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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 이하은의 가슴속에서 억누르기 힘든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 “수입이요? 지금은 일자리조차 없는데 무슨 수입이 있겠어요?”
  • “해고당했다고요?”
  • 신재한의 눈에 놀란 기색이 스쳤다.
  • 하은은 입꼬리를 비틀며 따지듯 말했다.
  • “왜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세요? 제가 신 회장님 댁에 찾아가 채아 언니를 위해 선처를 부탁한 뒤, 강 사모님이 저를 해고하셨어요. 설마 선생님께서 뒤에서 시키신 일 아닌가요?”
  • 신재한은 낮은 목소리로 부인했다.
  • “난 인간 가정부 한 명을 괴롭힐 만큼 한가한 사람은 아닙니다.”
  • 이하은은 더는 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 그녀는 혀끝을 깨물며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 “신 회장님, 제가 지금 얼마나 처참한 처지인지 잘 알아요. 그래서…… 어쩌면 이 아이를 포기하게 될지도 몰라요.”
  • “포기한다니!”
  • 신재한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이하은의 앞으로 순간 이동했다.
  • 그는 어두운 얼굴로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 “지금 아이를 빌미로 나를 협박하는 건가요?”
  • “오해하셨어요. 이 결정은 선생님과 아무 상관도 없어요.”
  • 이하은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억눌러 참던 울음이 목소리에 배어 나왔다.
  • “이 아이는 제가 가진 돈을 전부 쏟아부어 얻은 희망이에요. 저도 정말 낳고 싶어요. 하지만 빚더미에 앉은 가정에서 아이를 태어나게 할 수는 없어요. 그건 너무 이기적인 일이잖아요.”
  • 신재한은 얇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눈빛에는 차가운 기운이 겹겹이 쌓였다.
  • 선천적인 생식 결함 탓에 그가 후손을 얻을 가능성은 극히 낮았다.
  • 갑작스럽게 찾아온 이 아이는 지금으로서는 그의 혈통을 이어 줄 유일한 존재였다.
  • “이하은 씨, 당신 친구도 내 아이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알고 있었을 겁니다. 애초에 샘플을 일부러 뒤섞은 것도 내가 내 혈통을 절대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걸 확신했기 때문이겠죠.”
  • “그만하세요!”
  • 이하은은 두 손을 꽉 움켜쥐었다. 꾹꾹 눌러 참아 왔던 감정이 마침내 폭발했다.
  • “신 회장님, 제가 도대체 몇 번이나 설명해야 믿으실 거예요? 선생님 눈에는 모든 우연이 다 누군가의 계략으로 보이나요?!”
  •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말씀드릴게요. 채아 언니는 샘플을 바꿔치기하지 않았어요. 저도 제 몸에 주입된 샘플이 선생님 것인 줄 몰랐고요! 제가 아이를 포기하려는 건 선생님을 협박해서 빚을 대신 갚게 하려는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싶어서예요!”
  • 말이 끝나자 뼛속까지 파고드는 한기가 진료실 전체를 휩쓸었다.
  • 신재한은 계속해서 자신에게 맞서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의 주위에는 숨 막힐 듯한 냉기가 감돌았다.
  • “이하은, 당신이 우리 늑대족의 규율을 모른다는 점을 감안해 지금까지 당신의 무례를 몇 번이고 참아 줬어. 하지만 계속 그런 말투로 나를 대한다면, 나도 더는…….”
  • 이하은은 고개를 홱 치켜들고 울먹이며 소리쳤다.
  • “저를 협박하시는 거예요? 신분이 고귀하다고 해서 마음대로 남을 몰아붙여도 되는 줄 아세요?!”
  • 말을 마친 그녀는 몸을 돌렸다. 눈가에 맺힌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 하은도 신재한이 자신을 의심하는 데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 자신이 직접 겪은 일이 아니라면, 하은조차 이 모든 상황을 치밀하게 꾸며 낸 함정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 진료실에는 기나긴 침묵이 내려앉았다.
  • 신재한은 잔뜩 긴장한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지끈거리는 이마를 손으로 문질렀다.
  • 늑대족의 존재를 이제 막 알게 된 평범한 인간 주제에, 자신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감히 대들기까지 했다.
  • 백 년 넘게 살아온 동족들조차 그의 앞에서는 이렇게 무례하게 굴지 못했다.
  • “이하은, 이미 벌어진 일을 두고 계속 따져 봐야 아무 의미도 없어. 차라리 우리 계약 하나를 맺자고.”
  • 이하은은 손을 들어 눈물을 닦았다. 목소리가 울음에 잠겨 있었다.
  • “무슨 계약이요?”
  • “원하는 금액을 말해.”
  • 신재한의 목소리는 무심하면서도 강압적이었다.
  • “얼마든지 네가 원하는 대로 해 주지.”
  • 이하은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 그녀는 몸을 돌려 격앙된 목소리로 따졌다.
  • “그게 무슨 뜻이에요? 돈으로 아이를 사 가시겠다는 거예요?! 제가 지금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고 해도, 아이를 거래 물건처럼 여기는 사람에게 아이를 넘길 수는 없어요!”
  • 신재한은 옆으로 늘어뜨린 두 손을 꽉 움켜쥐었다.
  • 그는 몸속에서 들끓는 사나운 기운을 억지로 억누르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
  • “그 아이는 내 자식이야. 당연히 내가 키워야 해. 게다가 아이를 포기하려는 네가 대체 무슨 자격으로 나를 비난하는 거지?”
  • “제가 아이를 포기하려는 건 그 애가 저와 똑같은 일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아서…….”
  • 말끝에 이르자 이하은은 입 밖으로 꺼내려던 말을 억지로 삼켰다.
  • 그녀는 자신의 비참했던 과거를 누구에게도 털어놓고 싶지 않았다.
  • 신재한은 더는 실랑이를 벌일 생각이 없었다. 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최후통첩을 내렸다.
  • “네 마음대로 임신을 중단한다면 즉시 소송을 제기하겠다. 그 아이는 네가 자발적으로 인공수정을 받아 임신한 아이야. 강요당한 것도, 침해를 당한 것도 아니지. 분명히 말해 두겠지만, 법원은 절대 네 편을 들어 주지 않을 거다.”
  • 이하은은 용기를 내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 “소송하시려면 하세요. 제 몸은 제가 결정해요.”
  • 사실 임신을 확인한 순간부터 하은은 아이를 포기하려던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 신재한은 애써 태연한 척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 “한 가지 알려 주지. 서울의 모든 사립병원에서 나는 핵심 후원자야. 나를 거스르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네게 낙태 수술을 해 줄 의사는 없을 거다.”
  • 이하은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적지 않은 사람을 원망해 왔다.
  • 그중에서도 박민우와 오지윤은 늘 원망의 대상 맨 앞자리를 차지했다.
  • 하지만 불과 며칠 사이에 신재한의 이름이 그들을 빠르게 앞질렀다. 이제 그는 하은이 마음속 깊이 가장 증오하는 사람이 되었다.
  • 이 순간, 이하은은 비로소 냉혹한 현실을 똑똑히 깨달았다.
  • 신재한의 눈에 자신은 그저 신분이 한참 아래인 평범한 인간일 뿐이었다.
  • 그는 여느 최고급 재벌들과 다를 바 없었다. 자신의 권세를 믿고 다른 사람의 인생을 제멋대로 좌지우지하려 했다.
  • 이하은은 눈가에 차오르는 쓰라린 감정을 억누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 “그럼 아이가 태어난 뒤에…… 제가 가정부로라도 아이 곁에 남아서 자라는 모습을 지켜볼 수는 없을까요?”
  • “안 돼.”
  • 신재한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 “지금 네게 남은 선택은 하나뿐이야. 양육권 양도 계약서에 서명하고 출산할 때까지 얌전히 몸을 돌봐. 네가 말 잘 듣고 협조하기만 하면, 모든 빚을 갚아 주고 보수가 높은 일자리도 마련해 주지.”
  •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 “네 친구가 해고된 건 업무상 실수 때문이야. 고의였든 아니었든, 내 샘플이 네 몸에 들어가게 해서는 안 됐어. 그리고 네가 일자리를 잃은 일은 나도 정말 몰랐다. 강 사장님의 두 아이가 너를 무척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어. 네가 원한다면 원래 일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