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의 양귀비 연인
Zoe Bear
Last update: 1970-01-01
제1화 그날 골목은 잠잠했다
- 세상에는 말이야, 시간 지나면 다 잊혀지는 상처도 있지만
- 평생 못 잊는 상처도 있더라.
- 민소희는 그걸 너무 일찍, 너무 뼈저리게 배웠다.
- 늦가을 서울, 달동네 골목은 온통 축축한 냄새였다. 비 갠 지 얼마 안 돼서 바닥은 질퍽거렸고, 흐린 하늘은 뭔가 답답하게 사람 가슴을 눌렀다.
- “고모…… 제발요……”
- 소희의 목소리는 이미 쉰 지 오래였다. 눈두덩은 퉁퉁 부어서 제대로 뜨기도 어려웠다.
- 그런데도 그녀는 고모의 치맛자락을 꼭 붙잡고 늘어졌다.
- “제가 진짜 열심히 할게요. 밥도 적게 먹고, 말도 잘 들을게요. 제발……”
- 하지만 고모의 눈빛은 싸늘했다. 마치 자기 발에 달라붙은 벌레를 보는 듯한, 그런 표정이었다.
- “시끄럽다고!”
- 고모가 손을 확 뿌리치자 소희는 그대로 축축한 시멘트 바닥에 나뒹굴었다. 손바닥이 따갑게 찢어졌다.
- “지금 와서 엄살이야? 먹여주고 재워준 것만 고맙게 알아야지.”
- 소희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팠다. 손바닥도, 무릎도, 가슴도. 그런데 그 아픔보다 더 견디기 힘든 건 고모의 그 무심한 눈빛이었다.
- 그녀는 부모님을 잃은 뒤로 친척집을 전전했다. 새벽같이 일어나 집안일을 도우면서도 ‘가족’이라는 이유로 버텨왔다.
- 그런데 그 믿음이 지금, 이렇게 와르르 무너지고 있었다.
- 골목 어귀에 검은 승합차가 조용히 멎었다. 문이 열리면서 덩치 큰 남자들이 하나둘 내렸다.
- 소희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 본능이 말해주고 있었다. 저 차만은 타면 안 된다고. 지금 당장 도망쳐야 한다고.
- “저 아이 맞나?”
- 남자 중 한 명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 고모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그년이야.”
- 그 순간, 소희는 모든 걸 깨달았다. 아니, 깨닫고 싶지 않았지만 현실은 너무 냉혹했다.
- “싫어요! 저 안 가요!”
- 소희는 벌떡 일어나 뒷걸음질 쳤다.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그런데 고모는 그저 팔짱을 낀 채 멀뚱멀뚱 서 있을 뿐이었다.
-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소희는 돌아서서 힘껏 달렸다.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도와달라고 소리쳤다. 그런데 낡은 판자집들은 모두 굳게 닫혀 있었다.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창문 하나 열리지 않았다.
- 곧 등이 확 잡혔다.
- “악! 놔요!”
-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 열세 살짜리 소녀가 건장한 어른들을 따돌리기는커녕, 버둥거릴 틈도 없었다.
- 철컥. 차 문이 닫혔다. 눈을 가리고 손발을 묶었다. 차는 어둠 속으로 미끄러지듯 떠났다.
- 소희는 알지 못했다. 자신이 어디로 끌려가는지, 어떤 지옥이 기다리고 있는지.
유료회차
결제 방식을 선택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