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터가 풀가동된 차 안이었지만, 심장은 얼어붙을 듯 차가웠다. 멀어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쫓던 내 시선이 대시보드 위 유리병에 멎었다. 종이 별이 절반쯤 담긴 병을 보자, 기억은 잔인하게도 1년 전 그날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날도 오늘처럼 눈이 내리는 겨울이었다. 10년을 사랑한 강지후와 설레는 마음으로 결혼을 준비하던 그때, 그는 내 가족을 차로 쳐 죽였다. 영안실의 서늘한 공기 속에서 부모님의 시신을 마주한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가슴을 쥐어뜯으며 울부짖었다.
강지후는 병원 앞 눈밭에 무릎을 꿇었다. 입술이 터지도록 깨물며 그를 향한 증오를 불태웠지만, 그는 눈이 녹아 물이 되고 다시 얼음이 되어 몸을 짓누르는 사흘 밤낮 동안 그 자리를 지켰다. 결국 그 비겁한 정성에 마음이 약해진 나는 ‘나를 지켜달라’는 약속을 대가로 그를 받아내고 말았다.
그해 크리스마스, 내 소원을 들어주겠다며 그는 눈보라를 뚫고 산에 올라가 직접 트리를 베어 왔다. 동상에 걸려 짓무른 그의 손을 보며 나는 애틋함에 젖어 속삭였다.
“이 병 속의 별 하나하나가, 네가 나한테 잘해준 증거야.”
하지만 내게 그토록 소중했던 10년의 증거들은 진실을 마주한 순간 처참히 오물로 변해버렸다.
나는 가속 페달을 밟아 교외의 묘지로 향했다. 부모님의 묘비 앞에 서자 자애로운 두 분의 눈빛이 비수가 되어 심장을 찔렀다. 단지 한유라를 재벌가에 보내기 위해 내 부모를 죽였다니.
나는 묘비 앞 차가운 바닥에 이마를 짓찧으며 절을 올렸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성진 그룹의 차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가기도 전에, 낮고 서늘한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한유라는 사기꾼이에요. 당신의 배경과 재산만 노리고 접근한 거라고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수화기 너머에서 헛웃음 섞인 비웃음이 들려왔다.
“그래서요? 내가 그런 시시한 정보조차 모르고 그 여자를 곁에 뒀을 거라 생각합니까?”
예상치 못한 여유로운 반응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는 이미 모든 것을 꿰뚫고 있었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마지막 패를 던졌다.
“……그럼 선택하시죠. 천박한 사기꾼을 아내로 맞이하시겠어요? 아니면 수백억 대 자산과 당신들이 그토록 노리는 상업 지구 부지를 손에 쥔 저를 아내로 맞이하시겠어요?”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차현우가 흥미롭다는 듯 나른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 안에는 사람을 짓누르는 기묘한 유희가 섞여 있었다.
“그렇지. 은서윤 씨, 장사꾼이라면 이 정도 성의는 보여야 대화가 통하지. 하루만 기다려. 만족할 만한 답을 줄 테니까.”
뚝, 전화가 끊겼다. 참았던 숨이 터져 나오며 긴장이 풀린 몸이 눈밭에 무너져 내렸다. 그때, 한유라의 SNS 알림이 울렸다.
홀린 듯 들어간 영상 속에서 그녀는 행복한 신부처럼 웃으며 드레스를 고르고 있었다. 화면 끝에 스치듯 포착된 남자의 팔목. 손등의 동상 자국, 그리고 오늘 아침 내가 직접 붙여준 엉성한 반창고.
심장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내 앞에서는 세상에 둘도 없는 순정남을 연기하던 남자가, 뒤에서는 내 부모를 죽인 여자와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부모님의 영정 사진을 똑바로 응시하며 차갑게 뇌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