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 이때 강지연은 바에 앉아, 심심한듯 손에 든 잔을 툭툭 흔들고 있었다.
- 위층의 하도진이 무슨 근거 없는 자만심으로 뭘 확신하는지, 알 리가 없었다.
- 알았다 해도, 먼저 가서 엮일 생각 따윈 추호도 없었다.
- “지연아, 오늘만 벌써 몇 번째야?”
- 전민정이 옆에서 웃으며 놀렸다.
- “십 분 만에 너한테 작업 건 잘생긴 애들, 네 명이나 차였어.”
- 강지연의 눈에 역겨움이 스쳤다.
- “역겨워.”
- 작업 걸던 남자들 눈에는 빨간 원피스 아래 라인밖엔 없었다. 탐욕이랑 욕망만 번들거렸다.
- 그때, 꽃무늬 셔츠에 굵은 금목걸이를 건 남자가 건장한 놈 둘을 데리고, 사람들을 막 밀쳐내며 다가와 지연 앞을 막아섰다.
- “아가씨, 혼자야?”
- 그는 바에 몸을 기댄 채, 지가 근사하다고 믿는 듯 기름진 미소를 지었다.
- “난 블랙호크파 대표, 박종원. 얼굴 좀 봐줘. 위층 가서 두 잔만 하자?”
- 강지연은 눈꺼풀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 블랙호크파?
- 강남구 외곽에서 기어다니는 작은 갱단일 뿐.
- 그녀는 담담한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
- “관심 없어. 꺼져.”
- 박종원의 얼굴에 걸린 미소가 굳어버렸다.
- 깡패들은 체면을 목숨처럼 여기는데. 그것도 사람들 앞에서 여자한테 대놓고 거절당하자, 그의 눈빛이 순식간에 어둡게 가라앉았다.
- “씨발 년아, 내가 봐줄 때 잘해.”
- 그는 목소리를 낮춰 대놓고 협박했다.
- “내가 너 찍은 거, 영광인 줄 알아. 이 동네에서 나한테 ‘꺼져’라고 한 년 아직 없거든.”
-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박종원이 손을 뻗어 강지연의 어깨를 확 낚아채려 했다.
- 전민정이 비명을 질렀다.
- “야, 너 뭐 하는 거야?!”
- 하지만 강지연의 표정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여전히 태연했다.
- 그의 손끝이 피부에 닿기 직전—
- 지연은 손을 홱 뒤집어 그의 손목을 정확히 꺾어 잡았다. 그대로 못 박듯 멈춰 세웠다.
- 3년 전업주부였다고 해서, 뼛속에 박힌 본능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 그녀는 수술칼을 쥐는 ‘고스트 닥터’였고, 거기다 가장 빡센 근접 격투 훈련까지 받은 사람이었다.
- 사람 뼈 어디가 가장 약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있다.
- “너….”
- 박종원이 얼어붙었다.
- 겉보기엔 여린 여자일 줄 알았는데, 힘이 이럴 줄은 몰랐던 것이였다.
- 지연은 그가 헛소리할 틈도 주지 않았다.
- 당기는 힘을 그대로 타고, 몸을 틀어 중심을 확 내려꽂았다.
- 쿵—!
- 키가 거의 190인 박종원이 순식간에 업어치기 한 방으로 떠넘겨져, 유리 원탁 위에 세게 꽂혔다.
- 와장창— 잔이랑 술이 함께 바닥에 쏟아졌다.
- “아악!! 내 허리!”
- 박종원은 바닥에서 몸을 웅크린 채 끙끙 신음했다.
- 시끌벅적하던 바는 순식간에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 사람들 모두가 눈을 크게 뜨고 그 장면만 멍하니 바라봤다.
- 강지연은 허리를 곧게 펴고, 손에 없던 먼지나 털 듯 무심히 두 손을 털었다.
- 바닥에서 신음하는 남자를 내려다보며 차갑게 말했다.
- “말했잖아. 난 너한테 관심 없어.”
- 그 말이 끝나자, 그녀는 바 위의 티슈를 뽑아 방금 놈한테 닿았던 손을 역겹다는 듯 쓱쓱 닦았다.
- “다음에 또 그 더러운 손으로 날 만지면, 내가 직접 메스로 한 토막 한 토막 잘라버릴 거야.”
- 박종원은 숨이 턱 막혔다. 마치 악마가 귓속말을 한 것처럼 얼굴이 하얗게 굳었다.
- 그는 발버둥치며 일어나, 경호원 몇명이 부축을 받은채 창피하게 자리를 떠났다.
- 강지연은 그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손을 닦은 티슈를 휴지통에 정확히 던져 넣었다.
- 술 마시려던 기분이 완전히 깨져버렸다.
- “민정아, 자리 옮기자. 여기 너무 시끄럽다.”
- 강지연이 돌아서서 전민정 손을 잡고 나가려던 찰나, 코가 뜻하지 않게 단단한 사람의 몸에 부딪혔다.
- 익숙한 차가운 시더 향이, 제멋대로 코를 파고들었다.
- 고개를 들자, 깊고 어두운 눈동자와 딱 마주쳤다.
- 하도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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