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 강준우가 그 말을 끊었다. 말투에는 불쾌함이 가득했다. “선생님, 저 지금 바쁩니다. 치료 방안은 병원에서 정하세요. 제일 좋은 약 쓰시고요. 제 의견 묻지 않으셔도 됩니다.”
- 수화기 너머로 강지후가 괴로워하며 앓는 소리가 들렸다. 강준우는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자, 우리 아가, 약 한 입만 더 먹자.” 그러고는 다시 의사에게 덧붙였다. “잘 보살펴 주세요. 나중에 보겠습니다.”
- 전화가 끊긴 뒤 들려오는 무미건조한 신호음을 나는 똑똑히 들었다. 의사는 동정 어린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아무 표정 없이 누워 있었다. 마음이 죽으면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 그 뒤로 시작된 항암 치료는 수술보다 훨씬 고통스러웠다.
- 구토와 탈모, 온몸을 찢는 듯한 통증 속에 매일 저승 문턱을 오갔다.
- 나는 병상에서 몸을 웅크린 채 뼈만 남을 정도로 말라갔다. 넉넉했던 환자복은 이제 포대자루처럼 헐거웠다.
- 강준우는 결국 한서희를 집으로 데려갔다.
- 그가 SNS에 올린 사진 속에는 부엌 일을 하는 한서희의 뒷모습과 함께 “집에 드디어 사람 사는 온기가 난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내가 5년 동안 키운 튤립은 베란다 구석에 처박혀 시들어 있었고, 내가 직접 고른 커튼은 레이스로 바뀌어 있었다.
- 책장에 아껴둔 절판 번역본 세트마저 커피 얼룩이 묻은 채 거실 테이블 옆에 뒹굴고 있었다. 내 추억이 서린 집은 그들에 의해 점령되었고, 내가 소중히 여기던 것들은 짓밟혔다.
- 반항하고 싶었지만, 항암 치료의 고통 때문에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다.
- 이윽고 두 번째 수술 날이 왔다. 수술실로 실려 가는 내내 식은땀이 흘렀고 의식은 흐릿했다. 간호사의 다급한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혈압 떨어집니다. 심박수 140, 수혈 준비하세요!”
- 의사는 땀을 닦으며 조수에게 소리쳤다. “강준우 씨한테 다시 전화해 봐요! 당장 오라고 하세요! 수술 중 대량 출혈입니다. 보호자 서명이 있어야 수술 범위를 넓힐 수 있어요!”
- 조수가 허둥지둥 전화를 걸었지만 들려오는 건 기계음뿐이었다.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음성 사서함으로……”
- “젠장, 대체 몇 번을 걸어야 하는 거야!”
- 나는 눈을 반쯤 뜬 채 흐릿한 시야 속에서 의사의 흰 가운에 번진 붉은 피를 보았다. 아, 정말 마지막이구나.
- 얼마나 버텼을까, 간호사가 뛰어 들어왔다. “선생님! 보호자분 소아과 외래 쪽에 계신 거 봤어요!” 의사가 눈을 번쩍이며 달려 나갔다. “은채 씨 보호자분, 고은채 씨 보호자분 맞으시죠? 지금 위급합니다. 서명하셔야 해요!”
- “잠깐만요, 은채 일은 나중에 하죠.” 복도 너머로 강준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잘 오셨네요. 저희 지후 검사 결과 좀 봐주세요. 또 열이 나는데 빈혈 기운도 있다네요. 더 자세한 검사가 필요할까요?”
- 의사는 결국 참지 못하고 강준우의 멱살을 잡았다. “당신 제정신입니까? 고은채 씨는 지금 생사의 갈림길에 있다고요! 오늘을 못 넘길지도 모른단 말입니다!”
- 강준우는 멍해졌다. 의사는 계속해서 고함을 질렀다. “고은채 환자분은 이미 간암 말기라고요! 지금 수술실에서 목숨 걸고 버티고 있는데, 당신에겐 고은채 씨 목숨이 보이지도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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