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의무와 바람 사이에서
- “어머니, 제 아내는 제가 직접 선택하겠습니다. 때가 오면요.”
- 니콜라스는 차분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가 자신의 뜻을 이해해 주길 바랐다.
- 하지만 마거릿은 눈가에 장난기 어린 미소를 띠며 빙긋 웃을 뿐이었다.
- 그 미소는 어떤 말보다 많은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 그녀는 반박하지도, 강요하지도 않았다.
- 그저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
- 하지만 니콜라스는 알고 있었다.
- 어머니가 반드시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리라는 것을.
- 그리고 일주일 후.
- 마거릿이 저녁 식사에 초대한 순간, 그는 자신이 정교하게 짜인 함정에 걸려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카밀라.
- 눈부시게 아름답고 우아했으며, 눈빛에는 자신감이 반짝였다.
- 영리하고 야망이 있었으며, 흠잡을 데 없는 교양까지 갖춘 여자.
- 어머니의 입장에서 보자면 완벽한 며느리감이었다.
- 하지만 니콜라스가 본 것은 달랐다.
- 계산적인 모습.
- 차가운 목적의식.
- 그리고 너무 성급하게 자신의 곁을 차지하려는 욕망.
- 그는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 관심이 없다고.
- 명확하게.
- 하지만 카밀라는 물러서지 않았다.
- 그날 이후 그녀는 마치 자신의 목표가 이미 정해져 있기라도 한 것처럼 행동했다.
- 끊임없는 전화.
- 의미심장한 암시.
- 그리고 마치 우연인 것처럼 같은 행사장에서 마주치게 되는 상황들.
- 카밀라는 두 사람 사이에 이미 무언가가 존재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 휴대전화가 다시 진동했다.
- 니콜라스는 화면을 내려다봤다.
- 카밀라.
- 그는 턱을 굳게 다문 채 통화 거절 버튼을 눌렀다.
- 길게 한숨을 내쉰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 지금 그녀를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 곧 인터뷰가 시작된다.
- 집중해야 했다.
- ---
- 카밀라는 손에 쥔 휴대전화를 꼭 움켜쥔 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 그녀는 원하는 것을 얻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다.
- 니콜라스는 완벽한 상대였다.
- 뛰어난 지성과 카리스마.
- 흠잡을 데 없는 명성.
- 정치인으로서의 밝은 미래.
- 그리고 자신은 그런 그를 가장 완벽하게 빛내 줄 수 있는 여자였다.
- 아름답고, 품위 있으며, 세련된 감각과 완벽한 매너를 갖춘 여자.
- 그녀는 이미 두 사람의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 잡지 표지를 장식하고,
- 카메라 플래시 세례 속에서 함께 웃으며,
- 공식 행사장에서 손을 맞잡고 등장하는 모습.
- ‘레이먼드 부인.’
- 그 이름은 완벽하게 들렸다.
- 적어도 그녀의 상상 속에서는.
- “아직 깨닫지 못했을 뿐이야, 니콜라스.”
- 카밀라는 휴대전화 화면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 “시간문제일 뿐이니까.”
- 그녀는 절대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 ---
- 한편, 인터뷰를 마친 니콜라스는 비로소 긴장을 풀 수 있었다.
- “정말 훌륭하셨어요, 레이먼드 의원님!”
- 비서 미란다가 감탄하며 물 한 잔을 건넸다.
- “오늘 인터뷰로 지지율이 크게 오를 거예요!”
- 니콜라스는 옷소매를 정리하며 옅게 미소 지었다.
- “우리 모두의 성과입니다, 미란다.”
- 담담한 그의 말에 미란다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 니콜라스 레이먼드는 팀을 진심으로 존중하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 직원들의 노력을 알아주었고,
- 생일을 잊지 않고 축하해 주었으며,
- 때로는 각자의 취향에 맞는 선물까지 준비하곤 했다.
- 그의 사무실에는 엄격한 규율이 존재했지만,
- 그보다 더 깊은 존중과 진심이 함께했다.
- 살인적인 일정.
- 높은 기준.
- 끊임없는 긴장.
- 그럼에도 팀원 모두는 자신들이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 알고 있었다.
- 오늘 역시 또 하나의 전진이자 승리였다.
- “오늘 일정이 아직 몇 개 남아 있습니다.”
- 미란다가 태블릿을 확인하며 말했다.
-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녁에는 부모님 댁에 들러야 합니다. 중요한 일이 있어서요.”
- 니콜라스는 평소처럼 차분하게 대답했지만,
- 가슴속에서는 이미 묘한 긴장감이 차오르고 있었다.
- 미란다가 일정표에 메모를 남기는 동안,
- 니콜라스는 문득 자신의 심장이 순간 멈췄다가 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그녀가… 이미 밀라비아에 와 있다.’
- 그 생각이 머릿속을 강하게 파고들었다.
- 모든 걸 취소하고 싶었다.
- 회의도,
- 일정도,
- 지지율도 전부 잊어버리고,
- 차에 올라 그녀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 그녀를 보고 싶었다.
- 그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 정말 돌아왔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를 믿고 있었다.
- 밤낮없이 그의 승리를 위해 뛰는 팀.
- 그의 말과 약속을 믿는 사람들.
- 그리고…
- 그녀 역시.
- ---
- 올리비아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해가 기울고 있었다.
- 부드러운 황금빛 노을이 방 안을 포근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 그녀는 눈을 깜빡이며 초점을 맞추려 했지만,
- 잠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 하지만 흐릿한 기억들이 하나둘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 비행기.
- 긴 여행.
- 밀라비아.
- 그리고 집.
- 주위를 둘러보던 올리비아는 기억이 한꺼번에 밀려드는 것을 느꼈다.
- 이 방.
- 바로 자신의 방이었다.
- 대학교에 가기 전까지 1년 동안 머물렀던 곳.
- 부모님이 실종된 후,
- 레이먼드 가족은 망설임도 없이 그녀를 집으로 데려왔고,
- 사랑과 따뜻함으로 보살펴 주었다.
- 그 순간 올리비아는 오래전 마거릿이 해 주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 니콜라스와 올리비아가 태어났을 때,
- 라벨 가문과 레이먼드 가문은 서로 후견인 계약을 맺었다.
- 만약 어느 한쪽 부모에게 불행한 일이 생긴다면,
- 남은 가족이 아이를 책임지고 돌보기로.
- 두 가족은 혈연이 아니었지만,
- 친가족처럼 서로를 믿고 의지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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