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 신재한은 그대로 손을 놓았다.
- 그는 옷장 안에 걸린 소박한 옷들을 훑어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 “이 옷들은 임신 중에 입기 적합하지 않아. 챙길 필요 없어. 내 집으로 옮기면 임산부용 생활용품과 옷을 새로 준비해 주도록 하지.”
- “저는 이사하지 않을 거예요.”
- 이하은은 옷장 앞을 막아서며 고집스럽게 말했다.
- “신 회장님, 회장님 눈에는 이 아파트에 있는 물건이 전부 보잘것없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저한테는 하나하나 특별한 의미가 있어요.”
- 신재한은 맑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목울대를 움직였다.
- 처음 별장 단지에서 이하은을 만났을 때부터, 그는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순수한 분위기에 끌렸다.
- 하지만 인간과 늑대족 사이의 간극 때문에, 그는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을 줄곧 억누르고 있었다.
- 몇 초간 침묵하던 신재한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지금은 수입도 없으니 임신 중에 드는 비용과 집세를 감당하기 어려울 거야. 내 집으로 오면 아무것도 신경 쓸 필요 없어. 편하게 아이만 잘 품고 있으면 돼. 게다가 이 아이는 내게 무척 중요해. 너와 아이가 안전한지 언제든 확인하고 싶어.”
- 이하은은 그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 그녀는 더는 거부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조건을 내걸었다.
- “이사할게요. 하지만 계약 내용은 다시 협의해야 해요.”
- “말해 봐.”
- 신재한은 드물게 인내심을 보였다.
- “아이가 태어나면 제가 직접 키우고 싶어요.”
- 이하은은 진지한 눈빛으로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 “회장님은 평소 그룹 일과 여러 업무로 바쁘시잖아요. 아무리 좋은 육아 도우미를 고용해도 엄마의 곁을 대신할 수는 없어요. 회장님도 아이가 모성애를 받지 못한 채 자라길 바라지는 않으실 거예요.”
- 신재한의 몸이 굳었다.
- 그 말은 그의 마음속 가장 깊은 상처를 정확히 건드렸다.
- 이하은은 그의 표정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 “제가 따로 자료를 찾아봤어요. 회장님께서 늑대족 수장 자리를 두고 경쟁 중이라는 것도 알아요. 인간을 대리모로 삼아 아이를 얻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분명 좋지 않은 소문이 돌 거예요.”
- “제안이 하나 있어요…… 우리 연인인 척하는 거예요.”
- 신재한의 눈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 그는 낮은 목소리로 그녀를 살피듯 물었다.
- “그러니까 아이를 발판 삼아 늑대족 세계에 발을 들이고, ‘수장 부인’이 되려는 건가?”
- “절대 아니에요!”
- 이하은은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만 연인인 척하면 돼요. 제가…… 늑대인간 여자인 것처럼 위장할 수도 있어요. 그러면 회장님은 아이가 정상적으로 태어난 거라고 발표하시면 돼요. 이 내용도 계약서에 추가하셔도 되고요.”
- 신재한은 말없이 그녀를 응시했다.
- 그는 돈과 지위를 노리고 다가오는 여자를 수도 없이 봐 왔다.
- 하지만 이하은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이익도 요구하지 않았다.
- 그녀가 유일하게 고집하는 건 아이 곁에 있을 권리뿐이었다.
- 놀랍게도 그 자신조차 그녀와 가짜 연인 관계로 지내는 일이 싫지 않았다.
- 잠시 후, 신재한이 낮게 대답했다.
- “좋아.”
- 이하은의 눈이 반짝 뜨였다.
- 그녀가 입을 열려는 순간, 신재한이 다시 말을 이었다.
- “우리 늑대족은 평생 운명의 반려를 단 한 명만 만나게 돼. 나는 오래전에 이미 내 운명의 반려를 만났어. 하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결국 헤어졌지.”
- 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미리 선을 그었다.
- “우리가 반려인 척하는 건 어디까지나 임시적인 관계야. 내가 마음에 드는 다른 늑대족 여자를 찾으면 이 계약은 끝나는 거지.”
- 이하은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 “하지만 방금 늑대족은 평생 운명의 반려가 한 명뿐이라고 하셨잖아요?”
- “운명의 반려가 한 명뿐인 건 맞아.”
- 신재한은 어쩔 수 없이 늑대족의 상식 몇 가지를 설명해 주었다.
- “하지만 모든 늑대인간이 운명의 반려와 사랑하며 평생을 보내는 건 아니야. 우리도 스스로 반려를 선택할 수 있어.”
- 이하은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불안한 마음에 다시 물었다.
- “그럼 나중에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시면, 저는 다시는 아이를 볼 수 없게 되는 건가요?”
- “정말 그런 날이 오면 그때 다시 협의하지.”
- 신재한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분명한 압박감이 담겨 있었다.
- “다만 한 가지는 미리 확실히 해 두지. 우리가 호흡을 맞추지 못해 다른 사람에게 들키거나, 네가 처음부터 나와 신씨 가문 전체를 속일 생각이었다는 걸 내가 알아내면…… 넌 평생 아이를 다시 볼 생각도 하지 마.”
- 그 말에 이하은의 자존심이 발끈했다.
- 그녀는 허리를 꼿꼿이 펴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재벌 가문에 관심 없어요. 조수님께 계약서를 다시 작성해 달라고 하세요.”
- 신재한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옆에 놓인 여행 가방을 가리켰다.
- “우선 짐부터 싸. 계약서는 내 저택으로 보내 달라고 비서에게 말해 두지.”
- 이하은은 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 “알겠어요.”
- 토라진 그녀의 모습을 보자 신재한의 차가운 마음이 조금씩 누그러졌다.
- 그는 한 걸음 다가와 손끝으로 그녀의 턱을 가볍게 잡았다.
- “내 규칙을 기억해.”
- 낮고 매력적인 목소리가 또렷하게 울렸다.
- “이 가짜 반려 관계에서 네가 나와 함께 참석해야 하는 자리는, 어느 정도까지 친밀하게 행동할지 내가 정해. 그리고 앞으로는 신 회장님이라고 부르지 마. 재한이라고 불러.”
- 강압적이면서도 뜨거운 기운이 밀려오자 이하은은 온몸이 가늘게 떨렸다.
- 그녀는 얼굴을 붉힌 채 조심스럽게 불러 보았다.
- “재…… 재한.”
- 그 호칭을 들은 신재한의 눈빛이 한층 깊어졌다.
- “이하은, 네 역할을 제대로 해내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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