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의심의 파편
- 하지만 올리비아는 그의 마음을 흔들 만한 이름을 단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 그를 불안하게 만들 남자의 존재에 대해서도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 “니콜라스, 왜 계속 말이 없니?”
- 갑자기 마거릿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그녀는 아들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려는 듯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 순간 모두의 시선이 니콜라스에게 향했다.
- 가슴이 움츠러드는 듯했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았다.
- 가볍게 숨을 들이마시며 평온한 표정 뒤로 미세한 동요를 감췄다.
- “제 인생은 그렇게 흥미진진하지 않거든요.”
- 그는 옅게 웃으며 말했다.
- “그래서 올리비아 이야기 듣는 게 더 즐겁습니다.”
- 마거릿은 눈을 가늘게 떴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곧 식탁 위에는 다시 웃음소리가 번졌고,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음악과 어우러져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 하지만 니콜라스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 그의 모든 시선은 올리비아에게 향해 있었다.
- 그녀는 이야기하고,
- 웃고,
- 미소 짓고,
- 행복해하고 있었다.
- 그리고 그는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 세상에…
- 얼마나 달라진 걸까.
- 그러면서도 여전히 자신이 알고 있던 그 올리비아 그대로였다.
- 하지만 이제 그는 그녀를 단순한 오랜 친구로 볼 수 없었다.
- 한 사람의 여자.
- 오랫동안 자신의 마음속에 살아온 여자.
- 저녁 식사가 끝날 무렵, 마거릿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하품했다.
- “오늘은 길고 감정적으로도 벅찬 하루였어.”
- 그녀는 다정한 눈빛으로 아들과 올리비아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 “우리 부부는 먼저 쉬러 갈게. 너희 둘은 할 이야기가 많겠지?”
- “물론이죠.”
- 올리비아가 미소 지었다.
- “이렇게 따뜻하게 맞아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거릿과 리처드를 차례로 안아 주었다.
- “얘야, 이제 그만 감사하다고 해.”
- 마거릿이 웃으며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 “넌 우리에게 딸 같은 아이야. 네가 돌아와서 정말 행복하단다.”
- 그 말에 올리비아의 눈가가 따뜻하게 젖어들었다.
- 마거릿은 마지막으로 그녀의 어깨를 다정하게 쓰다듬고 리처드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
- 올리비아는 몸을 돌려 우아하게 소파에 앉았다.
- 마치 원래부터 자신의 자리였던 것처럼 자연스럽고 편안한 몸짓이었다.
- “정말 천사 같은 분들이야.”
- 햇살 아래 늘어지게 몸을 펴는 고양이처럼 나른하게 기지개를 켜며 그녀가 웃었다.
- 니콜라스는 힐끗 그녀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 “맞아. 다만 어머니가 가끔은… 너무 적극적이실 때가 있지.”
- 올리비아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 “카밀라 이야기 말하는 거야?”
- 니콜라스는 순간 굳어버렸다.
- 심장이 움찔 내려앉았다.
- ‘왜 카밀라 이야기를 올리비아한테 한 거지?’
- 속에서 짜증이 치밀어 올랐지만 그는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 “카밀라는 내게 아무 의미 없어.”
- 담담하지만 단호한 목소리였다.
- “그럼 누가 의미 있는데?”
- 올리비아가 짓궂은 눈빛으로 물었다.
- 니콜라스는 말하고 싶었다.
- ‘정말 모르겠어?
- 내게 의미 있는 사람은 너야.
- 오직 너뿐이야.’
- 하지만 끝내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다른 것이었다.
- “아무도 없어.”
- 그는 시선을 고정한 채 되물었다.
- “넌 어때?”
- 올리비아는 예상치 못한 질문에 눈을 크게 떴다.
- “음… 사실 남자들이 꽤 많이 따라다니긴 했어.”
- 그 말에 니콜라스의 몸이 굳었다.
- 주먹이 저절로 꽉 쥐어졌다.
- “그런데 말이야.”
- 올리비아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 “이상하게도 누구를 만나든 자꾸 너랑 비교하게 되더라. 그런데 아무도 내 기준에 못 미쳤어.”
- 니콜라스의 심장이 순간 멈췄다.
- ‘무슨 뜻이지?
- 혹시… 나를?’
- 그는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려 했다.
- 하지만 올리비아는 자신이 얼마나 엄청난 말을 했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 아니면,
- 정말 모르고 있는 걸지도.
- “정원으로 산책 나갈래?”
- 니콜라스가 조용히 말했다.
- 차가운 밤공기라도 마셔야 정신을 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 올리비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두 사람은 울창한 초목 사이로 이어진 좁은 산책길을 천천히 걸었다.
- 밤꽃 향기가 부드럽고 달콤하게 공기를 채우고,
- 달빛은 두 사람의 얼굴 위로 은은하게 내려앉았다.
- 멀리서는 귀뚜라미 소리가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 “어릴 때 여기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는지 기억나?”
- 올리비아가 추억에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 “멀리 떨어져 있을 때 힘들면 항상 널 떠올렸어.”
- 니콜라스는 걸음을 늦추며 주머니 속 손을 꽉 움켜쥐었다.
- “나도 늘 널 생각했어, 올리비아.”
- 조용한 목소리.
- 하지만 어딘가 억눌린 감정이 스며 있었다.
- “5년은… 너무 긴 시간이었어.”
- 그의 말투에 올리비아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 평범한 말인데도,
- 그 안에는 그가 숨기려는 무언가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 ‘왜 저렇게 아픈 사람처럼 말하지?’
- 하지만 그녀는 곧 그런 생각을 털어냈다.
-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으니 어색한 긴장감이 생긴 것뿐이라고.
- 두 사람은 정원 한가운데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 마치 처음 만난 사람처럼.
- 서로를 다시 알아가는 사람처럼.
- 그 눈빛에는 이전과는 다른,
-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 그때,
- 정적을 깨뜨리며 자동차 한 대가 저택 앞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 올리비아가 놀란 듯 몸을 움찔했다.
- “누구지?”
- 그녀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 “이 시간에 손님이 오기엔 너무 늦었는데…”
- 헤드라이트 불빛이 길을 비추며 차에서 내리는 한 여자의 우아한 실루엣을 드러냈다.
- 그 순간.
- 올리비아의 뒤에서 낮게 이를 악무는 소리가 들렸다.
- “젠장…”
- 니콜라스의 목소리에는 짙은 짜증이 묻어 있었다.
- “카밀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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