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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 성진우는 내 얼굴에 구멍이라도 낼 기세로 나를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 곁으로 늘어뜨린 그의 주먹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꽉 맞물렸다, 터질 듯 불거진 손등 위로는 푸른 힘줄이 그가 임계치에 다다른 분노를 억누르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 “강해수, 도대체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 거야?”
  • 그가 어금니 사이로 문장을 짓씹으며 낫게 으르렁거렸다.
  • “무슨 짓인지, 거기 아주 친절하게 적어뒀잖아?”
  • 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자백서’를 무심하게 턱짓으로 가라켰다.
  • “죗값을 치르려는 거야. 네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강이레를 내가 죽였으니까. 난 천벌을 받아 마땅한 년이고, 지금 당장이라도 감옥 구석에 처박혀야 하잖아.”
  • 나의 이 오만하고도 무미건조한 태도가 그의 이성을 끊어놓았다.
  • 쾅!
  • 그가 거칠게 탁자를 내리쳤다. 자백서가 허공으로 치솟았다가, 마치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팔랑이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 “네 그 역겨운 거짓말을 내가 믿을 것 같아? 3년 전 경찰 조사에서 이미 결론 난 일이야! 이레는 우울증으로 자살한 거고, 너랑은 상관없다고 판결 났단 말이야! 그런데 대체 왜 이제 와서 이런 추악한 쇼를 벌이는 건데!”
  • “당신 보라고.”
  • 나는 생글거리며 웃으며 그를 응시했다.
  • “알잖아, 넌 경찰 따위 안 믿는 거. 오로지 네 오만한 확신만 믿지. 3년 내내 내가 그 애를 죽였다고 저주하며 살았으면서, 이제 와서 왜 결백한 척 위선이야? 자, 내가 그 죄를 기꺼이 뒤집어써 주겠다는데 뭐가 문제야? 네 손으로 직접 나를 끌고 가서 감옥에 처넣어. 그래야…… 네 속이 시원할 거 아냐.”
  • 내 말은 그의 가슴 속 깊은 곳에 숨겨진 잔인한 욕망을 정확히 꿰뚫었다. 분노로 이글거리던 그의 눈빛이 일순간 처참하게 볼품없이 무너져 내렸다. 성진우는 내가 대체 무슨 속셈으로 이런 미친 짓을 벌이는 건지 가늠하려는 듯,한참이나 내 안색을 살폈다..
  • 옆에 있던 서유라는 이미 사색이 된 채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 “진우 씨…… 언니가 어디 아픈 게 아닐까요? 일단 병원부터 데려가야 할 것 같은데….”
  • 참으로 가증스러운 청순가련 연기였다. 나는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를 훑어 내렸다.
  •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닐 텐데? 아직 이 집 안방엔 내가 앉아있는데, 벌써 안주인 노릇이라도 하고 싶은 거야?”
  • 유라의 눈시울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그녀는 억울하다는 듯 아랫입술을 깨물며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한 눈물을 머금었다. 저 가련한 모습은 남자들의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최고의 무기다. 아니나 다를까, 성진우는 즉시 유라를 제 등 뒤로 숨기며 내게 호통을 쳤다.
  • “강해수! 할 말 있으면 나한테 해. 엄한 사람 잡지 말고!”
  • “잡아?”
  • 나는 세상에서 가장 웃긴 농담이라도 들은 것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 “성진우, 불륜녀를 당당히 집 안까지 들이고서 나보고 웃어주길 바라? 잊었나 본데, 법적으로 네 아내는 나야.”
  • “너―!”
  • “그만해.”
  • 나는 웃음기를 싹 거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위장을 짓누르는 격통에 순간 눈앞이 아득해졌지만, 쓰러지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버텼다.
  • “잔말 말고 갈 거야, 말 거야? 안 가겠다면 지금 당장 강이레 유골함을 창밖으로 던져버릴 거야. 마지막 모습은커녕 뼛가루조차 구경 못 하게 만들어줄 테니까 .”
  • “네가 감히!”
  • “내가 못 할 것 같아?”
  • 잡아먹을 듯한 그의 시선에도 나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공기는 터질 듯 팽팽하게 맞섰다.
  • 결국, 먼저 꺾인 쪽은 그였다.
  • “좋아.”
  • 그는 어금니를 짓씹으며 그 한마디를 내뱉었다.
  • “가주지. 네가 대체 어디까지 미쳐 날뛰나 내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겠어.”
  • 그는 유라를 향해 고개를 돌려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 “여기서 기다려. 금방 올게.”
  • 유라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다시 겁에 질린 듯 나를 훔쳐보고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 경찰서로 향하는 차 안의 공기는 숨이 막힐 정도로 무거웠다. 성진우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운전대만 잡고 있었고 날 선 옆얼굴은 차갑게 벼려진 칼날처럼 경직되어 있었다.
  • 나는 차창에 머리를 기댄 채 빠르게 뒤로 밀려나는 거리의 풍경을 응시했다. 위장을 뒤트는 통증은 쉼 없이 밀려오는 파도 같았다.나는 가방 안에서 진통제 한 알을 더듬어 꺼내 물도 없이 그대로 삼켰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약기운이 돌며 통증이 잦아들었다. 고개를 돌려 그의 서늘한 옆모습을 보며 응시하며 내가 먼저 정적을 깨뜨렸다.
  • “성진우, 내가 왜 갑자기 마음을 바꿔서 ‘죗값’을 치르겠다고 하는 건지 궁금하지 않아?”
  • 그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코웃음을 쳤다.
  • “뻔하잖아. 이딴 식으로 내 동정심이라도 유발해서 이혼만은 막아보겠다는 거겠지. 강해수, 네 수법은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천박해.”
  • “그래?”
  • 나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을 뿐,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동정심? 아니, 그딴 건 필요 없어. 난 그저 네 오만한 심장에, 평생 아물지 않을 선명한 칼자국 하나를 새겨주고 싶을 뿐이야.
  • 경찰서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망설임 없이 민원실로 향했다.
  • “자수하러 왔습니다.”
  • 접수창구의 젊은 형사가 당황한 듯 나를 올려다보았다. 이내 내 뒤를 뒤따라 성진우를 발견하고는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성진우 대표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 3년 전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인 모양이다. 진우의 안색은 험악해졌지만,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미리 출력해온 자백서를 책상 위에 내던지면 또박또박 내뱉었다..
  • “3년 전 강이레의 죽음은 사고도, 자살도 아니었어요. 내가, 내가 그 애를 사지로 몰아넣었습니다. 정식으로 자수할게요.”
  • 형사는 자백서를 읽어 내려갈수록 미간을 처참하게 찌푸렸다. 그는 나를 보다가, 얼굴이 잿빛으로 변한 성진우를 번갈아 살피며 혼란스러워했다.
  • “강해수 씨, 이게… 정말 사실입니까? 하지만 그 사건은 이미 종결됐고, 모든 증거가 자살임을 입증하고 있었는데….”
  • “증거 따위,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는 거니까요.”
  • 나는 그의 말을 가차 없이 끊고 눈물 섞인 열연을 시작했다.
  • 강이레가 성진우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에 눈이 멀어 얼마나 원한을 품었는지, 얼마나 잔인한 말로 그 애의 정신을 갉아먹었는지, 다른 남자와 부적절한 관계라는 가짜 사진을 만들어 어떻게 그 애를 벼랑 끝으로 등 떠밀어냈는지….
  • 그리고 결혼식 전날 밤, 마지막으로 보낸 메시지 내용까지 낱낱이 읊었다.
  • ‘내 결혼식 망칠 생각 마, 감히 기어들어 왔다간, 네 인생 바닥까지 처박히게 해줄 테니까.’
  • 나는 마치 질투에 미쳐버린 악녀라도 된 양, 생생하고 처절하게 이야기를 지어냈다. 등 뒤에서 뿜어져 나오는 성진우의 살기가 점점 더 거세게 몰아치는 게 느껴졌다.
  • 그의 호흡이 거칠게 박자를 잃고 일렁였다. 마치 상처 입고 폭주하기 직전의 짐승처럼.
  • 나는 알고 있다. 내가 늘어놓은 이‘디테일’ 중 상당수는 그가 몰랐던 내용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는 이 모든 것을 믿을 것이다. 그의 마음속에서 나는 이미 그런 짓을 하고도 남을 잔인한 악녀였으니까.
  • 형사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다가, 식은땀을 흘리며 조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 “강해수 씨, 말씀하신 내용에 대한 증거가 있습니까? 사진이나 메시지 기록 같은 거요.”
  • 기다리던 질문이었다. 나는 세상이 무너진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눈물을 떨궜다.
  • “없어요…… 하나도 남지 않았어요. 그때 너무 겁이 나서, 사건 직후에 전부 없애버렸거든요.”
  • “그럼…… 입증해 줄 증인은요?”
  • 나는 성진우를 돌아보며 처연하게 웃어 보였다.
  • “여기 있잖아요. 이 사람이 내 증인이에요. 내가 강이레를 얼마나 증오했는지, 그 애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길 얼마나 갈망했는지 이 사람이 제일 잘 알거든요.”
  • 모든 시선이 성진우에게 쏠렸다. 그는 입술을 일자로 굳게 다문 채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 “대표님, 이건….”
  • “미친 여자입니다.”
  • 성진우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형편없이 갈라져 있었다.
  • “전부 지어낸 망상일 뿐입니다.”
  • “미치지 않았어!”
  • 나는 비명을 지르며 일어나 그를 가리켰다.
  • “당신, 단 한 번도 나를 의심하지 않았다고 맹세할 수 있어? 마음속으론 이미 나를 살인자로 낙인찍었으면서! 성진우, 내 눈 똑바로 보고 말해!”
  • 그가 나를 응시했다. 그 깊은 눈동자 속에는 분노와 증오, 그리고 내가 헤집어 놓은 지독한 혼란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 결국 이 소동은 ‘증거 불충분’으로 인한 입건 불가 판정을 받으며, 흔하디흔한 치정 싸움으로 치부된 채 막을 내렸다. 담당 형사는 피곤하다는 얼굴로 경찰은 집에 가서좋게 대화나 나누라며 우리를 경찰서 밖으로 우리를 밀어냈다.
  • 경찰서를 나서자 빗줄기가 한증 더욱 굵어져 있었다. 성진우가 내 손목을 낚아챘다. 뼈가 으스러질 듯한 악력이었다.
  • “강해수, 도대체 원하는 게 뭐야!”
  • 그가 포효하듯 내뱉었다.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흐르는 빗물이 그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 손목이 끊어질 듯 아팠고, 위장은 뒤집어질 듯 요동쳤다. 비릿한 혈향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나는 그것을 억지로 삼키며, 그의 앞에서 세상에서 가장 찬란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 “아무것도. 그냥 네가 신봉하는 그 ‘진실’이 얼마나 가당치도 않은 것인지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야.”
  • 나는 비틀거리며 말을 이었다.
  • “네 손으로 나를 경찰서에 끌고 와서, 다시 네 입으로 내 ‘죄’를 부인하는 기분이 어때? 성진우, 네 꼴이…… 꼭 삼류 비극의 광대 같지 않아?”
  • 말을 마친 순간, 나는 참지 못하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 길가로 달려가 가로수를 붙잡고 격렬하게 구토했다.
  • 쏟아져 나온 것은 음식물이 아니었다. 울컥, 비릿한 혈향과 함께 터져 나온 것은 바닥을 붉게 물들이는 선명한 핏덩이였다.
  • 축축한 보도블록 위로 튄 선혈이 빗물에 씻겨 내려가며 지독하게 선명한 선홍빛으로 번져나갔다.
  • 성진우는 이 광경에 완전히 넋을 잃은 듯했다. 제자리에서 굳어버린 그의 눈동자에 처음으로 경악과 당혹감이 서렸다.
  • “강해수!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