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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다

  • 윤태혁 시점
  • 지저분한 조그만 바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잔잔한 물에 돌 하나 떨어뜨린 듯 고요했던 공간에 파문이 번졌다. 시끌벅적하던 대화 소리가 뚝 끊기고 잔 부딪치는 소리도 멈춰 버렸다. 모든 시선이 나와 옆에 선 남자 사이를 오갔다.
  • 경호원들은 재빠르게 흩어져 점원들에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매니저는 고개를 연거푸 끄덕이며 넘어질 듯했고 바텐더와 웨이터들을 한쪽으로 비켜 세웠다. 남아 있던 몇 명의 손님들도 공손하지만 단호하게 밖으로 안내됐다. 의자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누군가 “그 사람이야...” 라고 낮게 중얼거리며 문 밖으로 급히 사라졌다.
  • 가게 주인은 덜덜 떨며 이마가 미끄러운 바닥에 닿을 듯 허리를 굽혔다. 입술만 달싹이며 말을 꺼내고 싶어했으나 내가 아랑곳하지 않자 슬며시 물러섰다.
  • 나는 여기 온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다.
  • 그녀 때문이었다.
  • 한다은.
  • 그녀는 구석진 테이블에 웅크리고 있었다. 여린 손으로 반쯤 남은 위스키 병을 꽉 쥐고 있었다. 머리는 엉망으로 뒤엉켰고, 눈빛은 풀렸으며 뺨은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들었고 그 짧은 순간에 찰나의 빛은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 “비비!”
  • 그녀는 취한 기색에 웃음을 터뜨리며 비틀거리다 일어섰다. 몸이 한쪽으로 쏠려 거의 쓰러질 뻔했고, 내가 재빨리 그녀의 팔꿈치를 붙잡아 주었다.
  • “왔구나.”
  • 그녀가 낮게 중얼거리고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 “정말 왔네…”
  • 나는 무거운, 거의 비감마저 담긴 듯한 미소를 억지로 지어 보였다. 다은은 평소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오늘 밤에 분명 무언가가 그녀를 산산이 부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평소보다 훨씬 더 깊은 상처가 그녀를 깎아내었다.
  • 조심스레 다시 자리에 앉히고 나란히 앉았다.
  • “같이 마셔, 다니.” 낮은 목소리로 말하며 그 병을 집었다.
  • 그녀가 어설픈 미소를 지으며 내 볼을 아이처럼 살짝 꼬집었다.
  • “내 비비지.”
  • 발음은 흐트러져 있었지만 자랑스러운 목소리였다.
  • 내 뒤에서 경호원들이 어색하게 몸을 움직였다.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는 눈치였다. 장난스럽고, 스스럼없고, 너무 익숙한 분위기였다.
  • “물러서.” 나는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
  • 그들은 곧장 물러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 순간은 내 것이자, 우리 둘만의 시간이었다.
  • 그리고 다은이 완전히 무너져 또 울기 시작했다.
  • 흐르는 눈물이 강처럼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잇던 그녀는 배신과 모욕, 그리고 낯선 여자의 손에 맞은 상처의 아픔을 연신 토해내며, 끝내는 목이 메어 얼굴을 두손으로 감싸 쥐었다.
  • “그만.” 내가 말하며 그녀의 손에서 술병을 살며시 빼앗았다. 그녀가 그 독한 액체에 다시 잠기지 않도록.
  • “싫어!” 그녀는 휘청이며 맞섰다. 움켜쥔 주먹으로 병을 다시 빼앗으려 했지만 내가 꼼짝도 하지 않자 내 가슴을 치기 시작했다. 한 대씩 힘이 빠지는 주먹질이었다.
  • “줘 봐. 비비야! 마시게 해줘! 제발, 잊게 해줘!”
  • 나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 그녀의 움직임은 점점 느려졌고, 호흡도 흐트러졌다. 그리고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은 목소리로, 어떤 칼보다도 내 마음을 더 깊이 찢어 놓은 말을 내뱉었다.
  • “정말 짜증 나… 왜 온 거야?”
  • 그녀는 흐느끼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 “이미 끝났다고 했잖아. 왜 또 온 거야?”
  • 내 목이 꽉 조여들었다.
  • 그녀는 더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 “넌 이미 죽었어. 죽었잖아!”
  • 그 말은 주먹보다도 무겁게 내 심장을 내리쳤다.
  • 그녀는 나를 잃었을 때보다 더 아픈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안도와 고통 사이에 갈라진 여자처럼.
  • 나는 살며시 다가가 그녀를 품에 안았다. 그녀는 내 옷자락을 움켜쥐며 내 품 안에서 떨었고 울음소리가 내 가슴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 “왜, 비비?”
  • 그녀는 부서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 “왜… 왜?”
  • 나는 그녀를 꼭 안았다. 살짝 바닐라 향과 위스키 냄새가 코끝을 스치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 이를 악물었지만 대답할 수 없었다.
  •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진실은 칼날 같아서, 우리 둘 다 아직 피를 흘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으니까.
  • 그래서 나는 그저 그녀를 안아 주었다.
  • 마음껏 울게 내버려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