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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 히터가 풀가동된 차 안이었지만, 심장은 얼어붙을 듯 차가웠다. 멀어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쫓던 내 시선이 대시보드 위 유리병에 멎었다. 종이 별이 절반쯤 담긴 병을 보자, 기억은 잔인하게도 1년 전 그날로 거슬러 올라갔다.
  • 그날도 오늘처럼 눈이 내리는 겨울이었다. 10년을 사랑한 강지후와 설레는 마음으로 결혼을 준비하던 그때, 그는 내 가족을 차로 쳐 죽였다. 영안실의 서늘한 공기 속에서 부모님의 시신을 마주한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가슴을 쥐어뜯으며 울부짖었다.
  • 강지후는 병원 앞 눈밭에 무릎을 꿇었다. 입술이 터지도록 깨물며 그를 향한 증오를 불태웠지만, 그는 눈이 녹아 물이 되고 다시 얼음이 되어 몸을 짓누르는 사흘 밤낮 동안 그 자리를 지켰다. 결국 그 비겁한 정성에 마음이 약해진 나는 ‘나를 지켜달라’는 약속을 대가로 그를 받아내고 말았다.
  • 그해 크리스마스, 내 소원을 들어주겠다며 그는 눈보라를 뚫고 산에 올라가 직접 트리를 베어 왔다. 동상에 걸려 짓무른 그의 손을 보며 나는 애틋함에 젖어 속삭였다.
  • “이 병 속의 별 하나하나가, 네가 나한테 잘해준 증거야.”
  • 하지만 내게 그토록 소중했던 10년의 증거들은 진실을 마주한 순간 처참히 오물로 변해버렸다.
  • 나는 가속 페달을 밟아 교외의 묘지로 향했다. 부모님의 묘비 앞에 서자 자애로운 두 분의 눈빛이 비수가 되어 심장을 찔렀다. 단지 한유라를 재벌가에 보내기 위해 내 부모를 죽였다니.
  • 나는 묘비 앞 차가운 바닥에 이마를 짓찧으며 절을 올렸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성진 그룹의 차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가기도 전에, 낮고 서늘한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 “한유라는 사기꾼이에요. 당신의 배경과 재산만 노리고 접근한 거라고요.”
  •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수화기 너머에서 헛웃음 섞인 비웃음이 들려왔다.
  • “그래서요? 내가 그런 시시한 정보조차 모르고 그 여자를 곁에 뒀을 거라 생각합니까?”
  • 예상치 못한 여유로운 반응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는 이미 모든 것을 꿰뚫고 있었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마지막 패를 던졌다.
  • “……그럼 선택하시죠. 천박한 사기꾼을 아내로 맞이하시겠어요? 아니면 수백억 대 자산과 당신들이 그토록 노리는 상업 지구 부지를 손에 쥔 저를 아내로 맞이하시겠어요?”
  •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차현우가 흥미롭다는 듯 나른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 안에는 사람을 짓누르는 기묘한 유희가 섞여 있었다.
  • “그렇지. 은서윤 씨, 장사꾼이라면 이 정도 성의는 보여야 대화가 통하지. 하루만 기다려. 만족할 만한 답을 줄 테니까.”
  • 뚝, 전화가 끊겼다. 참았던 숨이 터져 나오며 긴장이 풀린 몸이 눈밭에 무너져 내렸다. 그때, 한유라의 SNS 알림이 울렸다.
  • 홀린 듯 들어간 영상 속에서 그녀는 행복한 신부처럼 웃으며 드레스를 고르고 있었다. 화면 끝에 스치듯 포착된 남자의 팔목. 손등의 동상 자국, 그리고 오늘 아침 내가 직접 붙여준 엉성한 반창고.
  • 심장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내 앞에서는 세상에 둘도 없는 순정남을 연기하던 남자가, 뒤에서는 내 부모를 죽인 여자와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부모님의 영정 사진을 똑바로 응시하며 차갑게 뇌뱉었다.
  • “반드시 복수할게요. 그 대가가 또 다른 불지옥이라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