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 저택에 막 발을 들이넣자, 바람을 타고 속삭임이 들려왔다.
- “쟤가 진짜 직원 출입구로 들어갔다고? 부인이라면서 내연녀도 못하대…”
- “혼전 계약서 썼대. 상속자 못 낳으면 아묵것도 못 가져간대.”
- “조금만 매력이 있었어도 주혁님이 딴 데서 위로 안 찾지.”
- 나는 고개를 빳빳이 들었지만 손톱은 손바닥을 깊게 파고들었다.
- 한때 자선 파티에서 나한테 잘 보이려고 아양 떨던 여자들이, 이제는 앞다퉈 나를 깎아내리고 있었다.
- 파티장, 수영장 옆에 선 시아를 본 순간, 숨이 턱 막혔다.
- 그 드레스는 엄마가 예전에 파리 금고에서 공수해온 빈티지 디올 웨딩드레스였다.
- “서연아” 시아가 살짝 코를 올리며 다가왔다. 목소리는 달콤했다.
- “기분 상하지 마세요. 주혁이 꼭 이걸 입고 임신 사진 찍자고 해서요.”
- 천에서는 엄마가 늘 뿌리던 향수가 희미하게 배어 나왔다.
- 나는 침착하게 웃으며 말했다.
- “재미있는 선택이네. 네 엄마는 남의 웨딩드레스 입고 사생아 사진 찍는다고 하면 뭐라 할까?”
- 수영장 쪽이 갑자기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 송시아의 태연함은 와르르 무너졌다.
- 그녀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아직 티도 나지 않는 배를 두 팔로 감쌌다.
- “제발요! 아이만 낳으면 바로 여기 떠날게요. 제 아이는 다치게 하지 말아 주세요!”
- 내가 그 막장 연기를 이해하기도 전에, 누군가가 두 손으로 나를 확 밀쳐냈다.
- “그만!” 긴장 속을 뚫고 나온 강주혁의 목소리였다.
- 그는 울고 있는 송시아를 끌어안았고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잿빛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 “널 차가운 사람인 건 알아, 윤서연. 근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 “걔 연기하는 거야, 강주혁. 너 그걸—” 나는 송시아의 속임수를 까내리려 했다.
- “연기?” 그는 싸늘하게 비웃으며 말했다.
- “네가 내 사업 파트너들 앞에서 완벽한 안주인인 척 바쁠 때, 시아는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걸 느끼게 했어.”
- 그 말들은 칼처럼 가슴에 박혔다.
- 카이로에서 그를 대신해 칼을 맞았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 뒤에 이어진 응급 자궁 절제 수술까지.
- 그리고 병상 앞에서 평생 사랑하겠다고 울먹이며 맹세하던 그의 얼굴도.
- 내 손끝이 7년 전에 그가 끼워준 앤티크 반지에 닿았다.
- 나는 일부러 천천히, 그 반지를 빼냈다.
- “강 씨 집안 가보.” 내가 반지를 내보이자, 어딘가에서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 “대대로 아내들에게 내려오던 반지고.”
- “여자를 애 낳는 기계로 보기 시작한 그때부터.”
- 나는 손을 놓았다. 반지는 대리석 바닥에 쾅 하고 떨어졌고 소리는 죽음 같은 정적 속을 울렸다.
- 강주혁의 눈에 공포에 가까운 빛이 스쳤다.
- “윤서연,그만해. 그렇게 드라마 찍듯 굴지 마.”
- 갑자기 깨지는 소리가 그의 말을 끊었다.
- 우리 결혼 5주년을 기념해 주문 제작했던 거대한 백조 얼음 조각상이 받침대에서 무너져 내렸다.
- “시아!” 강주혁이 고함치며 내연녀를 향해 몸을 던졌다. 수정 파편이 비처럼 쏟아졌다.
- 나는 그 자리에 굳어 섰다. 예전에 나 대신 총알마저 막아줬던 남자가, 다른 여자를 택하는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 깨진 얼음이 내 머리 쪽을 강타했다. 번개 같은 통증이 훅 치솟았다.
- 시야가 흐려질 때쯤, 저택 매니저가 조심스레 다가왔다.
- “주혁님, 부인님이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 “흘리게 둬.” 강주혁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두 팔로 시아를 꽉 끌어안으며 말했다.
- “저 사람 연기 좋아하잖아.”
- 마지막 기억은 피와 눈물의 짠맛뿐이었다.
- 엄마도, 자기 동화 같은 결혼이 결국 거래였다는 걸 알았을 때, 지금 내 삼킨 이 맛을 느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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