나도 마음이 아파. 이건 그냥 내 나름의 성의야.”
  • 성의라고?
  • 그 가식적인 얼굴을 보는 순간, 속이 무언가 뒤틀리듯 끓어올랐다.
  • 당장이라도 그를 향해 달려들고 싶은 충동을, 나는 가까스로 눌러 담았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힘을 주었다.
  • “강도혁.” 나는 그것을 받아 들며, 언젠가는 그들이 내게서 빼앗아 간 모든 것을 되찾아 올 것이라고 다짐했다.
  • “그 위선적인 자비는 집어치워.”
  • 그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직접적일 줄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 나는 몸을 돌려 방 안 낡은 책상으로 돌아갔다. 서랍을 열어 가장 안쪽을 더듬어, 오래된 벨벳 상자를 꺼냈다.
  • 뚜껑을 열었다.
  • 남자용 시계 하나가 놓여 있었다. 짙은 남색의 다이얼은 마치 밤하늘을 닮아 있었다.
  • 그가 창업 막 시작했을 때, 내가 아르바이트 몇 개를 전전하며 돈을 모아 사 준 생일 선물이었다.
  • 그때 그는 날 끌어안고 말했다. 이건 자기 행운을 지켜 줄 물건이라며, 평생 간직하겠다고.
  • “더러운 거, 가져가.”
  • 나는 시계를 집어 들었다. 한 번도 시선을 주지 않은 채, 팔을 힘껏 휘둘러 문밖으로 내던졌다!
  • 쨍그랑!
  • 짧고 날카로운 파열음이 울렸다.
  • 시계는 강도혁의 발치에 떨어졌고, 유리는 산산이 부서지며 부품들이 사방으로 튀어 흩어졌다.
  • 강도혁의 표정이 굳었다.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 아마도 그는, 내가 그 ‘행운’이라는 것을 직접 부숴버릴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 “너…” 그의 얼굴이 굳게 식었다.
  • 나는 그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 단숨에 거리를 좁혀, 거의 얼굴이 맞닿을 만큼 다가섰다.
  • “강도혁, 똑똑히 들어.”
  • “내 동생 준호의 목숨.”
  • “윤세아 그 여자가 훔쳐간 내 인생.”
  • “그리고 내 7년.”
  • “네 돈 따위로는 퉁칠 수 있는 게 아니야!”
  • 나는 이를 악물고, 한 마디 한 마디 짓씹듯 내뱉었다.
  • “목 씻고 기다려.”
  • “나, 서이린, 돌아왔으니까.”
  • 강도혁이 떠난 뒤, 나는 문에 등을 기대고 큰 숨을 몰아쉬었다. 심장은 여전히 빠르게 뛰고 있었고, 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 조금 전의 감각이, 아직도 몸 안에 남아 있었다.
  •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른다. 몇 분? 어쩌면 그보다 짧다.
  • 또 누가 문을 두드렸다.
  • 그러나 문을 열었을 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 대신 바닥 위에, 검은 리본으로 묶인 단단한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 나는 경계하며 텅 빈 복도를 한 번 훑어봤다. 그리고 몸을 숙여 상자를 집어 들어 안으로 가져왔다.
  • 상자를 열었다.
  • 드레스 한 벌.
  • 안에는 단단한 카드 한 장이 함께 들어 있었다. 그 위에는 짙은 먹빛 글씨로 단 세 글자가 인쇄되어 있었다. 거부할 수 없는 명령처럼 또렷하게—
  • 연회에서 봐요.
  • 차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