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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 한상우의 얼굴 반쪽이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
  •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이영희였다.
  • 그녀는 곧바로 심채아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 그리고 날카롭게 소리쳤다.
  • “감히 사람을 때려?! 가정교육도 못 받은 게! 폭력광이야, 완전!”
  • 심은하는 이른바 ‘엄마’라는 이영희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 이영희는 셀 수도 없이 심은하의 뺨을 때렸고,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심은하를 두들겨 팼다.
  • 대체 누가 가정교육을 못 받은 건데?
  • 심은하가 반박하기도 전에, 눈앞으로 하얀 그림자가 번쩍 스쳤다.
  • 심정훈이 식탁 위에 있던 하얀 도자기 그릇을 집어 들더니, 그대로 심은하를 향해 세게 내던졌다.
  • 심은하는 미처 피하지 못했다.
  • 그릇은 그녀의 머리 위를 정통으로 때렸고, 피가 순식간에 흘러내렸다.
  • 그런데도 심은하는 신음 한 번 내지 않았다.
  • 등을 꼿꼿하게 세운 채,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진 심정훈을 똑바로 올려다봤다.
  • 가슴속에 몇 년 동안 꾹꾹 눌러 담아왔던 억울함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 예전의 그녀는 한 걸음씩 물러섰고, 이를 악물고 참고 또 참았다.
  • 하지만 돌아온 건 끝없는 괴롭힘과 배신뿐이었다.
  • 정말 비참하고 우스울 만큼 바보 같았다.
  • 이번엔 절대 참지 않을 거다.
  • “네가 아주 미쳤구나!”
  • 아버지가 식탁을 쾅 치며 고함쳤다. 얼굴은 먹구름처럼 어두웠다.
  • “거기 누구 없어! 저 애 끌어내!”
  • 검은 정장을 입은 경호원 두 명이 곧장 앞으로 다가와 심은하의 어깨를 억세게 움켜쥐었다.
  • 심은하는 발버둥 치지도, 울며불며 매달리지도 않았다.
  • 그저 차갑게,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훑어봤다.
  • 경호원들의 손길은 거칠었다.
  • 그들은 심은하를 문밖으로 질질 끌고 나가더니, 차가운 바닥 위로 사정없이 내던졌다.
  • 문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닫혔다.
  • 그 문은 심은하를 완전히 밖으로 밀어냈다.
  • 문 안에 있는 사람들은 확신했다.
  • 심은하가 사람들 앞에서 집에서 쫓겨났으니, 분명 용서를 빌고 잘못했다고 매달릴 거라고.
  • 하지만 이번에 심은하는 바닥을 짚고 일어섰다.
  • 몸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냈다.
  • 그리고 그대로 돌아서서 걸어갔다.
  •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 갈 곳 없는 깊은 밤, 심은하는 공원 벤치 위에 몸을 웅크리고 밤을 지새웠다.
  • 배는 고프고 몸은 얼어붙을 듯 추웠다.
  • 무릎의 오래된 상처는 또다시 욱신욱신 쑤셔댔다.
  • 그렇게 이를 악물고 버티다 보니 겨우 날이 밝았다.
  • 다음 날 아침 일찍,
  • 심은하는 적혀 있던 주소를 따라 예전에 아르바이트하던 디자인 스튜디오까지 걸어갔다.
  • 그곳은 그녀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팀장이 곧장 그녀를 막아섰다.
  • 팀장의 목소리에는 난처함이 가득했다.
  • “미안해. 너 해고됐어.”
  • 심은하가 미간을 찌푸렸다.
  • “왜요?”
  • “심 씨네 회사 공식 홈페이지에 업계 공지가 올라왔어. 너, 전 업계에서 블랙리스트야.”
  • 팀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 눈앞의 어린 여자가 안쓰러웠는지, 솔직하게 말했다.
  • “디자인 업계 전체에서 아무도 널 쓰려고 하지 않아. 우리 같은 작은 스튜디오는 더더욱 그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널 둘 수가 없어.”
  • 심은하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 그리고 순식간에 모든 게 또렷해졌다.
  • 심 씨 집안은 그녀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놓고, 얌전히 고개 숙여 잘못했다고 빌게 만들 생각인 것이다.
  • 하지만 심은하는 절대 그럴 생각이 없었다.
  • 이번엔 밖에서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절대 다시 타협하지 않을 거다.
  • 그녀는 더 이상 매달리지 않았다.
  • 깔끔하게 돌아서서 나왔다.
  • 돈 한 푼 없고, 갈 곳도 없었다.
  • 그래도 살아야 했기에 심은하는 여기저기 전전했다.
  • 그러다 결국 길가의 작은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구했다.
  • 가게를 운영하는 노부부는 마음씨가 착했다.
  • 그들은 심은하에게 먹을 것과 잘 곳을 내주겠다고 했다.
  • 심은하는 잠시나마 안정적으로 지낼 수 있을 줄 알았다.
  • 하지만 겨우 일주일 만에, 골칫거리가 제 발로 찾아왔다.
  • 오후라 손님이 뜸한 시간이었다.
  • 고급 외제차 한 대가 식당 앞에 멈춰 섰다.
  • 심채아가 오빠 심재민의 팔짱을 끼고 안으로 들어왔다.
  • 그녀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화려하게 꾸민 차림이었고, 얼굴에는 제멋대로 자란 티가 잔뜩 묻어 있었다.
  • 심채아는 심은하를 보며 웃었다.
  • 그리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언니, 우리가 드디어 찾았네. 언니가 여기서 서빙하고 있다는 거 알고 내가 얼마나 마음 아팠는지 몰라.”
  • 심은하는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 잠시 후에야, 점점 그녀가 누구인지 떠올랐다.
  • 그 순간, 불길한 예감이 확 밀려왔다.
  • “긴장하지 마, 언니. 우린 그냥 언니 보러 온 거야. 겸사겸사 밥도 먹고.”
  • 밥을 먹으러 왔다고는 했지만, 심채아는 애초부터 트집 잡으러 온 게 뻔했다.
  • 양념이 너무 세다고 했다가, 식기가 더럽다고 했다.
  • 심지어는 작은 식당의 식재료에 문제가 있다고 누명을 씌우며 신고하겠다고까지 떠들어댔다.
  • 심은하는 가게 주인 부부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 괜히 싸움을 만들고 싶지 않아, 심채아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려 했다.
  • 그런데 심채아가 갑자기 손을 들었다.
  • 유리컵이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 났다.
  • “어머, 어머. 컵이 깨졌네. 서빙하는 언니, 얼른 와서 깨끗하게 치워야지.”
  • 심은하는 이를 악물었다.
  • 끓어오르는 화를 억지로 누르며 허리를 숙여 조각들을 치웠다.
  • 손가락이 유리 조각에 닿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 하이힐이 갑자기 심은하의 손등을 짓눌렀다.
  • 깨진 유리 조각이 순식간에 손바닥 피부를 파고들었다.
  • 바닥 위로 붉은 피가 번져 나갔다.
  • “아악!!”
  • 심장을 찌르는 듯한 통증에 심은하의 온몸이 파르르 떨렸다.
  • 그녀는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심채아를 밀쳐내려 했다.
  • 누구나 알고 있었다.
  • 디자이너에게 손은 목숨줄이나 다름없다는 걸.
  • 그런데 심채아가 몸을 숙였다.
  • 그리고 딱 두 사람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차갑게 협박했다.
  • “까불지 마. 네가 조금이라도 반항하면, 내가 이 가게 박살 내버릴 거야. 저 두 노인네, 갈 곳 없게 만들어줄 수도 있어.”
  • 옆에서 차갑게 지켜보던 심재민은 구두굽이 내려찍히는 순간,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막으려 했다.
  • 하지만 한발 늦었다.
  • 그는 고개를 숙여 피 흘리는 심은하의 손가락을 바라봤다.
  •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 하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심채아는 곧바로 가슴 아파 죽겠다는 표정으로 바꿔 끼웠다.
  • 입을 손으로 가리고, 다급하게 사과했다.
  • “어머, 언니 미안해! 내가 언니 손을 못 봤어. 미안해, 정말 미안해!”
  • 심은하는 고개를 들었다.
  • 목소리가 떨리려는 걸 가까스로 눌러 삼키며 말했다.
  • “뭘 하려면 나한테 해. 죄 없는 사람들까지 끌어들이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