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 7일 안에, 여기 일들을 다 정리할 계획이었다.
- 딱 하나 못 놓는 게 이 디저트 공방이었다.
- 가게를 인수하겠다는 사람이 많았다. 밤새 걸러서 가장 맞는 사람을 골랐다. 사흘 뒤 양도 계약에 도장 찍기로 했다.
- 직원들에게 이 소식을 알리러 가려고 했는데, 문 앞에 서자마자 내가 입 떼기도 전에 직원 하나가 주문서를 번쩍 들었다. 발주처가 서태오의 회사였다.
- 주문서에는 특별히 이렇게 적혀 있었다. “기념일 축하해.”
- 하필 오늘이 우리 8주년 기념일이었다.
- “서태오 대표님이 직접 주문하셨어요. 디자인 시안도 안 보고 잔금까지 바로 결제! 대표님은 언니가 벌써 케이크 만들어둔 거 모르시더라고요. 우리 다 입 꾹 닫고 있었죠.”
- 일주일 전부터 나는 서태오 몰래 새 케이크를 밤낮없이 디자인했다. 대회 나갈 때보다 더 공들였다. 그가 좋아하는 것들만 모았다. 폰당이랑 초콜릿으로 한 점 한 점 빚었다. 완성품은 진짜 세상을 줄여 넣은 미니어처 같았다.
- 어제, 그것도 한밤중에야 겨우 마쳤다. 깜짝 선물하려고.
- 그런데 집에 돌아가 보니, 먼저 받은 건 ‘바람’이라는 초대형 깜짝 선물이더라.
- 마침 그때 서태오의 비서가 가게로 들어왔다. 직원들이 신나서 내가 만든 케이크를 밀어냈다.
- 애들이 장난치며 나를 밖으로 밀었다. “하선 언니, 얼른 가요. 서태오 대표님 기다리시게 하면 안 되지요.”
- 어떻게 거절할까 생각하는데, 비서가 나를 막았다. “가실 필요 없습니다. 이 케이크, 다른 분께 드리는 거예요.”
- 까불던 애들이 일제히 입을 닫고 나를 봤다.
- 그때 문 앞이 소란스러워지더니, 사람들이 둘러싸고 박유라가 들어왔다.
- 그녀 품에는 커다란 장미 꽃다발. 한눈에 띄는 카드가 꽂혀 있었다. 서태오가 직접 또박또박 쓴 글씨. [내 진짜 사랑—— 박유라]
- 둘러싼 사람들이 짹짹거리며 그녀를 치켜세웠다.
- “어제 서태오 대표님이 네 집에서 밤 새셨다며? 곧 입지 굳히겠네.”
- “이 꽃다발, 대표님이 해외에서 공수했다더라. 집에 있는 그 늙은 여자는 받은 것도 없다던데.”
- “유라가 얼마나 풋풋한데. 그 노인네가 상대가 되나.”
- 박유라는 뻔뻔하게 자랑했다. “여기가 이 나라에서 제일 잘하는 디저트 집이래. 원래 우리 1주년 기념 케이크, 내가 직접 만들려 했거든? 근데 태오 오빠가 나 힘들게 하지 말라면서 예약해줬지 뭐야.”
- 둘이 벌써 1년이나 붙어 있었구나. 작년 오늘. 우리 7주년이던 그날. 나는 서태오 생각뿐이었는데, 그는 내 등 뒤에서 다른 여자랑 침대에 누웠다.
- 박유라가 매장 중앙의 케이크를 보더니 눈이 번쩍였다. “와, 진짜 예쁘다. 서태오 말이 맞네. 내가 딱 좋아할 거라더니. 정시아 비서, 이 케이크 바로 가져가요.”
- 나는 바로 끊었다. “이 케이크, 안 팔아.”
- 서태오랑의 추억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저 사람들한테 내 노동의 결과를 누릴 자격이 없어서다.
- “뭐라고? 난 이게 좋아! 이거 가져갈 거야! 왜 나한테 안 줘?” 박유라가 나를 손가락질했다. 말투도 싸가지 없었다.
- 나는 또박또박 말했다. “자격이 없어.”
- 박유라가 마스크 쓰고 모자까지 눌러쓴 내 얼굴을 노려봤다. 어디서 본 듯한 눈빛이었다.
- 제대로 확인하고 내가 맞다는 걸 알자, 얼굴이 금세 달아올랐다. 목소리도 한껏 올라갔다. “누군가 했네. 버려진 그 늙은 여자잖아~ 케이크 하나 붙들고 있으면 태오 오빠가 돌아올 줄 알았어?”
- “꿈 깨!”
-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박유라가 들고 있던 가방을 번쩍 들어 케이크에 내리꽂았다.
- 크림이랑 폰당이 산산이 튀었다. 그녀는 미친 듯 가방을 휘둘러, 무게로 몇 번이고 내려쳤다.
- 그건 내 피와 시간이 박힌 작품이었다. 디저트 셰프로서의 결과물. 그렇게 짓밟히는 건 도저히 못 참았다.
- 막 가로막으려는데, 박유라가 가방을 내 쪽으로 휘둘렀다. 가방에 달린 뾰족한 장식이 그대로 내 눈을 찍었다. 불꽃이 튀듯 아파서 몸이 먼저 주저앉았다. 눈앞이 새까매졌다.
- 본능적으로 버티려는데, 갑자기 손목이 꽉 붙잡혔다. 당장이라도 부러질 듯이 비틀렸다.
- 간신히 눈을 떴다. 피에 번진 시야 너머로 서태오의 얼굴이 보였다.
- 손목은 점점 더 아팠다. 서태오의 힘이 더 세졌다. 그래도 나는 어금니를 꽉 물었다. 비명 한 번 안 질렀다.
- 직원들이 급히 서태오를 떼어냈다. 그는 내 손을 놓자마자 소독 티슈를 꺼내 손을 꼼꼼히 닦았다. 방금 엄청 더러운 걸 만진 사람처럼.
- 얼굴에 크림을 잔뜩 묻힌 박유라가 서태오 품으로 날아들었다. 훌쩍거리며 말했다. “태오 오빠, 저 언니가 케이크를 안 줘!”
- 서태오는 늘 결벽증이 있었다. 우리가 가장 친할 때조차, 내 크림 한 점도 그의 몸에 닿게 두질 않았다.
- 그런데 지금은 박유라를 꽉 안고 있었다. 맞춤 수트에 크림과 눈물이 잔뜩 묻어도 그냥 두고.
- 서태오는 박유라를 다독이면서도, 눈빛만은 날 위험하게 겨눴다. “케이크 안 줄 거야?”
- 나는 턱을 살짝 올렸다. 대답은 안 했다. 눈으로만 말했다. 안 줘.
- 서태오의 눈빛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강하선, 네가 아직도 내 아낸 줄 알아? 이혼했으면 넌 아무것도 아니야. 감히 내 여자를 건드려? 내가 가만둘 것 같아?”
- 그러더니, 뭔가 떠오른 듯 비웃었다.
- “아, 알겠다. 이렇게라도 해서 내 관심을 끌고 싶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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