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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 사흘 뒤, 서울의 잔뜩 흐리던 하늘이 드디어 밝았다.
  • 그런데 하 그룹 최상층 사무실 안은 유독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 하도진은 얼굴을 잔뜩 굳힌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 이혼 합의서가 도착한 뒤로, 강지연은 마치 증발한 사람처럼 사라졌다.
  • 동원할 수 있는 정보망은 다 돌렸는데도, 흔적 하나 잡히지 않았다.
  • 강지연, 진짜 무슨 일 당한 거 아니야?
  • 그 생각이 스치자 속이 서늘해졌다.
  • 멍하니 생각이 잠겨 앉아 있던 그때, 책상 위 개인용 전화가 갑자기 진동했다.
  • 화면에 ‘한동준’이라는 이름이 번쩍였다.
  • 그는 전화를 받았다.
  • “도진이 형, 오늘 밤에 술이나 한잔하면서 머리 좀 식힐래?”
  • 이유 모를 초조함과 불안이 그를 갉아먹고 있었다.
  • 거절하지 않고 낮게 답했다.
  • “그래.”
  • 밤이 내리고, 거리 네온이 줄줄이 켜졌다.
  • 클럽 ‘화이트 나이트’ 2층 VIP룸.
  • 한동준이 잔을 들어 환하게 웃었다.
  • “건배, 도진이 형! 드디어 그 재미없는 짐짝을 털어냈다니, 축하해!”
  • 하도진은 잔의 위스키를 단숨에 들이켰다.
  • 매운 술이 목을 타고 내려갔지만, 속에서 들끓는 짜증은 전혀 가라앉지 않았다.
  • 동준이 그의 잔을 다시 가득 채웠다.
  • “형, 솔직히 말해서 강지연은 하 집안 안주인 자리랑은 딴판이야. 그냥 가정부 같잖아. 맨날 형만 붙들고 있는 거 말곤 쓸모가 없어. 진작에 이혼했어야지. 지혜 누나가 형이랑 제일 잘 맞아.”
  • “닥쳐.”
  • 하도진이 눈만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 “걔가 사고라도 났을까 봐 걱정돼?”
  • 동준이 속내를 꿰뚫고 비웃듯 코웃음 쳤다.
  • “에이, 순진하게 굴지 마, 형. 그 여자 머리 굴리는 거 형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거든. 납치니 약이니, 다 형이랑 지혜 누나 결혼식 망치려고 쇼한 거지.”
  • 그는 잔을 축이고 비아냥거렸다.
  • “형이 못 찾는 건, 걔가 일부러 숨은 거라는 뜻이야. 내 장담하는데, 일주일도 못 버틴다. 돈 떨어지면 울고불고 돌아와서 형한테 빌 거야…”
  • 말이 끝나기도 전에, 1층 홀 댄스플로어 쪽이 갑자기 웅성거렸다.
  • 휘파람 소리, 탄성, 그리고 남자들의 거친 숨소리가 뒤섞였다.
  • “아래서 왜 저 난리야? 몸매 죽이는 여신이라도 왔나?”
  • 한동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대수롭지 않게 몸을 내밀어 아래를 내려다봤다.
  • 다음 순간, 동공이 쪼그라들었다.
  • “도진이 형, 나 취한 거지?”
  • 그는 고개를 돌려 하도진을 봤다. 얼굴이 창백했다.
  • “저 여자… 강지연이랑 똑같이 생기지 않았어?”
  • 하도진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무의식적으로 그의 시선을 따라 아래를 봤다.
  • 아래, 빽빽하던 사람들이 스르르 양쪽으로 갈라지며 길이 생겼다.
  • 와인빛 슬립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문쪽에서 바 쪽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 탄탄한 곡선은 타이트한 원피스에 딱 붙어 또렷이 살아났다.
  • 살짝 웨이브 진 긴 머리가 하얀 어깨에 느슨히 흘러내렸다. 붉은 입술은 가시를 품은 장미 같았고, 눈빛은 싸늘하고 도발적이었다.
  • 그 순간, 하도진은 숨 쉬는 것도 잊었다.
  • 앞치마도, 민낯도, 예전의 비위 맞추는 표정도 없었다.
  • 달라진 강지연은 예뻐도 너무 예뻐서, 심장이 저도 모르게 뛰었다.
  • “거 봐, 도진이 형, 내 말이 맞잖아!”
  • 동준이 정신을 차리더니 비웃었다.
  • “입으로는 이혼이네 뭐네 떠들어도 몸은 솔직하거든. 이런 난잡한 차림으로 형 단골 클럽에 나타난 거, 다 형한테 들이대려고 그런 거겠지.”
  • 하도진은 대꾸도 하지 않았다.
  • 장내의 남자들 시선이 전부 굶주린 늑대처럼 강지연에게 꽂혀 있는 걸 보는 순간, 미친 것처럼 소유욕이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 내 아내가, 감히 이런 꼴로 이런 데를 와?
  • 하지만 곧 이를 악물고 분노를 눌렀다.
  • 한동준의 말이 틀리지 않다. 이렇게까지 꾸민 건, 죄다 내 주의를 끌려는 속셈이다.
  • 결국, 강지연은 나 없이는 못 사는 거다.
  • 하도진은 코웃음을 치며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 아래의 실루엣을 노려보며,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 “상관하지 말고 알아서 기어 올라오게 둬. 모두가 보는 앞에서, 지난 이틀간의 멍청한 짓들 다 인정하고 내한테 사과하게 할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