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다음 화
지하 경매장에서 VVIP들의 목줄을 쥐었습니다

지하 경매장에서 VVIP들의 목줄을 쥐었습니다

yolo

Last update: 1970-01-01

제1화

  • 우리 집안이 바닥까지 내려앉는 건 한순간이었다. 사채에 손을 댄 게 화근이었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이자는 이제 우리 가족의 목숨줄을 죄어왔고, 결국 우리 식구 열 명은 지하 경매장에 짐짝처럼 처박혔다.
  • 조부모님은 도박에 미쳐 가산을 탕진했고, 삼촌 셋은 약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었다. 장남이라는 책임감에 짓눌린 아버지는 그 빚을 갚겠다고 다시 사채를 끌어다 쓰는 악순환을 반복했다. 사촌 동생인 한유라는 나와 동갑이었다. 집안에서 가장 빼어난 외모를 가진 탓에, 가족들은 유라를 마지막 구명줄이자 비싼 값에 팔아치울 상품으로 여겼다.
  • 그날 밤, 유라는 강제로 무대 위에 등 떠밀려 올라갔다. 경매 품목은 그녀의 ‘첫날밤’이었다.
  • 참으로 가증스러운 노릇이었다. 이미 유라는 그놈의 ‘첫날밤’을 여기저기 몇 번이나 팔아먹은 전적이 있었다. 집안 식구들만 모르는, 이미 걸레짝이 된 지 오래된 레퍼토리였다. 낙찰가가 미친 듯이 치솟으며 장내의 열기가 달아오를 때, 나는 무대로 뛰어 올라가 경매사의 마이크를 낚아챘다.
  • “……?”
  • 장내에 당혹스러운 정적이 흐르는 사이, 내 손짓 한 번에 대형 스크린이 번쩍이며 켜졌다. 화면에는 이 바닥에서 이름깨나 날린다는 거물들과 한유라가 뒤엉켜 있는 적나라한 사진들이 줄줄이 터져 나왔다. 객석 여기저기서 경악 섞인 신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마이크를 꽉 쥔 채 조소 섞인 목소리로 입을 뗐다.
  • “자, 귀빈 여러분. 오늘 밤은 경매 대신 게임을 하나 하죠.”
  • 나는 사색이 되어 나를 노려보는 VIP석의 노인과 눈을 맞추며 말을 이었다.
  • “누구 사진이든 상관없습니다. 화면에 본인 얼굴이 뜨는 분들은 직접 제값을 치르고 그 사진을 사 가시면 됩니다.”
  • 입가에 비틀린 미소가 걸렸다.
  • “거절하시면…… 이 사진들은 내일 아침 모든 언론사와 커뮤니티 메인에 깔리게 될 겁니다. 자, 베팅 시작하시죠.”
  • 지하 경매장은 소위 ‘성공했다’는 남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번듯한 수트를 차려입은 그들은 짐승 같은 탐욕을 숨기지 않은 채 무대 위 여자를 훑어내렸다. 이곳에서 여자는 상품이고, 남자는 포식자이자 구매자였다.
  • 오늘 밤의 메인이벤트는 ‘명문대 여대생의 첫날밤’ 경매. 남자들의 원초적인 정복욕을 자극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미끼는 없었다. 우습게도 객석에는 이미 한유라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맛본 놈들이 수두룩했다. 그런데도 이 비린내 나는 공기 속에 휩싸여 위세를 과시하려 제 살 깎아먹기식 가격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 “500만 달러!”
  • “800만!”
  • “1,000만 달러!”
  • 한쪽 구석에 붙들려 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삼촌들은 무대 위 유라를 보며 입을 벌렸다. 그들에게 유라는 피붙이가 아니라, 자신들의 팔자를 고쳐줄 황금알을 낳는 거위일 뿐이었다. 반면, 내 부모님은 구석에 웅크린 채 고개를 들지 못했다. 뼛속까지 박힌 그 무력함과 비겁함은 이제 불치병이나 다름없었다.
  • 사채 시장의 큰손이자 이 경매의 책임자인 도창수는 이 아수라장을 흡족하게 감상하고 있었다. 무대 위 한유라는 눈가에 이슬을 매달고 입술을 깨물며 가련한 연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입찰하는 남자들 하나하나와 눈을 맞추며 노련하게 꼬리를 쳤다.
  • 가격은 결국 3,000만 달러에서 멈췄다. 낙찰자는 부동산 재벌, 임창수. 쉰 살이 넘은 대머리 남자는 흥분에 겨워 벌떡 일어났다. 그 외설적인 눈빛은 당장이라도 유라를 잡아먹을 듯 번들거렸다. 나는 그를 기억한다. 지난번 유라에게 낚여 호텔까지 갔다가, 본처의 전화를 받고 겁에 질려 도망치는 바람에 마지막 ‘깊은 교류’는 나누지 못했던 겁쟁이.
  • 할머니가 허벅지를 탁 치며 환호했다.
  • “3,000만 달러! 저 돈이면 빚 다 갚고도 남겠어! 우리 셋째 장가도 보내고 빌딩 하나 사자!”
  • 삼촌들도 덩달아 소리를 질러댔다. 이미 돈다발에 파묻힌 환상이라도 보는 모양이었다. 도창수가 최종 낙찰을 알리는 망치를 들어 올린 바로 그 순간, 나는 나를 붙잡고 있던 사내의 팔을 뿌리치고 무대로 돌진했다. 모두가 당황한 사이, 사회자의 손에서 마이크를 낚아채고 준비해온 USB를 포트에 꽂았다.
  • “잠깐.”
  • 내 목소리는 낮았지만, 웅장한 스피커를 타고 경매장 구석구석까지 서늘하게 퍼졌다. 찰나의 순간, 유라 뒤편의 대형 스크린이 번쩍하며 켜졌다. 사진 한 장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야한 슬립 차림의 한유라가 한 남자의 품에 안겨 교태를 부리며 웃고 있는 모습. 그 남자는 방금 3,000만 달러를 외친 임창수였다.
  • 장내가 송장이라도 나타난 듯 고요해졌다. 임창수의 얼굴에서 승전보 같은 미소가 딱딱하게 굳었다. 한유라의 안색 역시 순식간에 시체처럼 창백해졌다. 나는 그들의 반응 따위 안중에도 없다는 듯 재생 버튼을 눌렀다.
  • 화면 속 사진들이 무자비하게 넘어가기 시작했다. 두 번째 사진, IT 업계의 신흥 부자 강이현과 요트 위에서 밀착해 있는 모습. 세 번째 사진, 유명 금융가와 호텔 스위트룸에서 찍은 은밀한 셀카. 사진 속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달랐지만, 공교로운 공통점이 있었다. 전부 오늘 이 자리에 귀빈으로 참석한 거물들이라는 것.
  • 방금까지 돈다발을 흔들며 환호하던 내 소위 ‘가족’이라는 인간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셨다. 객석의 사내들은 처음엔 어리둥절한 듯 서로의 눈치만 살피더니, 곧 숨길 수 없는 공포에 질려 사색이 되어갔다. 나는 마이크를 고쳐 쥐었다.
  • “사장님들, 너무 성급하게 굴지 마세요.”
  •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
  • “오늘 밤은 조금 더 자극적인 판을 벌여볼까 하거든요. 게임 이름은 ‘사진 경매’. 화면에 누구 사진이 뜨든, 당사자가 직접 돈을 내고 사 가는 겁니다. 내가 만족할 만한 액수만 제시한다면, 그 사진은 이 세상에서 깔끔하게 지워드리죠.”
  • 서늘한 침묵이 흐르는 장내를 한 번 훑고는 쐐기를 박았다.
  • “거절하시면…… 아시죠? 이 사진들이 내일 아침 어떤 언론사와 포털 사이트 메인을 장식하게 될지.”
  • 경매 책임자 도창수의 안색이 숯덩이처럼 시커멓게 죽었다. 그의 곁을 지키던 해결사 둘이 눈짓을 받자마자 나를 무대 아래로 끌어내리려 사납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나는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이크를 입가에 바짝 대고 나직하게 읊조렸다.
  • “도창수, 이 안에 너랑 네 보스 사진까지 들어 있을지…… 궁금하지 않아?”
  • 달려들던 사내들의 발걸음이 돌덩이라도 된 듯 우뚝 멈춰 섰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 도창수의 눈치를 살폈다. 도창수의 비대한 몸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잡아먹을 듯한 눈으로 나를 쏘아보았지만, 그 눈빛 속에는 감출 수 없는 의구심과 서늘한 살기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