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안이 바닥까지 내려앉는 건 한순간이었다. 사채에 손을 댄 게 화근이었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이자는 이제 우리 가족의 목숨줄을 죄어왔고, 결국 우리 식구 열 명은 지하 경매장에 짐짝처럼 처박혔다.
조부모님은 도박에 미쳐 가산을 탕진했고, 삼촌 셋은 약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었다. 장남이라는 책임감에 짓눌린 아버지는 그 빚을 갚겠다고 다시 사채를 끌어다 쓰는 악순환을 반복했다. 사촌 동생인 한유라는 나와 동갑이었다. 집안에서 가장 빼어난 외모를 가진 탓에, 가족들은 유라를 마지막 구명줄이자 비싼 값에 팔아치울 상품으로 여겼다.
그날 밤, 유라는 강제로 무대 위에 등 떠밀려 올라갔다. 경매 품목은 그녀의 ‘첫날밤’이었다.
참으로 가증스러운 노릇이었다. 이미 유라는 그놈의 ‘첫날밤’을 여기저기 몇 번이나 팔아먹은 전적이 있었다. 집안 식구들만 모르는, 이미 걸레짝이 된 지 오래된 레퍼토리였다. 낙찰가가 미친 듯이 치솟으며 장내의 열기가 달아오를 때, 나는 무대로 뛰어 올라가 경매사의 마이크를 낚아챘다.
“……?”
장내에 당혹스러운 정적이 흐르는 사이, 내 손짓 한 번에 대형 스크린이 번쩍이며 켜졌다. 화면에는 이 바닥에서 이름깨나 날린다는 거물들과 한유라가 뒤엉켜 있는 적나라한 사진들이 줄줄이 터져 나왔다. 객석 여기저기서 경악 섞인 신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마이크를 꽉 쥔 채 조소 섞인 목소리로 입을 뗐다.
“자, 귀빈 여러분. 오늘 밤은 경매 대신 게임을 하나 하죠.”
나는 사색이 되어 나를 노려보는 VIP석의 노인과 눈을 맞추며 말을 이었다.
“누구 사진이든 상관없습니다. 화면에 본인 얼굴이 뜨는 분들은 직접 제값을 치르고 그 사진을 사 가시면 됩니다.”
입가에 비틀린 미소가 걸렸다.
“거절하시면…… 이 사진들은 내일 아침 모든 언론사와 커뮤니티 메인에 깔리게 될 겁니다. 자, 베팅 시작하시죠.”
지하 경매장은 소위 ‘성공했다’는 남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번듯한 수트를 차려입은 그들은 짐승 같은 탐욕을 숨기지 않은 채 무대 위 여자를 훑어내렸다. 이곳에서 여자는 상품이고, 남자는 포식자이자 구매자였다.
오늘 밤의 메인이벤트는 ‘명문대 여대생의 첫날밤’ 경매. 남자들의 원초적인 정복욕을 자극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미끼는 없었다. 우습게도 객석에는 이미 한유라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맛본 놈들이 수두룩했다. 그런데도 이 비린내 나는 공기 속에 휩싸여 위세를 과시하려 제 살 깎아먹기식 가격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500만 달러!”
“800만!”
“1,000만 달러!”
한쪽 구석에 붙들려 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삼촌들은 무대 위 유라를 보며 입을 벌렸다. 그들에게 유라는 피붙이가 아니라, 자신들의 팔자를 고쳐줄 황금알을 낳는 거위일 뿐이었다. 반면, 내 부모님은 구석에 웅크린 채 고개를 들지 못했다. 뼛속까지 박힌 그 무력함과 비겁함은 이제 불치병이나 다름없었다.
사채 시장의 큰손이자 이 경매의 책임자인 도창수는 이 아수라장을 흡족하게 감상하고 있었다. 무대 위 한유라는 눈가에 이슬을 매달고 입술을 깨물며 가련한 연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입찰하는 남자들 하나하나와 눈을 맞추며 노련하게 꼬리를 쳤다.
가격은 결국 3,000만 달러에서 멈췄다. 낙찰자는 부동산 재벌, 임창수. 쉰 살이 넘은 대머리 남자는 흥분에 겨워 벌떡 일어났다. 그 외설적인 눈빛은 당장이라도 유라를 잡아먹을 듯 번들거렸다. 나는 그를 기억한다. 지난번 유라에게 낚여 호텔까지 갔다가, 본처의 전화를 받고 겁에 질려 도망치는 바람에 마지막 ‘깊은 교류’는 나누지 못했던 겁쟁이.
할머니가 허벅지를 탁 치며 환호했다.
“3,000만 달러! 저 돈이면 빚 다 갚고도 남겠어! 우리 셋째 장가도 보내고 빌딩 하나 사자!”
삼촌들도 덩달아 소리를 질러댔다. 이미 돈다발에 파묻힌 환상이라도 보는 모양이었다. 도창수가 최종 낙찰을 알리는 망치를 들어 올린 바로 그 순간, 나는 나를 붙잡고 있던 사내의 팔을 뿌리치고 무대로 돌진했다. 모두가 당황한 사이, 사회자의 손에서 마이크를 낚아채고 준비해온 USB를 포트에 꽂았다.
“잠깐.”
내 목소리는 낮았지만, 웅장한 스피커를 타고 경매장 구석구석까지 서늘하게 퍼졌다. 찰나의 순간, 유라 뒤편의 대형 스크린이 번쩍하며 켜졌다. 사진 한 장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야한 슬립 차림의 한유라가 한 남자의 품에 안겨 교태를 부리며 웃고 있는 모습. 그 남자는 방금 3,000만 달러를 외친 임창수였다.
장내가 송장이라도 나타난 듯 고요해졌다. 임창수의 얼굴에서 승전보 같은 미소가 딱딱하게 굳었다. 한유라의 안색 역시 순식간에 시체처럼 창백해졌다. 나는 그들의 반응 따위 안중에도 없다는 듯 재생 버튼을 눌렀다.
화면 속 사진들이 무자비하게 넘어가기 시작했다. 두 번째 사진, IT 업계의 신흥 부자 강이현과 요트 위에서 밀착해 있는 모습. 세 번째 사진, 유명 금융가와 호텔 스위트룸에서 찍은 은밀한 셀카. 사진 속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달랐지만, 공교로운 공통점이 있었다. 전부 오늘 이 자리에 귀빈으로 참석한 거물들이라는 것.
방금까지 돈다발을 흔들며 환호하던 내 소위 ‘가족’이라는 인간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셨다. 객석의 사내들은 처음엔 어리둥절한 듯 서로의 눈치만 살피더니, 곧 숨길 수 없는 공포에 질려 사색이 되어갔다. 나는 마이크를 고쳐 쥐었다.
“사장님들, 너무 성급하게 굴지 마세요.”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
“오늘 밤은 조금 더 자극적인 판을 벌여볼까 하거든요. 게임 이름은 ‘사진 경매’. 화면에 누구 사진이 뜨든, 당사자가 직접 돈을 내고 사 가는 겁니다. 내가 만족할 만한 액수만 제시한다면, 그 사진은 이 세상에서 깔끔하게 지워드리죠.”
서늘한 침묵이 흐르는 장내를 한 번 훑고는 쐐기를 박았다.
“거절하시면…… 아시죠? 이 사진들이 내일 아침 어떤 언론사와 포털 사이트 메인을 장식하게 될지.”
경매 책임자 도창수의 안색이 숯덩이처럼 시커멓게 죽었다. 그의 곁을 지키던 해결사 둘이 눈짓을 받자마자 나를 무대 아래로 끌어내리려 사납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나는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이크를 입가에 바짝 대고 나직하게 읊조렸다.
“도창수, 이 안에 너랑 네 보스 사진까지 들어 있을지…… 궁금하지 않아?”
달려들던 사내들의 발걸음이 돌덩이라도 된 듯 우뚝 멈춰 섰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 도창수의 눈치를 살폈다. 도창수의 비대한 몸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잡아먹을 듯한 눈으로 나를 쏘아보았지만, 그 눈빛 속에는 감출 수 없는 의구심과 서늘한 살기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