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 감금실에 꼬박 하루를 갇혀 있었다.
- 물도 없고, 밥도 없었다.
- 안은 음산하게 춥고 축축했다.
- 무릎의 오래된 상처는 잊을 만하면 또 욱신거렸다.
- 심은하는 벽에 기대 앉아 손바닥을 꽉 움켜쥐었다.
- 머릿속에는 딱 한마디만 남아 있었다.
- 한상우는 진실을 알아. 그가 날 도와줄 거야.
- 그 생각 하나가, 심은하를 버티게 하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 문이 열렸다.
- 하녀가 무표정한 얼굴로 심은하를 내려다보며 차갑게 말했다.
- “심정훈 씨가 식당으로 오라십니다.”
- 심은하는 벽을 짚고 겨우 일어섰다. 무릎에 힘이 풀려 몸이 휘청했다.
- 그래도 지체할 수 없었다. 심은하는 빠른 걸음으로 식당으로 향했다.
- 가슴 한구석에는 마지막 기대가 눌러앉아 있었다.
- 어쩌면 오늘, 모든 누명을 벗을 수 있을지도 몰라.
- 식당은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고, 음식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 심씨 집안 사람들은 모두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한상우도 당연하다는 듯 식탁 옆에 앉아 있었다.
- 그는 깨끗한 셔츠를 입고 반듯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심은하를 바라보는 눈빛은 다정했다.
- 예전과 똑같았다.
- 심은하가 들어오는 걸 보자, 한상우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 그리고 옆자리 의자를 능숙하게 빼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 “이리 와서 앉아. 오래 굶었으니 많이 힘들었지?”
- 심은하의 잔뜩 굳어 있던 어깨가 아주 조금 풀렸다.
- 역시, 그만은 달랐다.
- 하지만 심은하가 제대로 앉기도 전에, 아버지가 식기를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 “네가 밥 먹을 낯짝이 있어? 한상우 얼굴 봐서 널 꺼내준 줄 알아. 당장 무릎 꿇고 심채아한테 사과해!”
- 이영희는 곧바로 눈시울을 붉히더니, 옆에 앉은 심채아를 품에 끌어안았다.
- 그리고 한상우를 향해 하소연했다.
- “상우야, 쟤 불쌍한 척하는 거에 속으면 안 돼. 쟤는 채아 디자인 시안을 베꼈을 뿐만 아니라, 들키고 나서는 채아 손가락까지 꺾으려고 했어.”
- “내 불쌍한 딸, 하마터면 다시는 펜도 못 잡을 뻔했잖아.”
- 심채아는 이영희 품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꾹 참는 척했다.
- 겁먹고 가련하고, 너무나도 억울한 얼굴이었다.
- 오빠 심재민의 말투에는 혐오가 뚝뚝 묻어났다.
- “넌 악독한 것도 모자라서 주제 파악도 못 하지. 한상우가 착해서 널 싫다고 안 하는 건데, 진짜 네가 그의 약혼녀라도 되는 줄 알았어?”
- 욕설이 한마디, 또 한마디 쏟아졌다.
- 숨이 턱턱 막혔다.
- 심은하는 더는 두려워할 겨를도 없었다.
- 홱 고개를 돌려 한상우를 바라보았다. 눈빛이 다급하게 흔들렸다.
- 그는 심은하의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 심은하는 억눌린 애원으로 입을 열었다.
- “상우야, 제발 네가 설명 좀 해줘. 나 베낀 적 없어. 쟤 다치게 한 적도 없다고!”
- 한상우는 2초쯤 침묵했다.
- 하지만 얼굴의 다정한 미소는 그대로였다.
- “은하야, 난 너희 집안일은 잘 모르겠는데.”
- 심은하의 몸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 심은하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한상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 “심은하, 어쨌든 네가 먼저 베꼈고, 그다음 사람까지 다치게 했잖아. 그건 네가 잘못한 거야.”
- 순간, 수많은 밤샘의 장면들이 머릿속으로 밀려들었다.
- 깊은 밤마다 심은하는 한 획, 한 획 디자인 시안을 고쳤다.
- 자신의 아이디어를 그에게 들려주고, 그와 함께 세부적인 부분을 수정했다.
- 그는 분명 다 알고 있었다.
- 그런데 지금 와서 모르는 척한다고?
-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 심은하는 그 자리에 멍하니 굳어 섰다. 자기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 한상우는 심은하가 반박하지 못하는 걸 보고, 더 뻔뻔하게 말을 이었다.
- “말 들어. 채아한테 사과하고 잘못했다고 해. 앞으로 제대로 고치면 되잖아.”
- “안 그러면 나, 너 미워하게 될지도 몰라.”
- 그 말투는 마치 반려견을 어르고 협박하는 것 같았다.
- 심은하는 눈을 들어 눈부시게 빛나는 샹들리에를 바라보았다.
-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다가, 결국 머릿속에서 버티고 있던 마지막 끈이 뚝 끊어졌다.
- 며칠 동안의 굶주림.
- 오랜 세월 쌓여온 억울함.
- 계속 반복된 모함.
- 가장 믿었던 사람의 배신.
- 그 모든 감정이 한순간에 터져 나왔다.
- 한상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다가와 심은하의 손을 붙잡았다.
- “은하야, 이제 고집 그만 부리자. 응? 자, 사과만 하면…”
-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크고 선명한 소리가 모든 것을 끊어냈다.
- 심은하가 있는 힘껏 한상우의 뺨을 후려쳤다.
- “나한테 손대지 마, 이 위선자.”
- “착한 사람인 척하는 거였어? 너 진짜 역겨워.”
- 식당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 모든 사람이 얼이 빠진 얼굴로 일제히 심은하를 바라보았다.
-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 늘 얌전한 척, 불쌍한 척하면서 맞고 욕먹어도 참기만 하던 심은하가.
- 감히 사람들 앞에서 뺨을 때릴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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