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 복순의 눈빛에 순간적인 동요가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녀는 갑자기 분노한 얼굴로 손을 휘둘러 이서준의 얼굴을 할퀴려 들었다. 이서준은 질려서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 복순은 또 금세 눈이 붉히더니,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사람이라도 된 듯 악에 받친 목소리로 이서준을 향해 소리쳤다.
- “내가 너희 수작 뻔히 알았다니까! 처음부터 돈 안 줄 생각이었지? 이제 와서 딴소리하면서 발 빼려는 거잖아! 봐! 어디 한번 실컷 봐봐!”
- 그렇게 소리친 복순은 품 안에서 서류를 꺼내더니 탁자 위에 거칠게 내리쳤다.
- "탁!"
- 밤새 내가 만들어낸 주민등록등본 사본이었다. 복순은 눈을 부릅뜬 채 이서준을 노려봤다.
- 이서준은 순간 기세에 눌린 듯 목을 움찔 움츠렸다. 그는 천천히 숨을 고른 뒤, 탁자 위의 서류를 집어 들어 한 장씩 넘겨보기 시작했다.
- 나는 그의 입꼬리에 스쳐 지나가는 희미한 웃음을 놓치지 않았다. 역시나, 다음 순간 이서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 숨을 멎게 만들었다.
- “이태민. 1981년생, 강원도 평창군 도점면 출신.”
- 이서준은 등본에 적힌 내용을 한 글자씩 또박또박 읽다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나를 봤다.
- “송지욱. 내 동창 중에도 도점면 출신이 한 명 있거든요. 어제 우연히 이태민이라는 사람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런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다고요. 그래서 동사무소에 있는 지인한테 한번 조회를 부탁해봤어요.”
- 이서준의 얼굴에는 불순한 웃음이 점점 짙어졌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 “결과가 어땠을 것 같아요?”
- 순간 심장이 목까지 콱 치솟았다. 사촌 여동생의 눈에도 어색한 당황이 스쳐 지나갔다.
- 김지훈도 의아한 표정으로 이서준을 바라봤다.
- 이서준은 침착하게 웃어 보이더니 김지훈을 향해 말했다.
- “조회 결과는—
- 이 사람, 주민등록 시스템에 존재하지 않는다고요. 가짜 신분이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거지!”
- 이서준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하며 날카로운 눈빛을 내게 꽂아 넣었다.
- 김지훈과 사촌 여동생은 그대로 얼어붙은 듯 멍하니 서 있었다.
- 이서준은 모든 걸 손에 넣은 사람 같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눈에 악의와 득의가 뒤섞인 빛이 어려 있었다. 그는 내 눈을 똑바로 보며 한 글자씩 또렷하게 물었다.
- “송지욱. 이태민이라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기계에서 죽은 사람은… 도대체 누군데?!”
- 순간 회의실 안은 숨소리조차 들릴 만큼 조용해졌다.
- 이서준은 그 가짜 주민등록등본을 손에 쥔 채 완전히 승리자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그 종이 한 장이 내 목숨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 원래부터 협상 과정 내내 잔뜩 신경이 곤두서 있던 김지훈은 충격에 휩싸인 얼굴로 나와 복순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대로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 “송지욱!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 기계에서 죽은 사람이 도대체 누구냐고?!”
- 그 순간, 온몸의 피가 멎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 이서준은 기이할 정도로 흥분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 안에는 악의 어린 쾌감이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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