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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 쾅!
  • 갑작스러운 소리에 두 사람은 동시에 깜짝 놀랐다.
  • 이하은이 고개를 돌리자, 문 앞에 얼굴을 잔뜩 굳힌 신재한이 서 있었다.
  • 그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초음파 장비 화면을 훑어본 뒤, 매서운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
  • “대체 무슨 짓을 한 겁니까?”
  • “신 회장님, 그 말은 제가 먼저 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 하은은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 “이 난임센터의 최대 투자자라고 해도 환자 진료실에 마음대로 들어오시면 안 되죠.”
  • 신재한이 차갑게 비웃었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나운 기세가 한층 짙어졌다.
  • “지금 내가 알고 싶은 건 하나입니다. 당신이 왜 내 아이를 임신하고 있느냐는 거죠!”
  • 하은은 두 눈을 크게 떴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 “무슨 말씀이세요? 이 아이가 어떻게 회장님 아이일 수 있어요!”
  • 신재한은 설명하지 않았다.
  • 그는 조채아를 흘끗 보더니 얼음장처럼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 “내 정자 샘플을 훔쳐 간 이유가 친구에게 인공수정을 해 주기 위해서였군요.”
  • “그런 게 아니에요!”
  • 조채아가 황급히 해명했다.
  • “신 회장님, 지난주에 제가 하은이에게 인공수정을 진행한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사용한 정자 샘플은 회장님 것이 아니었어요. 하은이가 기록을 보고 직접 기증자를 선택했어요.”
  • 신재한은 숨이 막힐 만큼 무거운 압박감을 풍기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거짓말. 이하은은 내가 샘플을 보관해 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직접 나를 찾아와 네 일을 봐 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했죠.”
  • 조채아는 놀란 눈으로 이하은을 바라보았다.
  • “하은아, 정말 신 회장님을 찾아갔어?”
  • 하은은 죄책감에 휩싸인 채 고개를 끄덕였다.
  • “미안해. 그냥 언니를 도와주고 싶었어.”
  • “자책하지 마. 네가 왜 그랬는지 알아.”
  • 조채아는 하은의 손을 가볍게 잡아 주고는 신재한을 돌아보았다.
  • “신 회장님, 회장님의 냉동 정자 샘플이 사라진 날과 제가 하은이에게 인공수정을 진행한 날이 같다는 건 인정해요. 하지만 관리 규정상 회장님의 샘플은 개인 전용 냉동 보관함에 따로 보관돼요. 이론적으로는 다른 샘플과 뒤섞일 가능성이 없어요…….”
  • 말하던 조채아는 문득 무언가 떠올랐는지 서둘러 초음파 화면을 바라보았다.
  • 화면에 나타난 태아의 발달 지표를 하나하나 확인한 뒤, 그녀는 다시 신재한을 바라보았다. 눈빛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 “신 회장님, 맹세코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하은이가 사용한 정자 샘플이 왜 회장님 것인지 저도 전혀 몰랐어요!”
  • 이하은은 숨이 턱 막혔다.
  • 그녀는 옆에 있는 조채아를 바라보며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 “언니, 왜 언니까지 이 아이가 신 회장님 아이라고 하는 거야?”
  • “하은아, 내가 이 최고급 사립 난임센터에 입사했을 때 최고 등급의 영구 비밀 유지 계약서에 서명했어.”
  • 조채아는 목소리를 낮추고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 “사실 신 회장님은 인간이 아니야…… 늑대족이야.”
  • 말이 끝나자 이하은은 저도 모르게 반문했다.
  • “무슨 농담을 하는 거야? 이 세상에 늑대족이 어디 있어?”
  • “나도 처음에는 늑대족이 존재한다는 걸 믿지 않았어.”
  • 조채아는 오랫동안 마음속에 묻어 두었던 비밀을 털어놓았다.
  • “하지만 비밀 유지 계약서에 서명하고 나서야 알게 됐어. 이곳 직원들 대부분이 늑대인간이라는 걸.”
  • 쾅!
  • 이하은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 그녀는 멍하니 조채아를 바라보았다.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관점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사실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 “이제야 내 아이가 맞다고 인정하는 건가요?”
  • 낮고 차가운 남자의 목소리가 진료실의 적막을 깨뜨렸다.
  • 신재한은 그 자리에 선 채 입가에 희미한 냉소를 띠었다.
  • “이하은 씨, 사람을 시켜 당신의 신상 정보를 조사했습니다. 지금 엄청난 빚을 지고 있더군요. 내 아이를 임신한 걸 빌미로 나를 압박해 빚을 대신 갚게 하려는 것 같은데.”
  • “당신, 목적을 이루는 데 성공했어요. 하지만 당신 친구는 운이 없군요. 앞으로 한국의 어떤 의료기관에서도 그 여자를 고용하지 않을 거니까.”
  • 그의 독단적인 단정에 이하은의 뼛속 깊이 자리한 고집이 불타올랐다.
  • 하은은 몸을 일으켜 앉고는 똑바로 그의 눈을 마주 보았다.
  • “신 회장님, 아무것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함부로 단정하지 마세요! 그 빚은 누군가 제 신분을 도용해 대출을 받았기 때문에 생긴 거예요. 인공수정을 받기 전까지는 그런 사실조차 몰랐어요.”
  • “그리고 저는 누구도 속일 생각이 없었어요. 아이를 이용해 선생님께 빚을 갚으라고 협박할 생각도 없었고요.”
  • 신재한은 눈가가 붉어진 하은을 바라보았다. 단단하게 굳어 있던 표정이 아주 조금 누그러졌다.
  • 하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다.
  • “그 몇 마디 말만으로는 당신이 결백하다는 걸 증명할 수 없죠.”
  • 이하은은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며 무너질 듯한 감정을 억눌렀다.
  • 그녀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 “신 회장님, 제 배 속 배아의 발달 속도가 비정상적이라고 해도, 이 아이가 선생님 아이라고 그렇게 단정하실 수는 없어요.”
  • 신재한은 대답하지 않은 채 천천히 앞으로 다가왔다.
  • “당신은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 그가 몸을 숙이자 큰 체구가 하은을 온전히 뒤덮었다.
  • “우리 늑대족은 후각이 예민해요. 일정 거리 안에서는 자신의 혈통을 잇는 존재의 냄새를 맡을 수 있죠.”
  • 이하은의 동공이 급격히 수축했다.
  • 후각으로 혈통을 알아본다고?
  • 그녀는 현실에서 떨어져 나와 전혀 알지 못하던 세계로 들어온 듯한 기분이었다.
  • 한쪽에 서 있던 조채아는 대치하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자책과 절망에 휩싸였다.
  • 개인용 암호화 샘플은 원칙적으로 공용 샘플과 뒤섞일 수 없었다. 그런데도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 신재한은 고개를 들어 조채아를 바라보며 낮게 명령했다.
  • “먼저 나가 있어요. 이하은 씨와 단둘이 이야기할 게 있으니까.”
  • 조채아의 몸이 굳었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이하은을 바라보았다.
  • 하은이 괜찮다는 듯 눈짓하자,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문밖으로 나갔다.
  • 문이 조용히 닫히자 진료실 안은 유난히 고요해졌다.
  • 마침내 이하은이 먼저 침묵을 깼다.
  • 그녀는 가장 걱정되는 질문을 작은 목소리로 꺼냈다.
  • “신 회장님, 만약 이 아이가 정말 선생님 아이라면…… 태어난 뒤에 다리가 네 개고 꼬리도 달린 늑대가 되는 건가요?”
  • “아니요.”
  • “그럼 어떤 모습인데요?”
  • “여러 면에서 우리 늑대족은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 신재한은 허리를 굽혀 옆에 놓인 나무 의자에 앉았다. 그는 드물게 인내심을 발휘해 설명했다.
  •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인간의 모습이고 살아가는 동안에도 대부분의 시간을 인간의 모습으로 보내죠.”
  • “대부분의 늑대족은 열여섯 살쯤 되어야 처음으로 변신합니다. 인간을 훨씬 뛰어넘는 속도와 힘, 감각도 나이가 들면서 점점 뚜렷해지고...”
  • 이하은은 참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
  • “하지만 저는 인간이잖아요. 인간이 어떻게 늑대인간의 아이를 임신할 수 있죠?”
  • “솔직히 말해, 나도 이런 사례를 본 적이 없습니다.”
  • 신재한의 얼굴에 의아한 기색이 스쳤다.
  • “우리 늑대족은 인간과 함께 살아가고 있고 극소수의 인간만이 우리의 비밀을 알고 있지만, 그들은 결코 진정으로 우리 세계에 들어올 수 없거든요.”
  • 이하은은 그 놀라운 사실들을 말없이 곱씹었다.
  • “이하은 씨.”
  • 신재한의 시선이 그녀의 아랫배에 머물렀다.
  • “질문 다 끝났다면, 아이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은데.”
  • 이하은은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아랫배를 감쌌고, 눈빛에는 경계심이 가득했다.
  • “이 아이는 제 아이예요.”
  • “당신 아이라고요?”
  • 신재한은 살짝 눈썹을 치켜올렸다. 눈매에는 위에 선 자만이 지닌 강압적인 기세가 어려 있었다.
  • “이하은 씨, 당신은 지금 큰 빚을 지고 있고 수입도 변변치 않습니다. 이 아이에게 좋은 생활환경을 제공할 능력이 전혀 없죠. 책임감 있는 엄마라면 누구나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알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