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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네가 사라질 때까지

사랑해, 네가 사라질 때까지

Cointreau

Last update: 1970-01-01

제1화

  • 내 남편 도승헌은 충성 테스트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미치광이였다.
  • 우리 아이는 죽었다. 그가 직접 설계하고 실행한 교통사고로.
  • 나는 차가운 병상에 누워 그저 숨이 멎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그는 무너진 나를 내려다보며 소름 끼치는 미소와 함께 귓가에 속삭였다.
  • “축하해. 이번 테스트도 무사히 통과했네.”
  • 나는 아이의 복수를 위해 기꺼이 괴물이 되기로 했다. 꼬박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완벽한 인형을 연기했다.
  • 그가 나를 하녀처럼 부려 먹어도 나는 그저 웃으며 수종 들었고, 내 커리어를 짓밟으며 은퇴를 종용할 때조차 한 마디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그렇게 3년... 나는 도씨 가문의 추악한 치부와 결정적인 증거들을 하나씩 수집해 나갔다.
  • 그리고 마침내 모든 칼자루를 쥐게 된 날, 나는 이혼 서류를 그의 앞에 던졌다.
  • 도승헌은 불륜녀에게서 얻은 아들, 도찬휘를 품에 안은 채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마지막 테스트라며 뻔뻔하게 지껄였다.
  • “네가 이 아이를 친아들처럼 키우겠다고 맹세해. 그럼 네가 진짜로 날 사랑한다고 믿어줄게.”
  • 나는 한참 동안 그를 내려다보았다. 역겨움을 넘어선 허탈함에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 “도승헌.”
  • 나는 천천히 입을 열어 선고했다.
  • “나를 시험하기 전에, 네 발밑에 떨어진 그 친자확인서부터 확인해 봐.”
  • 내가 던진 서류들이 그의 발치에 낙엽처럼 흩어졌다.
  • “이제부터는 내 테스트 차례야.”
  • ...
  • 눈앞이 새하얗게 번졌다.
  • 지독한 소독약 냄새가 공기 중을 떠돌다 콧속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그 서늘한 감각에 가슴 한구석이 오싹하게 떨려 왔다.
  • 병상에 누운 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조차 없었다. 온몸의 생기가 남김없이 빨려 나간 듯한 허망함이 밀려왔다.
  •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배 속의 감각이었다. 텅 비어버린 그곳은 얼음장처럼 시렸다. 누군가 내 몸에서 가장 따뜻하고 소중한 조각을 칼로 도려낸 것만 같았다.
  • 다섯 달 동안 소중히 품어 왔던 아이... 나의 아이가 사라졌다.
  • 방금 전, 의사가 침대 곁에 서서 메마른 목소리로 선고했다.
  • “차서윤 씨, 마음 굳게 먹으세요. 도착이 너무 늦었던 데다 충격이 커서... 최선을 다했지만 아이는 지키지 못했습니다.”
  • 마음을 굳게 먹으라니.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 그건 내 아이였다. 숨이 막히도록 오래 기다려 온 나의 보물이었단 말이다.
  • 눈물은 이미 말라붙어 얼굴 피부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마치 누군가 얼굴에 풀이라도 발라 놓은 듯한 지독한 이물감이 느껴졌다.
  • 나는 초점 없는 눈으로 천장을 응시했다. 머릿속은 하얗게 타버렸고, 남은 것은 깊고 무딘 마비 같은 통증뿐이었다.
  • 딸깍.
  • 적막을 깨고 병실 문이 천천히 열렸다.
  • 나는 고개를 돌릴 힘조차 없어 눈동자만 간신히 굴렸다.
  • 규칙적인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침대 곁에서 멈춰 섰다. 도승헌이었다.
  • 그가 상반신을 숙여 다가오자 비릿할 정도로 따뜻한 숨결이 내 뺨을 스쳐 지나갔다.
  • “서윤아, 너무 슬퍼하지 마.”
  • 목이 꽉 막혀 무언가 내뱉으려 했지만 갈라진 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는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감미롭기까지 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너 방금, 가장 위대한 시험을 통과했어. 생사가 갈린 순간에 넌 나를 살리려고 아이를 포기했지. 그걸로 증명된 거야. 네 사랑은 세상 그 무엇보다 크고, 심지어 모성마저 넘어섰다는 걸.”
  • 쾅!
  • 머릿속에서 천둥이 내리쳤다.
  • 온몸이 돌처럼 굳었고 혈관 속 피가 순식간에 얼어붙는 듯했다. 사지 구석구석까지 지독한 냉기가 파고들었다.
  • 그날의 교통사고... 나를 무참하게 날려 보내고 극심한 통증 속에서 의식을 앗아갔던 그 지옥 같은 순간은 결코 불운한 우연이 아니었다.
  • 도승헌, 그가 직접 설계하고 공들여 꾸민 잔인한 연극이었다. 지금껏 나를 옭아매 왔던 그 추악한 ‘충성 테스트’의 연장선일 뿐이었다.
  • 하지만 이번은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내 목숨과 아이의 목숨을 판 돈으로 올린 도박이었으니까.
  • 그는 오로지 나를 시험하겠다는 미친 이유 하나로 ‘누구를 살릴 것인가’라는 잔혹한 선택지를 들이밀고 그 광경을 느긋하게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 “하... 하하하...”
  • 목구멍에서 기괴한 쇳소리가 새어 나왔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이 고통과 절망을, 그를 향한 살의를 전부 토해내고 싶었다.
  • 하지만 나는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며 억지로 그 감정을 삼켜냈다. 이 악마를 무너뜨리기 위해, 내 복수는 이제 막 시작되어야 하니까.
  •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울음보다 흉측한 미소가 얼굴 위에 걸렸다. 나는 고개를 돌려 생애 처음으로 온 힘을 다해 그를 노려보았다. 증오가 살갗을 찢고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 나는 마지막 남은 힘을 모조리 긁어모아 이를 갈며 한 자 한 자 내뱉었다.
  • “도승헌, 아이는 죽었어. 이제 만족하냐?”
  • 그는 내 눈에 서린 서슬 퍼런 증오를 마주하면서도 죄책감은커녕 입꼬리를 더 깊게 말아 올렸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마치 신도처럼 경건한 태도로 내 이마에 입을 맞췄다.
  • “사랑해, 서윤아.”
  • 쾅!
  • 가슴속에서 팽팽하게 버티고 있던 줄이 그 순간 단번에 끊어졌다.
  • 산산조각... 모든 것이 부서져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 사랑? 이게 사랑이라고?
  • 이건 그저 뒤틀린 집착이자 통제일 뿐이다. 그저 잔인한 파괴일 뿐이다.
  • 나는 그제야 똑똑히 깨달았다. 내가 결혼한 상대는 인간이 아니었다. 속까지 시커멓게 썩어 문드러진 미치광이, 타인의 감정을 짓밟으며 쾌락을 느끼는 인간성 없는 악마였다.
  • 나는 그 역겨운 얼굴을 지워버리려는 듯 눈을 꽉 감았다.
  • 이불 아래에서 두 주먹을 얼마나 세게 쥐었는지, 손톱이 손바닥 깊숙이 파고들어 살점이 터져 나갔다.
  • 비릿한 피 냄새가 올라왔지만 아픈 줄도 몰랐다.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이 고통에 비하면 손바닥의 상처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 ‘도승헌, 네가 정녕 이것이 사랑의 증명이라고 믿는다면 내 남은 삶 전부를 걸고 끝까지 상대해 줄게.’
  • 네가 세운 그 오만한 테스트의 끝에는 오직 너의 비참한 파멸만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