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 강태준은 단단히 화가 난 듯했다.
- 그는 내가 높은 힐을 신고 위태롭게 비틀거리는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 나를 침실까지 막무가내로 끌고 갔다. 거의 내동댕이치듯 침대 위로 던져진 직후, 그가 내 손목을 결박하며 눌러왔다. 훅 끼치는 술 냄새와 함께 그의 입술이 내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 피하려고 고개를 돌렸지만, 뼛속 마디마디에서 차오르는 통증이 나를 그 자리에 못 박았다. 미약한 몸부림은 오히려 그를 자극하는 비뚤어진 흥분제처럼 비칠 뿐이었다.
- "왜, 취해서 나를 서이수로 착각하기라도 한 거야?"
- 그는 대답 대신 더 악착같이 입을 맞추며 치마 안쪽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 나는 참지 못하고 그의 아랫입술을 사정없이 깨물었다.
- 비릿한 피 냄새가 입안 가득 퍼지자, 그는 통증에 미간을 찌푸리며 잠시 물러났다.
-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입술을 거칠게 닦아냈다.
- "고작 반지 하나 때문에 이렇게 구역질 나게 굴 거야? 내가 졌으니까. 돌려줄게.그러니까 그만해"
- "이연우."
- 그가 손가락으로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내더니, 갑자기 실성한 사람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 "난 정말 사랑해……."
- "강태준! 할 거면 하고, 안 할 거면 당장 꺼져."
- 지독한 정적과 열기가 뒤섞인 끝에 절정에 다다른 순간, 그는 나를 부서질 듯 껴안으며 내 어깨뼈 위에 새겨진 치자꽃 타투를 어루만졌다. 오직 그를 위해 새겼던 이제는 바래버린 그 흔적을
- "연우야, 난 역시 예전의 네가 좋아."
- 순간 온몸이 차갑게 굳어버렸다. 나를 이토록 처참하게 망가뜨린 건 당사자가, 이제 와서 예전의 나를 찾다니.
- 나는 그를 발로 차서 밀쳐냈다. 그가 닿았던 모든 곳이 징그럽고 역겨워 소름이 돋았다. 몸을 일으켜 욕실로 향하려는데, 그가 다시 내 손목을 붙잡았다.
- " 씻지 마. 우리…… 아이 다시 갖자."
- 나는 망설임 없이 그의 뺨을 후려쳤다.날카로운 파찰음이 방 안을 때렸다.
- "우리한테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죽은 우리 아이 기일에상간녀랑 시시덕거리며 불꽃놀이나 즐기던 당신이?"
- 나는 그를 죽일 듯이 쏘아보며, 그가 평소처럼 불같이 화를 내며 문을 박차고 나가버리길 기다렸다. 하지만 강태준은 예상과 달랐다. 그의 얼굴에는 난생처음 보는 공포가 서려 있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나를 품에 안았다.
- 순간 세상이 빙글빙글 돌며 그의 외침이 멀어졌다. 손을 들어 코끝을 만져보니, 손가락 사이로 뜨겁고 끈적한 액체가 쉴 새 없이 배어 나왔다.
- 피였다. 멈추지 않는 선혈이 하얀 시트 위로 무섭게 번져가고 있었다.
- ……
- 겨우 눈을 떴을 때, 침대 머리맡에 앉아 있는 건 뜻밖에도 서이수였다.
- "깼어? 거봐, 남의 남자 뺏으면 천벌 받는다니까. 암이라니, 너도 참 지독하게 운도 없지. 얼마나 남았대?."
- 째지는 듯한 목소리가 고막을 긁었다. 나는 멍한 정신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대체 무슨 근거로 내가 제 남자를 뺏었다고 믿는 걸까.
- 서이수와 나는 대학 동기였다. 하지만 그녀는 우리와 출발선부터 달랐다. 집안에서 건물 몇 채를 기부해 들어온 소위 말하는 '금수저'였으니까.
- 끼니를 때울 돈이 없어서 매일 편의점 빵으로 버티던 나를 보며, 그녀는 늘 가소롭다는 듯 내뱉곤 했다.
- "가슴도 빈약한 게 다이어트까지 해? 진짜 없어 보인다."
- 그녀에세 화를 내는 건 감정 낭비였다. 나는 그저 무미건조하게 설명했다.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려면 공강 시간을 아르바이트에 쏟아부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녀는 생글거리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 "한 달에 몇백만 원도 없는 집이 어딨어? 너 불쌍한 척 연기하는 거지?"
-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대였다. 나는 그저 그녀를 멀리하는 쪽을 택했다. 하지만 악연은 그때부터였다. 그녀를 찾아온 강태준과 마주치게 되었다.
- 강태준은 나에게 첫눈에 반했다. 옆 학교에 다니면서도 매일같이 찾아와 나와 밥을 먹었고, 온 세상이 다 알 정도로 요란하게 구애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우리 사이의 거대한 격차가 결국 비극이 씨앗이 될 것임을.
- 그럼에도 마음이 움직이는 건 찰나였다.
- 술집 아르바이트 중 질 나쁜 손님에게 끌려가던 나를 구하려다, 그는 갈비뼈 두 대가 부러졌다. 그제야 알았다. 그가 매일 밤 내가 일하는 가게 구석에 앉아 묵묵히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 그 무모한 진심 앞에 나는 결국 무너졌다.
- 우리가 사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서이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 "다들 우리 둘이 사귀는 줄 알았는데, 덕분에 나만 자유네. 잘해봐"
- 말과는 달리 그녀의 눈빛은 기괴할 정도로 번뜩였다. 저주에 가까운 확신이었다.
- "근데 말이야, 너희 둘 절대 오래 못 가."
- 유감스럽게도 그녀의 예상은 철저히 빗나갔다. 그녀가 해외여행을 떠났을 때 우린 약혼했고, 귀국했을 땐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 그녀가 방탕한 생활로 집안에서 쫓겨났을 때, 우리 아들이 태어났다.
- 나는 그녀의 아킬레스건이 어디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억지로 몸을 일으킨 내가 냉소를 머금고 쐐기를 박았다.
- "아무리 악다구니를 써봐도, 넌 지금 내 남편 주변이나 기웃거리는 저급한 상간녀일 뿐이잖아.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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