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 윤서율의 손끝에는 화장실 거울에서 묻어난 물기가 아직 서늘하게 남아 있었다.
- 그 얼음장 같은 감각이 혈관을 타고 심장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었다.
- 서도진의 거대한 그림자가 숨 막히는 그물처럼 윤서율을 옭아매며, 이 비좁은 공간 안에 완벽하게 가둬버렸다.
- "왜 말이 없으실까?"
- 서도진이 반 걸음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 짙은 체취에 옅은 담배 향이 섞인 농염한 기운이 훅 끼쳐왔다.
- 예전의 다정했던 인내심은 온데간데없고, 살을 에이는 듯한 서늘함만이 가득했다.
- "4년 전 병원에서 내 열이 내릴 때까지 곁을 지키며, 퇴원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던 사람… 너 아니었어?"
- 윤서율은 억지로 평정심을 쥐어짜 내며 서도진에게 되물었다.
- 4년 전, 윤서율은 급성 맹장염 천공에 수술 후 감염까지 겹쳐 극심한 고열에 시달렸었다.
- 편의점 아르바이트마저 잘리고, 주머니엔 구깃구깃한 지폐 몇 장이 전부이던 참담한 시절이었다.
- 막대한 병원비를 대신 내준 사람은 서도진이었고, 매일 병실을 찾아와 손수 끓인 죽을 입에 넣어주며 윤서율이 그릇을 비워내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자리를 뜨곤 했었다.
- "내가 눈을 떴을 때, 넌 흔적도 없이 사라졌잖아."
- 윤서율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널 찾았어. 먼저 날 버리고 떠난 건 너야."
- '네가 날 버린 거잖아.'
-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비참한 원망이 윤서율의 목끝에 맴돌았다.
- "그래서, 내 아버지와 결혼하는 것으로 복수하는 거야?"
- 서도진이 굵은 마디가 도드라진 손가락으로 윤서율의 턱을 거칠게 움켜쥐고는, 억지로 제 눈을 똑바로 마주 보게 끌어올렸다.
- 윤서율이 물기 어린 쉰 목소리로 항변했다.
- "아니야… 네 아버지인 줄은 정말 몰랐어. 만약 알았다면…"
- 무의식중에 뒷걸음질을 치려 했으나, 얄팍한 등허리가 차가운 문짝에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를 낼 뿐이었다.
- 복도 끝에서 들려오는 하객들의 화려한 웃음소리가 이 좁은 틈새의 공기를 한층 더 질식할 듯 옥죄어 왔다.
- "알았더라면 뭐가 달라졌을까? 다른 호구를 물었겠지. 네 사랑이 그렇게 싸구려였나? 그렇게 팔려 가듯 결혼이 하고 싶었어?"
- 서도진이 낮게 웃음 터뜨렸지만, 그 소리에는 날 선 조롱만이 가득했다.
- 윤서율의 눈시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 "내겐 선택권이 없었어."
- 미친 듯이 서도진을 찾아 헤매도 그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 며칠 뒤 밀린 월세를 내지 않으면 짐을 길거리에 내동댕이치겠다는 집주인의 통보가 날아들었고.
- 어머니가 남기고 떠난 사채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험악한 빚쟁이들이 매일같이 낡은 단칸방 문을 부수듯 두드려댔다.
- 그녀가 벼랑 끝에 몰렸을 때, 서한결이 구원자처럼 나타나 모든 위기를 해결해 주고 어머니의 치료비까지 지원하겠다고 제안했었다.
- 단 하나의 조건. 바로 그와 결혼하는 것. 그가 죽고 나서야 온전한 자유를 되찾을 수 있다는 서약이었다.
- 그리고 윤서율은 그 지옥 같은 동아줄을 잡았다.
- 참지 못한 눈물방울이 서도진의 손등 위로 툭, 하고 위태롭게 떨어져 내렸다.
- 그 차가운 습기에 서도진의 손가락이 아주 미세하게 굳어졌다.
- "선택권이 없었다?"
- 서도진이 핏대가 설 만큼 거칠게 윤서율의 턱을 옥죄어 왔다.
- 턱뼈가 부서질 듯한 통증이 윤서율의 감각을 마비시켰다.
- "내 아버지한테 몸을 팔아서 내 새어머니가 되는 걸 선택해 놓고? 나는 미친놈처럼 널 찾아 헤매고 다녔는데? 선택권이 없었다고?"
- 서도진의 시퍼런 눈동자에는 활활 타오르는 분노와 함께, 윤서율로서는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는 짙은 상실감이 뒤엉켜 있었다.
- 불현듯 얼마 전 서한결과 치렀던 결혼식 날이 떠올랐다. 가족 대표로 단상에 올라 축배를 제안하던 서도진이, 신부인 윤서율을 발견하고 경악과 분노로 일그러지던 그 끔찍한 순간을.
- 수많은 하객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식장을 뛰쳐나갔던 서도진은 그길로 석 달이나 자취를 감췄고, 불쑥 나타나서는 다짜고짜 자신의 결혼식을 준비하라고 통보해 왔다.
- 윤서율은 오늘 이 결혼식장에 도착해서야 서도진의 신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처음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고, 그 얼굴을 마주한 순간 기뻐해야 할지 절망해야 할지 갈피조차 잡지 못했다.
- 어째서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 자신이 아닐까. 하지만 결코 자신이 될 수는 없었다. 숨이 멎을 것 같은 참담함에 윤서율의 심장이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 "내가 임주아랑 왜 결혼했다고 생각해?"
- 상념을 끊어내듯, 서도진의 뜨거운 숨결이 뺨에 닿을 듯 가까워졌다.
- 서도진의 입술이 윤서율의 입술 끝을 잡아먹을 듯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고, 도망칠 공간조차 없는 윤서율은 그 숨 막히는 구속을 온전히 받아내야만 했다.
- "날, 복수하려는 거잖아."
- 윤서율이 바스러질 듯 옅은 목소리로 속삭이자, 목구멍 깊은 곳부터 지독한 쓴물이 차올랐다.
- "복수?"
- 서도진이 코웃음을 치더니, 사납게 그녀의 입술을 물어뜯으며 한 글자 한 글자 짓씹듯 내뱉었다.
- "새어머니, 본인 주제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네."
- 서도진의 길고 유려한 손가락이 목선을 타고 느릿하게 미끄러져 내려와 옷깃에 머물렀다. 가녀린 쇄골 위에 선명하게 남은 붉은 자국을 발견한 순간, 핏발 선 눈동자가 번뜩이더니 이성이 끊어진 듯 윤서율의 가슴을 거칠게 틀어쥐었다.
- "우리 새어머니. 말해 봐. 내가 이 화장실에서 널 안아버리면, 문밖의 하객들은 무슨 상상을 할까? 우리 아버지는 또 어떤 표정을 지을까?"
- 윤서율의 가녀린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 "안 돼, 이러지 마. 난 네 새어머니야."
- "한때는 내 여자이기도 했지. 아버지는 되는데, 나는 왜 안 된다는 거야!"
- 서도진이 손아귀에 쥔 부드러운 살결을 잔인할 정도로 짓누르며, 두껍고 단단한 허벅지를 윤서율의 다리 사이로 파고들듯 거칠게 밀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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