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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 의식이 돌아오자 소독약 냄새가 콧속으로 파고들었다.
  • 나는 가문 저택 측면에 있는 객실 침대에 누워 있었고, 손목에는 수액줄이 꽃혀 있었다.
  • “부인님께서는 경미한 뇌진탕이십니다.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문 밖에서 의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강주혁의 대답은 싸늘했다.
  • “사람을 붙여서 함부로 돌아다니지 못하게 해라.”
  • 문밖 발소리가 멀어지자 나는 관자놀이의 붕대를 더듬었다. 붕대에 묻은 옅은 피가 손끝에 닿았다.
  • 그들은 이걸로 나를 가둬두려는 모양이었다.
  • 사흘째 되는 오후, 송시아가 가느다란 하이힐을 내며 들어왔다.
  • 헐렁한 실크 원피스를 입고 한 손으로 과장되게 배를 감싸고, 다른 손에는 보온통을 들고 있었다.
  • “주혁이 수프 갖다 주래요. 요즘 많이 말랐다고 하더라고요.” 그녀는 웃으면서도 예리한 눈빛으로 내 얼굴을 훑었다.
  • 보온통 뚜껑을 열자 익숙한 진한 향이 퍼졌다. 임신했을 때 내가 가장 좋아했던 바로 그 맛이었다.
  • “어제 주혁이 산전검진 같이 갔어. 의사가 아기 아주 건강하대.”
  • 그녀는 일부러 배를 쑥 내밀며 말했다.
  • “그가 날 안고 울더라구요. 드디어 후계자가 생겼다고.”
  • 나는 고개를 돌려 그 잘난 척하는 모습을 보지 않았다.
  • “그리고 말인데...” 송시아가 바짝 다가와 목소리를 낮췄지만 또렷하게 말했다.
  • “넌 강씨 가문의 장식품일 뿐이래. 애도 못 낳는대.”
  • 손에 쥔 수액줄이 구겨질 만큼 힘이 들어갔다. 바늘 꽂힌 자리가 따갑게 욱신거렸다.
  • “그리고 네 부모님 납치 사건 말인데...” 그녀가 피식 웃으며 덧붙였다.
  • “주혁이 그러더라. 어쩌면 네가 판 짜고 연출한 걸지도 모른대. 그를 묶어두려고.”
  • 나는 번뜩 고개를 돌려 그녀를 노려봤다.
  • 내 눈빛에 그녀는 한 걸음 물러섰다가, 이내 허리를 꼿꼿이 폈다.
  • “나 사실만 말하는 거든. 주혁이 직접 내게 그랬어.”
  • 송시아가 나간 뒤, 나는 하녀 루시를 불렀다.
  • 그녀는 예전에 엄마가 데려온 사람으로 저택에서 내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 “부인님, 무슨 일이세요?” 루시는 걱정 어린 눈빛으로 따뜻한 물을 들고 들어왔다.
  • “두 가지 좀 알아봐 줘.” 나는 컵을 받아들며 목소리를 낮췄다.
  • “첫째, 요즘 강주혁이 누구랑 어울리는지. 둘째, 부모님이 남기신 그 땅 관련해서.”
  • 루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재빨리 나갔으며 나가기 전 문도 조심스럽게 닫아 주었다.
  • 해 질 무렵, 루시는 저녁과 함께 소식을 전했다.
  • “주혁님이 요즘 일본 로젠 그룹 사람들을 자주 만나셨어요. 땅 매각 얘기를 하는 것 같아요.”
  • 그녀는 식기를 놓으며 빠르게 말했다.
  • 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역시 그는 부모님의 유산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 “어제 로젠 쪽 사람들이 그 땅도 보러 갔대요. 변호사도 같이 갔고요.” 루시의 눈빛은 다급해 보였다.
  • 포크와 나이프를 든 내 손이 멈췄다. 손끝이 하얗게 질렸다.
  • 그는 나를 쫓아내는 것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나와 부모님의 흔적까지 완전히 지우려는 것이다.
  • 밤, 문밖 경비가 교대하는 틈을 타 나는 강주혁의 서재로 살금살금 들어갔다.
  • 한때 그와 함께 가문 일을 처리하던 곳은 이제 나를 계산하고 쳐낼 음모가 숨어 있는 밀실이 되어 있었다.
  • 책상 왼쪽에 비밀 칸이 있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가 중요한 서류를 숨기는 곳이었다.
  • 차가운 나무 책상 표면을 손끝으로 더듬어 스위치를 찾았다.
  • "딸깍——"
  • 비밀 칸이 열렸고, 안에는 몇 장의 서류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 맨 위에는 강주혁과 송시아의 혼전 계약서 초안이 있었다.
  • 나는 급하게 페이지를 넘겼고 가슴속 심장이 미친 듯 쿵쾅거렸다.
  • 계약서에는 분명히 적혀 있었다.
  • 송시아가 남자아이를 낳으면 5천만 유로의 신탁기금과 강씨 가문의 서울 아파트 두 채를 받는다는 내용이 있었고
  • 말미에는 이미 강주혁의 서명이 있었다.
  • 나는 그 계약서를 품에 넣고 조용히 객실로 돌아왔다.
  • 침대에 누워 품 속 계약서를 어루만지며 눈빛은 점점 단단해졌다.
  • 침대 머리맡 서랍 비밀 칸에서 오래전에 숨겨둔 예비 휴대폰을 꺼냈다.
  • 손가락이 화면 위를 빠르게 스치고 번호를 눌러 전화를 걸었다.
  • “남도현 변호사님이시죠? 저 윤서연입니다.”
  • 수화기 너머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 “부인님, 드디어 연락 주셨군요.”
  • “두 가지 부탁드릴 게 있어요.”
  • 나는 창밖 달빛을 보며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 “첫째, 완벽한 이혼 소송 서류를 준비해 주세요.
  • 둘째, 가장 뛰어난 사설 탐정을 연락해 주세요.”
  •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남도현 변호사의 목소리는 믿음직했다.
  • 전화를 끊고, 나는 휴대폰을 다시 비밀 칸에 숨겼다.
  • 강주혁이 내게 진 빛, 송시아가 내게 진 빛, 모두 하나씩 전부 되찾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