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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 한편, 하 회장 일가가 운영하는 사설 병원 VIP 병실.
  • 공기에는 은은한 향수가 배어 있었다.
  • 정지혜가 병실에 누워 있었다. 얼굴은 피 한 방울 없는 듯 투명했다.
  • 그녀는 하도진의 손을 꽉 붙잡고, 눈가를 붉히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오빠…… 나, 곧 죽는 거야?”
  •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 하도진은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 “의료계 인맥을 전부 동원했어. 돈을 얼마나 쓰든, 반드시 널 치료해 낼 거야.”
  • 그때, 병실 문이 가볍게 두드려졌다.
  • 하도진의 수석 비서 안성빈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 그는 병상 위 힘 없이 누워있는 정지혜를 힐끔 보더니, 얼굴에 미묘한 긴장감을 띠었다.
  • 이내 공손히 입을 열었다.
  • “회장님, 보고드릴 일이 두 가지 있습니다.”
  • 하도진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 그는 정지혜의 손을 놓고, 밖에서 얘기하자고 눈짓했다.
  • 병원 면회실.
  • 하도진은 천천히 통유리창 쪽으로 걸어갔다.
  • “말해.”
  • “회장님, 첫 번째는, 3년간 종적을 감췄던 의료계의 천재 ‘고스트’가 오늘 공식 복귀를 선언했습니다.”
  • 안성빈의 목소리에 흥분이 감춰지지 않았다.
  • “벌써 초고난도 수술을 몇 건 맡았고요, 보수는 어마어마한데 성공률은 100%랍니다.”
  • 하도진의 심장이 반 박자 늦게 뛰었다.
  • 고스트——생사 경계에서 사람을 끌어온다는 전설의 외과 천재.
  • 그를 모셔올 수만 있다면, 정지혜는 살수있다.
  • 하도진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잡아당겼다.
  • “돈은 상관없어. 당장 접촉해. 얼마를 부르든, 하가 가문에게 돈은 문제가 아니야.”
  • “그건 홍보팀이 이미 접촉 중입니다만……”
  • 안성빈이 잠시 말을 고르고, 일부러 목소리를 낮췄다.
  • “사모님 관련해서 말입니다.”
  • ‘사모님’이라는 말에, 하도진의 미간을 찌푸렸다.
  • 그 여자, 어제는 납치니 실종이니 하며 쇼를 벌였지.
  • 관심 끌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군.
  • 하도진은 코웃음을 치며, 비웃음이 가득한 못소리로 말했다.
  • “이번엔 또 뭐 하자는 거야? 자살하는 척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아니면 언론 앞에서 내가 차갑게 굴었다고 눈물 쇼를 하려는 거야?”
  • “둘 다 아닙니다.”
  • 안성빈은 이마의 식은땀을 닦았다.
  • 그는 떨리는 손끝으로 서류봉투를 가방에서 꺼내 두 손으로 내밀었다.
  • “사모님이 방금 사람을 시켜 보낸 겁니다.”
  • 하도진은 성가신 표정으로 봉투를 잡아 뜯듯이 열었다.
  • [이혼합의서]
  • 두껍게 박힌 검은 글자가, 쨍하고 그의 뺨을 후려친 듯했다.
  • 늘 얌전하고 말 잘 듣던 그 여자가, 감히 먼저 이혼을?
  • 하도진은 안의 내용을 빠르게 훑었다.
  • 강지연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 부동산, 지분, 심지어 값이 천억 원에 달하는 다이아몬드 반지도 요구하지 않았다.
  • 합의서 서명자리의 사인은 시원시원했다. 미련이라고는 한 점도 없었다.
  • “사모님이 전말을 남겼습니다……”
  • 안성빈이 침을 꿀꺽 삼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회장님께서 이미 새 아내를 맞으셨으니, 본인은 ‘죽은 사람’이라 생각하고 자리를 비우겠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회장님과 정 양님과 사랑이 영원하시길 빌겠다고 했습니다……”
  • 하도진의 손끝에 서류를 움켜쥐었다.
  • 죽은 사람?
  • 어젯밤 자길 구하러 가지 않은 걸 탓하는 거야?
  • 그는 이를 악물고, 이빨 사이로 소리를 짜내 물었다.
  • “강지연은 지금 어디 있어?”
  • “사모님은 한강가 저택에서 이미 이사 나가셨습니다.”
  • 안성빈이 사실대로 보고했다.
  • “부하들이 아직 흔적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마치…… 세상에서 사라진 것처럼 흔적 하나 없습니다.”
  • 하도진은 구겨진 이혼합의서를 내려다봤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짜증이 속에서 치밀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