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 아파트로 돌아온 이하은은 곧장 컴퓨터를 켜고 신재한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 전문 조사팀을 동원할 형편은 아니었기에, 인터넷으로 그의 정보를 수집할 수밖에 없었다.
- 컴퓨터 화면에는 수많은 경제 관련 기사가 떴다.
- 대부분 신재한의 정확한 안목과 뛰어난 협상 및 투자 능력을 칭찬하는 내용이었다.
- 언론은 그의 유복한 집안 배경을 의도적으로 축소하고, 오로지 자신의 능력으로 입지를 다진 기업가처럼 그를 묘사했다.
- 기사에는 그가 어린 시절 어머니를 여의었다는 사실도 희미하게 언급되어 있었다.
- 긍정적인 기사들을 훑어본 이하은은 완벽해 보이는 그의 겉모습 뒤에 숨겨진 다른 면을 찾아 계속 검색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신재한이 여러 공익사업을 장기간 운영해 왔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했다. 신씨 그룹은 매년 막대한 자금을 사회 지원 사업에 투입하고 있었다.
- 그렇게 많은 자원을 내놓고도 그가 보유한 자산은 여전히 어마어마했다.
- 인터넷에는 그가 공익 활동에 참석하거나 빈곤층을 돕는다는 기사가 곳곳에 올라와 있었다.
- 하지만 그가 늑대족이라는 단서를 검색하기만 하면 관련 정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이하은은 문득 늑대족이 오랫동안 인간 사회에 숨어 지낼 수 있었던 건 철저한 비밀 유지 체계가 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 그녀는 몇 시간 동안 방법을 찾아 헤맨 끝에 전용 브라우저를 내려받아 다크웹에 접속했고, 마침내 늑대족 세계의 은밀한 내막을 알아냈다.
- 알고 보니 신재한은 평범한 늑대인간이 아니었다.
- 그는 신씨 가문의 실권자일 뿐 아니라, 서울 늑대족 전체의 차기 수장 후보이기도 했다.
- 하지만 수장이 되려면 반드시 지켜야 할 엄격한 규정이 있었다. 후보자는 자신의 직계 혈통을 이어 갈 후손이 있어야만 수장의 자리에 오를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 신재한에게는 한때 약혼녀가 있었다.
- 하지만 상대는 그의 생식 장애 때문에 결국 파혼을 선택했다.
- 이하은은 처음에는 신재한이 가업을 물려줄 아이를 원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 그런데 그 아이의 존재가 간접적으로나마 그가 늑대족의 수장이 될 수 있을지를 결정한다는 사실은 미처 몰랐다.
- 그의 경쟁자들은 그를 후보 자리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끊임없이 부정적인 여론을 퍼뜨리고 있었다.
- 모든 자료를 읽고 난 이하은은 지친 몸을 의자 등받이에 기댔다.
- 그녀는 손을 들어 뻑뻑한 눈을 문지르며 복잡하게 얽힌 생각을 정리하려 애썼다.
- 신재한은 지금 자신의 친혈통을 이어 갈 아이가 절실히 필요했다. 그래야 무사히 수장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 게다가 그 역시 어머니 없이 자라는 어린 시절을 직접 겪었다.
- 대화를 적절하게 이끌어 간다면, 아이가 태어난 뒤에도 자신이 아이 곁에 머물 수 있도록 그를 설득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 똑똑똑—
- 갑자기 낮고 묵직한 노크 소리가 들렸다.
- 누가 찾아왔는지 이하은은 굳이 생각해 볼 필요도 없었다.
-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문 앞까지 가서 문을 열었다.
- 문밖에는 키가 크고 훤칠한 남자가 조용히 서 있었다.
- 눈에 보이지 않는 압박감이 순식간에 좁은 아파트 안을 가득 채웠다.
- 신재한은 이하은의 창백한 뺨을 바라보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 아이의 기운이 여전히 안정적이라는 걸 감지하고 나서야 그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 “내가 쪽지를 남겨 두지 않았나? 왜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지?”
- 이하은은 고개를 들어 그의 시선을 마주했다.
- “저는 생각도 의지도 없는 물건이 아니잖아요. 당연히 제자리에 얌전히 앉아서 선생님이 돌아오시기만 기다릴 수는 없죠.”
- “네 자유를 제한한 적은 없어.”
- “그런데 지금은 왜 이렇게 화가 나셨는데요?”
- 이하은은 문틀에 몸을 기댄 채 노골적인 원망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 “어제 진료실에서 저는 정신적으로 너무 혼란스러웠어요. 그런데 회장님은 제가 의식도 제대로 차리지 못한 틈을 타서 불공정한 양육권 양도 계약서에 서명하게 하셨잖아요.”
- 신재한은 대답하지 않고 좁은 아파트 안으로 곧장 들어갔다.
- 소박하고 열악한 주거 환경을 둘러본 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 “여기서 살고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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