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마지막 키스
- 8년 전
- 윤태혁 시점
- 서유진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과장되게 비명을 질렀다.
- “표백제 좀 줘. 눈 좀 씻어야겠다!”
- 나는 눈을 위로 굴리며 말했다.
- “오버하는 거 아니야?”
- 다은은 내 차 보닛 위에 앉아 있었다. 그 차는 스무 살 생일에 아빠가 선물해 준 거였다.
- 나는 그녀의 다리 사이에 서서 허리를 꼭 감싸 안았다. 그녀는 언제나 그랬듯 조용하고 단단한 확신으로 내 쪽으로 몸을 기댔다. 마치 내 품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인 것처럼.
- 그때 뒷문이 끼익 열리더니 차도윤이 고개만 삐죽 내밀며 토할 듯한 소리를 크게 냈다.
- “야! 나 진짜 토할 거야.”
- “서유진, 입 닥쳐! 비비가 서운할 거야.”다은이 웃음 섞인 목소리로 받아쳤다.
- 서유진과 차도윤은 특유의 짜증 섞인 눈빛을 주고받았다. 역겨움도 딱 맞아떨어져 마치 콩트 한 편을 보는 것 같았다.
- “다은아.” 서유진이 과장되게 말했다. “넌 그거 알아? 너만 윤태혁을 다정하고 말랑하게 봐. 우리 눈에는 진짜가 보인다니까. 늘 우중충하고, 좀 무섭고, 가끔은 그냥 그러다니까.”
- 차도윤이 힘주어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크게 떴다.
- “맞아. 말도 안돼. 둘이 붙기만 하면 뇌가 같이 꺼져. 참 역겨워.”
- 나는 차가운 눈빛으로 둘을 쏘아봤다. 그들은 즉시 멈칫했지만 마지막까지도 부들부들 떠는 시늉을 멈추지 않았다.
- “유치해.”
- 나는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 다은은 그 둘을 완전히 투명인간 취급했고 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엄지손가락으로 내 볼을 살며시 쓸었다. 그녀의 시선이 부드러워졌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마음들이 눈동자에 반짝였다.
- “보고 싶을 거야.”
- 나는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 “그만!”
- 서유진은 벌떡 일어나 두 손을 들며 말했다.
- “못 보겠다. 완전 고문이야.”
- 차도윤도 가슴을 움켜잡고 비틀거리며 따라 나왔다.
- “나도 동감. 길거리에서 하는 스킨십은 범죄야. 누군가 저 둘 좀 끌고 가야 해.”
- 그들은 기세등등하게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서유진은 다은의 어깨에 팔을 걸고 마치 아이를 이끄는 것처럼 질질 끌었다. 차도윤은 내 몸을 밀며 힘자랑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 “가자. 다니.” 서유진은 단호하게 말했다.
- “쟤 두 주만 빠질 거야. 딱 두 주. 평생 빠지는 것도 아니고 전쟁터 가는 것도 아니잖아. 우리 십 분 뒤에 수업 있어.”
- 다은은 입을 삐죽이며 아주 드라마틱하게 내 쪽으로 손을 뻗었다.
- “하지만—”
- “그만.” 서유진이 확 잡아당기며 억지로 그녀를 데려갔다.
- 차도윤은 뒤돌아 내 쪽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 “역시 유진이가 또 이겼네.”
- “닥쳐.”
- 내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으며 시선은 여전히 다은에게서 떼지 않았다. 그녀는 서유진 어깨 너머로 내게 키스를 날렸다.
- “전화해.”
- 그녀가 입 모양으로 말했다. 나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 그녀의 모습이 사라지자 내 미소도 서서히 사그라졌다. 그리움 같기도 하고, 무거운 그림자가 내 마음 한가운데 어깨를 눌렀다. 나와 차도윤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나는 그를 살짝 밀쳤다.
- “와, 이런...” 그가 한쪽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 “여친한테는 어쩜 그렇게 스윗한 미소를 짓다가, 나한테는 완전 쓰레기 취급하는 거냐? 진짜 우선순위 끝내주네.”
- “닥쳐.”
- 나는 이번엔 조금 부드럽게, 하지만 묵진한 목소리로 말했다.
- “다니 좀 챙겨줘.”
- 그의 미소가 사라졌고, 얼굴에는 조용한 진심이 스며들었다.
- “맨날 그래.”
- 그가 살짝 눈을 굴리며 낯선 진지함을 숨기려는 듯 보였다.
- 우리는 남자들의 방식대로 작별을 했다. 말은 짧게, 침묵은 더 길게, 그 약속만 공중에 떠 있었다.
- 하지만 내 발걸음은 끝내 도착하지 못했다.
- 그때 갑자기 나타난 트럭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내 앞을 가로막았다.
- 날카로운 타이어 비명소리, 눈부신 헤드라이트, 고막을 찢는 듯한 충돌음.
- 모든 게 순식간에 산산조각 났다.
- 나는 석 달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고, 그 뒤로도 1년 반 동안 부서진 기억 속 안개에 갇혀 있었다. 세상 사람들은 내가 죽었다고 믿었다.
- (현재로 돌아와)
- 다은은 나를 꼭 껴안고 눈물을 쏟아냈다. 눈물이 내 셔츠를 흠뻑 적셨지만 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몇 년 만에 다시 그녀를 품에 안았다. 마침내 그녀의 울음은 조금씩 잦아들고, 떨리는 숨결로 바뀌어 갔다.
- 나는 허리를 숙여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렸다. 깃털처럼 가벼웠다.
- “가자.” 나는 낮게 속삭였다.
- 밖에는 내가 믿는 기사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신호를 보냈다.
- “첫 번째 차 타. 회사 호텔로 데려다 줘. 세린에게도 연락했어. 나연이랑 거기 있다고. 다은이 둘이랑 있으면 안전할 거야.
- “네, 대표님.”
- 기사는 잠시 머뭇거리며 내 얼굴과 다은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 “직접 동행하시는 게 더 낮지 않으실까요?”
- 나는 고개를 저으며 턱에 힘을 주었다.
- “아니. 내가 먼저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
- 내 목소리는 낮았고 표정은 차갑게 굳어졌다. 그 뒤로 몰아치는 폭풍은 그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 기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은을 조심스럽게 차에 태웠다. 그녀는 뒤돌아 나를 바라보았다. 충혈되고 붓기 가득한 눈, 그리고 무언가 말하려는 듯 떨리는 입술. 하지만 문이 먼저 닫혔다.
- 나는 그 자리에 꼼짝 못 하고 서서, 차 테일라이트가 밤 속으로 천천히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 그리고 어느새, 얼굴에 쓰고 있던 가면이 미끄러지듯 천천히 떨어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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