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오래된 친구
- 다은은 재빨리 노트북을 덮고 휴대폰을 꺼냈다.
-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건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 새 신분과 위조 서류를 완벽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단 한 사람.
- 그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정건우뿐이었다.
- 정건우와 처음 만난 건 5년 전, 한 사이버 보안 컨퍼런스에서였다.
- 당시 다은은 행사 취재를 맡은 기자였고, 건우는 자신이 개발한 스타트업 프로젝트를 발표하러 나온 상태였다.
- 그날 다은은 깊은 인상을 받았다.
- 건우는 IT 분야에 대한 지식이 놀라울 만큼 뛰어났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해냈다.
- 이후 두 사람은 여러 프로젝트와 사건에서 계속 마주쳤고, 어느새 서로를 가장 신뢰하는 친구가 되어 있었다.
- 다은은 망설임 없이 그의 번호를 눌렀다.
- 몇 번의 신호음 끝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여보세요?”
- “정건우, 나 네 도움이 필요해. 그리고 급해.”
- 다은은 애써 침착하게 말했지만 목소리 끝에는 긴장이 묻어 있었다.
- “무슨 일인데?”
- 건우의 목소리에도 가벼운 걱정이 스쳤다.
- 다은은 숨을 짧게 들이마셨다.
- “새 이름이 필요해. 새로운 신분이랑 경력도.”
-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녀는 낮게 덧붙였다.
- “서류 전부 다 만들어야 해. 졸업장, 자격증, SNS 기록까지. 완벽해야 해. 조금의 의심도 받아선 안 돼.”
- “…….”
- “내가 서이준 회사에 들어가야 하거든.”
- 전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 건우는 들은 내용을 천천히 정리하는 듯했다.
- 몇 초 후, 그가 낮게 말했다.
- “상황이 꽤 위험해 보이네.”
- 그리고 곧 특유의 침착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 “쉽진 않겠지만 가능해. 새 이름은 뭘로 할 거야?”
- 다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 그리고 아주 천천히 입을 열었다.
- “한옥순.”
- 그 이름을 말하는 순간, 오래된 기억이 마음속을 스쳐 지나갔다.
- 옥순이라는 이름은 언제나 그녀에게 따뜻함과 안식을 떠올리게 했다.
- 그리고 그건 외할머니의 이름이었다.
- 어쩌면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가장 안전한 기억 속으로 숨고 싶었던 걸지도 몰랐다.
- “...좋아. 한옥순.”
- 건우가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이틀 정도만 줘. 완벽하게 만들어줄게.”
-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 “근데… 정말 괜찮겠어?”
- 그 질문 속에는 친구로서의 걱정이 담겨 있었다.
- 다은은 창밖의 비를 바라봤다.
- “아니.”
- 그녀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 “안 괜찮아.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어.”
- 그리고 작게 웃으며 덧붙였다.
- “고마워, 건우야. 네가 도와줄 거라는 건 알고 있었어.”
- 통화를 끝낸 뒤 다은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 적어도 이제 계획은 생겼다.
- 하지만 시간이 많지 않았다.
- 이준의 개인 비서 자리는 업계에서도 손꼽히는 자리였다.
- 급여도 높았고 영향력도 컸다.
- 그만큼 경쟁 역시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 다은은 다시 노트북을 열었다.
- 그리고 ‘한옥순’이라는 이름으로 이력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 한 줄 한 줄 신중했다.
- 경력, 학력, 업무 경험.
- 모든 내용을 완벽하게 조율하며 작은 허점 하나조차 남기지 않으려 했다.
- 몇 시간이 흐른 뒤, 그녀는 마지막으로 내용을 다시 검토했다.
- 오타는 없는지.
- 설정이 어색하진 않은지.
- 현실적으로 보이는지.
- 확인을 끝낸 다은은 잠시 마우스 위에 손을 올린 채 숨을 멈췄다.
- 그리고 결국 전송 버튼을 눌렀다.
- 이제 남은 건 기다림뿐이었다.
- ---
- 다음 날.
- 다은은 새로운 신분 서류를 손에 들고 있었다.
- 그녀의 시선은 여권 위 이름에 오래 머물렀다.
- 한옥순.
-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름이었다.
- 하지만 이제부터 그녀는 그 이름으로 살아야 했다.
- 다은은 무의식적으로 숨을 죽였다.
- 누군가 다른 사람이 되는 일 자체는 낯설지 않았다.
- 기자 생활을 하며 수없이 많은 역할을 연기해왔으니까.
-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 이번에는 훨씬 위험한 게임이었다.
- 만약 정체가 드러난다면—
- 그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 순간 그녀의 얼굴 위로 망설임이 스쳐 지나갔다.
- 하지만 다은은 곧 감정을 억눌렀다.
- 두려움을 느낄 시간은 없었다.
- 지금 그녀를 가장 불안하게 만드는 건 다른 문제였다.
- 아직 회사에서 연락이 오지 않았다.
-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함은 점점 커져만 갔다.
- 그녀는 몇 분 간격으로 휴대폰 화면을 확인했다.
- 혹시 이미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를 차지한 건 아닐까.
-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 그때였다.
- 휴대폰이 갑자기 진동했다.
- 다은의 심장이 순간 멎는 듯했다.
- 그녀는 거의 반사적으로 전화를 집어 들었다.
- 발신자를 확인할 틈도 없이 곧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 “좋은 아침입니다. 한... 옥순 씨 맞으신가요?”
- 차분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여기는 드레이크 그룹입니다. 보내주신 이력서를 검토했고, 면접을 진행하고 싶어서 연락드렸습니다.”
- 다은은 숨을 삼켰다.
- “내일 오전 열 시 괜찮으실까요?”
- 그 순간, 몸을 짓누르던 긴장이 조금씩 풀려나가는 게 느껴졌다.
- “네, 물론입니다.”
- 그녀는 최대한 침착하게 대답했다.
- “내일 열 시에 뵙겠습니다.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 전화를 끊은 뒤에도 다은은 한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 그리고 천천히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 첫 번째 문은 열렸다.
- 이제부터는 전부 그녀에게 달려 있었다.
- 그날 밤, 다은은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 창밖에서는 비가 끊임없이 창틀을 두드렸고, 집 안의 작은 소음조차 그녀의 신경을 날카롭게 자극했다.
- 바닥이 삐걱거리는 소리.
-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인기척.
- 모든 것이 마치 다가오는 위험의 전조처럼 느껴졌다.
- 어둠 속 그림자조차 그녀를 위협하는 존재처럼 보였다.
- 다은은 몇 번이나 몸을 뒤척였다.
- 하지만 아무리 눈을 감아도 잠은 찾아오지 않았다.
- 결국 아침은 알람보다 먼저 찾아왔다.
- 다은은 피곤에 지친 몸을 일으켰다.
- 밤새 거의 잠들지 못했지만 이상하게도 정신만큼은 날카롭게 깨어 있었다.
- 그녀는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얼굴을 바라봤다.
- 눈 밑에는 희미한 피로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 오늘은 완벽해야 했다.
- 조금의 흐트러짐도 보여선 안 됐다.
- 다은은 냉각 마스크를 꺼내 얼굴 위에 천천히 올렸다.
- 차가운 감촉이 피부를 스치자, 그녀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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