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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첫사랑

마지막 첫사랑

일월생

Last update: 2022-04-07

화1 제1화 우리 헤어지자

  • 
  • # 01. 우리 헤어지자
  • 인터넷에는 올라와 있지 않지만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 맛집이라 정평 나 있는 식당 안, 남자와 여자가 앉아있었다.
  • 둘은 누가 봐도 연인이었다. 그것도 상당히 오래된.
  • 연애 초반의 풋풋함은 사라지고 둘 사이에는 이제 익숙함이 자리했다.
  • 쉽게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를 가진 그들이었기에 그들이 있는 동네 삼겹살집은 마치 유명 정육 식당처럼 느껴졌다.
  • “나 할 얘기 있어.”
  • 정후가 지현에게 마지막 고기 한 점을 양보했고 자신의 앞접시에 놓인 고기를 뚫어지게 보던 지현은 고기를 집지 않은 채 얘기를 꺼냈다.
  • “무슨 얘기?”
  • 지현의 맞은편에 앉은 정후는 무슨 얘기냐며 미소를 지었다.
  • 쭉 뻗은 콧대, 붉은 입술, 쌍꺼풀이 짙지만 부담스럽지는 않은 눈매까지, 누가 봐도 감탄이 나올 만큼 잘생긴 외모로 웃기까지 하니 더 잘생겼다.
  • “우리..”
  • 정후의 웃는 얼굴을 보니 말문이 턱턱 막히지만 이제는 진짜 얘기해야 할 때였다.
  • 정해져있는 끝을 언제까지고 계속 미룰 수는 없으니까.
  • 평소답지 않게 진지해지는 지현의 표정에 정후도 그제서야 뭔가 잘못돼가고 있음을 느꼈다.
  • “우리 뭐?”
  • “우리 그만하자 정후야.”
  •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에 정후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 이야기를 잘못 들은 건 아닌지 멀쩡한 귀를 손으로 쓸어내려 보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지금 이 말은 헤어지자는 말이지.
  • “무슨 소리야 그게.”
  • 애써 모른 척하며 되물었지만 지현의 표정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지현의 표정을 확인하는 정후의 목이 메온다.
  • “말 그대로야. 우리 헤어지자.”
  •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쉽다는 듯 지현이 못을 박듯 정후의 귀에 관계의 끝을 선고했다.
  • 지금껏 단 한 번도 생각한 적 없던 이별이었다.
  • 싸운 적은 있었지만 한 번도 우리의 이별을 생각하지는 않았다.
  • 왜, 왜, 도대체 왜 너는 이별을 말하고 있는 거야.
  • “지현아 미안한데 나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안 돼. 내가 너 뭐 서운하게 한거 있어?”
  • 아무리 잘 생각해 봐도 우리가 헤어질만한 이유를 납득 못하겠다는 듯 정후가 눈을 찡그리며 되물었다.
  • 그래 너는 항상 하나만 생각하는 사람이었지.
  • “내가 요새 시즌 중이라 바빠서 그래? 나 곧 시즌 끝나니까 끝나면 우리 같이-”
  • “정후야.”
  • 지현의 한마디에 정후의 입이 다물어졌다.
  • 지현의 눈을 본 순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 자신이 아는 지현이 저런 눈동자를 할 때는 그 어떤 말도 소용이 없는 상태였다.
  • 이미 혼자 마음 정리를 다 하고 결정을 다 내리고 통보를 할 때의 눈빛.
  • 저릿해진 심장으로 인해 속이 울렁거려왔다.
  • “우리가 왜, 우리가 어떻게 헤어져.”
  • 정후의 동공이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사방으로 흔들렸다.
  • 어떻게 해서든 지금 지현을 잡아야 다음을 얘기할 수 있는데 지현이 잡혀주지를 않았다.
  • 항상 자신을 귀엽게 바라보던 눈빛이 텅 비어있었다.
  • 네가 왜 날 그런 눈으로 봐.
  • 평소와 다르게 불안함을 온몸으로 표출하는 정후의 모습에 지현의 마음이 살짝 흔들리려 했지만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굳게 먹어야 했다.
  • 지금 이 말을 어떻게 했는데 고작 이런 데서 흔들리면 안 돼.
  • “미안해.”
  • 지현이 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았다.
  • “나 너 없이 못 살아.”
  • “잠깐일 거야.”
  • 태연한 얼굴로 대답하는 지현을 보며 정후는 무릎이라도 꿇고 싶은 심정이었다.
  • 다음이 보이지 않는다.
  • 감정들이 뒤엉켜 결국 정후의 눈에 옅은 눈물이 고였다.
  • “나 진짜 못 살아 지현아.”
  • 한번 고인 눈물 때문에 목소리까지 울림이 짙어졌다.
  • “나 보란 듯이 잘 살아 정후야. 내가 뭐라고 네가 못 살아.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운동도 열심히 잘 하고, 가족들 사랑도 듬뿍 받으면서 그렇게 살다가 더 좋은 여자 만나.”
  • “너 어떻게 나한테 다른 여자 만나라는 말을 해.”
  • 지현의 말에 고조가 없어서 더 섬뜩했다.
  • 차라리 화를 냈다면 뭐가 불만이라고 말을 한다면 내가 그렇게 바꾸겠다고 얘기라도 할 텐데 지현의 목소리에는 감정이 없었다.
  • 내 잘못이 뭐였길래 네가 그렇게 마음을 굳게 닫아버린 걸까.
  • “나 너랑 못 헤어져.”
  • 정후의 말에 대답하려던 때 정후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 살짝 보이는 휴대폰 액정을 보니 팀 코칭스태프인 듯했다.
  • 항상 바쁜 임정후는 오늘도 바쁘다.
  • 정후는 휴대폰 액정과 나를 번갈아보며 난처한 듯 보였다.
  • 받으라는 고갯짓을 하니 그제서야 전화를 받는 정후였다,
  • “여보세요.”
  • 전화를 받은 상대의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정후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지현에게도 전화의 내용이 다 들려왔다.
  • 보아하니 오늘 훈련을 빼먹고 온 모양이었다. 훈련 없는 날이라더니 거짓말이었던 거지.
  • “지금 당장은 못 가요.”
  • 전화하는 내용을 들어보니 꽤 중요한 훈련인 것 같았다.
  • 하나만 아는 임정후는 자기가 이럴수록 내 마음이 더 불편해진다는 걸 모른다.
  • 전화를 붙들고 있는 정후에게 말을 했다.
  • “가봐.”
  • 웬만하면 자리를 지키고 있을 정후였지만 오늘 감독님의 심기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자신 혼자 깨지고 끝나는 것이 아니었기에 정후는 의자에서 떨어지지 않는 엉덩이를 겨우 일으켰다.
  •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정후가 얼굴을 쓸어내렸다.
  • “하필 상황이 이래서 지금은 그냥 가는데 이따 다시 얘기해.”
  • 이별을 고한 지현의 손을 꼭 붙들고 애처롭게 말을 하는 정후였다.
  • 말이 끝난 뒤에도 몇 초간 지현의 손을 놓지 못했다.
  • 지금껏 정후의 눈을 피하지 않으며 말을 해왔던 지현이었지만 지금만큼은 정후의 눈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 정후가 나간 자리 지현의 앞에는 정후가 양보한 고기 한점만이 남아있었다.
  • 이런 거 남겨주지 말란 말이야, 바보 같은 임정후.
  • **
  • 최근 팀의 경기력 난조와 불성실한 태도로 감독님의 심기가 많이 어지러운 상태였다.
  • 평소 같으면 성실하게 훈련에 참여했을 테지만 오늘은 지현을 꼭 만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그래서 빠지지도 않던 훈련을 처음 빠진 상태였는데 하필 감독님이 오실 줄이야.
  • 어렵게 만난 지현은 이별을 고하지를 않나.
  • 정말 최악의 날이다.
  • 훈련을 마치니 새벽 한시였다.
  • 평소 지현이 자는 시간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정후는 지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 하지만 오랜 연결음 끝에 돌아오는 건 낯선 기계음 소리뿐이었다.
  • 세 번을 걸고 다섯 번을 걸어도 지현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 전화를 받지 않는 지현, 이것은 정후에게 꽤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 그래 오늘은 여러모로 안 좋은 상황이었으니 지현이 전화를 안 받을 수도 있겠다 싶어 다음날에도 다다음날에도 꾸준하게 전화를 해봤지만 들려오는 건 똑같은 기계음뿐이었다.
  • 지현의 집 앞에 찾아가도 지현은 절대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 ‘정말 나랑 헤어지겠다는 거야?’
  • 지현의 이별 통보가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 지현이 그런 말을 농담 삼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애써 외면했던 거였는데 현실은 외면한다고 달라지는 게 아니었다.
  • 너와 나의 다음이 없다.
  • 지현과 함께 보내기 위해 기다렸던 주말이었지만 지금 그의 곁에는 그녀가 없었다.
  • 내가 왜 운동을 열심히 하는데,
  • 내가 왜 잘 살아보려 애쓰는데,
  • 전부 다 너한테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였어.
  • 그걸 모를까 네가.
  • 알면서도 떠난 거라면 참 밉다.
  • 지금 어딨니, 내 사랑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