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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 서이수는 '내연녀'나 '상간녀'라는 말을 세상에서 가장 혐오했다.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가 불륜을 저질렀고, 무엇보다 그녀 자신이 아버지의 내연녀 때문에 집안에서 쫓겨난 전직이 있었으니까.
  •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이수의 안색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 하지만 내가 곧 죽을 거라는 사실이 떠올랐는지, 그녀는 다시 기세등등하게 진단서를 흔들어댔다.
  • "지금 이 순간을 마음껏 즐겨둬. 죽은 사람이 무슨 수로 산 사람을 이기겠어?"
  • 그녀가 비릿한 비웃음을 흘렸다..
  • "내 조언인데, 추하게 버티지 말고 죽기 전에 이혼해. 태준 오빠를 홀아비로 만들어서 가문에 민폐 끼치지 말고."
  •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카메라 플래시를 내 눈앞에 터뜨렸다. 시야가 하얗게 멀었다.
  • "강 사모님은 체면이 목숨보다 중요하다면서? 당신이 죽고 나면, 설마 태준 오빠를 평생 혼자 살게 할 건 아니지?"
  • 비열하게 입꼬리를 올린 그녀가 독기를 뿜어냈다.
  • "참, 지훈이가 엄마 죽는다고 슬퍼나 할까? 내 생각엔…… 아니. 네 금쪽같은 아들, 어릴 때부터 네 얼굴 몇 번 보지도 못했잖아."
  • 그 말을 듣는 순간, 위장이 뒤틀리는 듯한 격렬한 경련이 일었다.
  • 과거, 강태준이 나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집안의 거센 압박을 견뎌야 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우리 아이를 시아버지인 강 회장에게 인질로 넘겨줄 줄은 꿈에도 몰랐다.
  • 아이가 태어나 첫 울음을 터뜨린 그 찰나부터, 아이는 내게서 지워졌다. 얼굴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는데, 간호사는 차갑게 아이를 가로채 갔다.
  • 나는 미친 듯이 울부짖었다. 내 손으로 직접 꾸민 아기방을 때 부수며 강태준에게 매달렸다. 하지만 그는 감정 없는 기계처럼 나를 안고 건조하게 읊조릴 뿐이었다.
  • "이게 마지막 조건이었어, 연우야. 네 집안 배경 미천한 걸 누구 탓하겠어? 애를 위해서라도 이게 최선이야."
  • 텅 빈 배를 움켜쥐고 나는 온몸을 떨었다.
  •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 강 회장의 저택으로 달려가 아이를 한 번만 안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나를 맞이한 건 오만한 눈빛의 강 회장이었다.
  • 그는 지팡이를 짚은 채 발밑의 오물을 보는 듯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봤다.
  • "언론에 자네의 이런 천박한 꼴이 찍힌다면, 지훈이가 장차 받을 비웃음을 자네가 감당할 수 있겠나?"
  • "지훈이……? 아이 이름이 지훈이군요! 제발, 제발 한 번만 보게 해주세요!"
  • 눈물과 빗물이 뒤섞여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간절하게 그를 매달리며 바라봤다.
  • "지훈이는 KH 그룹의 차기 후계자다. 너 같은 존재가 아이의 오점이 되는 걸 원치 않아. 보고 싶으면 자격부터 갖춰오든가."
  • 뒤늦게 나타난 강태준이 나를 거칠게 끌어당기며 차갑게 못 박았다.
  • "그만해. 나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이게 우리가 파문당하지 않고 '가족'으로 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니.
  • 그날 이후, 나는 기계적으로 명품 브랜드를 외우고, 숨 막히는 드레스를 입으며 머리카락 한 올까지 완벽하게 가꿨다. 강태준은 나를 전시용 인형처럼 파티에 데리고 다녔다.
  • 사람들은 모두 그의 안목을 칭찬했다. 길거리의 신데렐라를 데려다가 하류층의 흔적 하나 없이 완벽하게"세공"해냈다고.
  • 하지만 거울 속의 나는 그저 낯선 이방인이었다. 강태준과 나 사이의 골은 점점 깊어졌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내 모든 노력은 오직 하나, 강 씨 가문 사람들에게 나도 아이를 키울 자격이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함이었으니까.
  • 하지만 현실은 나에게 가장 처참한 패배를 안겨주었다.그들은 처음부터 지훈이를 내게 돌려줄 생각이 없었다.
  • 넋이 나간 채 강태준에게 위로라도 받고 싶어 그를 찾아 헤맸을 때, 나는 그의 첫사랑 서이수가 귀국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 강태준에게 문자를 보냈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대신 서이수의 SNS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 [컵라면 한 봉지만 주면 전구도 무료로 갈아주는 기사가 생기네요! ]
  • 나의 간절했던 기다림은 한순간에 우스운 꼴이 되어버렸다
  • 당장 전화를 걸어당장 전화를 걸어 그를 추궁하자, 강태준은 그는 그날 밤 집으로 달려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 "연우야, 내 마음 알잖아. 난 너밖에 없어. 정말 바람 같은 거 아니야."
  • 하지만 그 후로 서이수가 나타나는 횟수는 점점 늘어났고, 강태준의 해명은 갈수록 공허해졌다. 그리고 결국, 그는 인내심이 바닥났다는 듯 내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 "내가 그 애랑 뭘 하든, KH 그룹 사모님 자리에 앉아 있는 건 결국 너잖아. 그 화려한 껍데기를 가졌으면 됐지, 뭘 더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