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다음 화
당신을 가두는 완벽한 지옥

당신을 가두는 완벽한 지옥

Seren

Last update: 1970-01-01

제1화

  • “7일.”
  • 전화기 너머 성진우를 향해, 나는 발작하듯 웃음을 터뜨렸다.
  • “딱 7일만 나랑 있어 줘. 그럼 군말 없이 이혼 서류에 도장 찍을게. 아, 네가 그토록 금지옥엽 여기는 네 ‘첫사랑’—내 여동생 유골함도 그때 같이 넘겨주고..”
  • 순간, 수화기 너머로 지독한 정적이 흘렀다. 이윽고 들끓는 분노를 집어삼킨 성진우의 서늘한 목소리가 고막을 긁어왔다.
  • “강해수, 이번엔 또 무슨 저질스러운 수작질이지?”
  • 나는 맨발로 차가운 대리석 바닥을 딛고 섰다. 창밖으로 보이는 도심의 늦가을은 온통 음산한 빗줄기에 잠겨 있었다..기다렸다는 듯 위장을 짓이기고 비트는 통증이 치밀어 올랐다. 수만 개의 바늘이 속을 사정없이 난도질하는 감각.
  • 나는 식은땀에 젖어 구겨진 진단서를 꽉 움켜쥐었다.
  • [위암 말기]
  • 의사는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고 했다. 이제 내게 허락된 시간은 날짜가 아니라, 초 단위로 사그라드는 모래시계나 다름없었다.
  • 나는 갈라진 목소리로 나직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 “이번엔 진심이야. 이제 지쳤거든, 성진우 딱 7일. 넌 그토록 원하던 자유를 얻고, 네 사랑은 편히 쉴 곳을 얻는 거야. 너한테 전혀 손해 보는 거래는 아니잖아?”
  • 3년 전, 우리가 부부로 맺어진 첫날 밤.내 배다른 여동생 강이레가 호텔 옥상에서 투신했다. 그날 이후, 성진우는 내가 동생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고 확신했다.
  • 그는 곧장 해외로 떠나 그룹의 현지 시장을 개척한다는 핑계로, 3년 내내 나를 닿는 것조차 끔찍한 불쾌한 오물이라도 본 듯 치를 떨며 피했다. 매달 변호사를 통해 기계적으로 보내오는 이혼 서류 외엔, 우리 사이에 남은 접점은 아무것도 없었다.
  • 나는 매번 날아오는 서류를 갈가리 찢어발기며, 미친 여자처럼 텅 빈 신혼집을 지켰다. 이미 죽어버린 결혼이라는 시체에 매달려, 그 껍데기뿐인 이름표를 끝까지 놓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은 내가 성진우에게 미쳐서, 그를 놓지 못해 안달이 난줄로만 알았다.
  • 하지만 나만이 알고 있었다. 나는 그저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그가 나보다 더 처첨하게 무너지고, 나보다 더 깊은 절망의 구렁텅이에 처박힐 기회를.
  • 그리고 마침내, 그 기회가 왔다.
  • “…이레 유골함, 어디다 숨겼어?”
  • 성진우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려 왔다. 3년 전, 강이레가 죽고 난 뒤 나는 ‘언니’라는 자격을 내세워 강압적으로 유골을 인도받았다. 뒤늦게 달려온 성진우가 마주한 건 텅 비어 있는 납골당뿐이었다.
  • 당시 그는 미친 사람처럼 내 목을 조르며 울부짖었다. 별을 박아넣은 듯 다정했던 눈동자엔 오직 살기 어린 증오만이 가득했다.
  • ‘강해수! 왜 네가 아니라 이레가 죽은 거야, 왜!’
  • 심장을 갈가리 찢어놓던 그 눈빛을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 “알고 싶어?”
  • 나는 바짝 마른 입술을 축으며 한 글자씩 씹어 삼켰다.
  • “그럼 돌아와. 7일,그동안 넌 내 거야. 일주일 뒤에 그 애를 돌려줄게.”
  • “독한 년.”
  • “이것보다 더 악독해질 수도 있어.”
  • 나는 차가운 벽에 몸을 기대며 버텼다. 당장이라도 끊어질 듯한 통증에 정신이 아득했지만, 목소리만큼은 지독하리만치 평온을 가정했다.
  • “계속 나랑 기 싸움 해봐도 상관없어. 하지만 장담하는데, 넌 평생 그 애를 못 찾을 거야. 내가 그 애를 흔적도 없이 지워버릴 테니까.”
  • 툭―
  • 미련 없이 전화를 끊었다.
  • 나는 바닥으로 무너지듯 주저앉아 배를 움켜쥐고 몸을 웅크렸다. 식은땀이 잠옷을 축축하게 적셨고 눈앞이 까맣게 점멸했다.
  • 알고 있다. 그는 돌아올 것이다. 강이레를 위해서라면 그는 영혼이라도 팔 놈이니까.
  • 예상대로였다. 정확히 17시간 뒤, 정적을 깨고 초인종이 발작하듯 울려 댔다.
  • 나는 끊어질 듯한 통증을 억누르며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거울 앞에 앉아 공들여 화장을 시작했다. 입술에 핏빛 같은 레드 립을 덧칠하고, 아이라인은 평소보다 날카롭게 빼냈다. 병마로 찌들어 초췌해진 몰골을 가면 뒤로 철저히 숨겼다.
  • 그에게 똑똑히 보여주고 싶었다. 당신이 없던 그 3년이 내게는 아무런 타격도 없었다는 듯, 내가 얼마나 ‘잘’ 지내왔는지 말이다.
  • 문을 열자, 시린 한기를 온몸에 두른 성진우가 서 있었다. 3년 만에 마주한 그는 전보다 수척해 보였으나, 눈매만큼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벼려져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오물덩어리를 보는 듯한 혐오로 가득했다.
  • “유골함, 어디 있어?”
  • 안부조차 생략한, 칼날 같은 본론이었다. 나는 문틀에 비스듬히 기대어 화사하면서도 비정하게 웃어 보였다.
  • “뭐가 그렇게 급해? 우리 게임은 이제 겨우 시작인데.”
  • 내 화려한 얼굴을 훑어내리는 성진우의 미간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 “강해수, 네 그 꼴… 진심으로 역겨워.”
  • 입가에 매달아 둔 미소는 미동도 없었지만, 심장 한구석이 날카로운 바늘에 찔린 듯 아릿했다. 그때, 그의 등 뒤에서 가냘픈 목소리가 들려왔다.
  • “진우 씨, 이분이… 그 언니예요?”
  • 그제야 성진우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던 여자가 보였다. 순백의 원피스에 청순하게 늘어뜨린 긴 생머리. 눈매와 분위기가 강이레와 소름 끼칠 정도로 닮아 있었다.
  • 순간 내 입가에 매달려 있던 미소가 딱딱하게 굳었다.
  • 죽은 애 대신 세울 대용품이라도 찾아낸 건가. 성진우, 당신 정말 지독할 정도로 순정적이네.
  • 여자는 내 시선이 두려운 듯 어깨를 움츠리며 진우의 뒤로 몸을 숨겼다.
  • “진우 씨, 저… 아무래도 그냥 호텔로 돌아가는 게 좋겠어요.”
  • “그럴 필요 없어.”
  • 성진우는 보란 듯이 여자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내게 선언하듯 차갑게 내뱉었다.
  • “이쪽은 서유라. 내 약혼녀지. 약속한 7일 동안 우리와 함께 지낼 거다.”
  • 이런 유치한 도발로 나를 자극할 수 있다고 믿는 걸까? 내가 질투로 눈이 멀어 미쳐버리기라도 바라는 건가?
  • 나는 서유라는 여자를 빤히 응시했다. 순진한 척 깜빡이는 눈동자 너머로, 강이례와 판박이인 그 영악한 속물근성과 야욕이 번득였다.
  • 정말 닮았다. 사람 속을 뒤집어놓는 그 ‘여우 짓’까지도.
  •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배를 움켜쥐고 한참을 깔깔대는 바람에 눈물까지 맺혔다.
  • “좋아.”
  • 나는 몸을 비켜주며 우아하게 길을 터주었다.
  • “환영해, 나의 사랑하는 남편. 그리고… 우리 이레 ‘대역’으로 낙점된 그쪽도.”
  • 성진우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사고를 칠 듯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서유라 역시 안색이 하얗게 질린 채,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눈으로 진우를 바라보았다.
  • “진우 씨, 언니가 어떻게 저런 말을….”
  • “신경 쓰지 마.”
  • 진우는 여자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나를 쏘아보았다. 명백한 경고가 담긴 눈짓이었다.
  • “강해수, 적당히 해.내 인내심 시험하지 말고”
  • 나는 무심하게 어깨를 으쓱하고는 거실 소파로 걸어가 오만하게 몸을 묻었다.
  • “자, 다 모였으니 첫날의 게임 룰을 설명할게.”
  • 나는 티 테이블 아래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 그에게 던지듯 밀어주었다.
  • “첫 번째 스케줄. 나랑 같이 경찰서 좀 가줘야겠어.”
  • 진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서류를 집어 들었다. 내용을 훑어 내려가던 그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 그것은 ‘자백서’였다. 3년 전, 내가 질투에 눈이 멀어 어떻게 강이레를 사지로 몰아넣었는지 상세히 기록된—내가 직접 꾸며낸—범행 일지.
  • “너, 정말 미친 거야?”
  • 진우의 목소리에 경악이 서렸다.
  • “어, 나 미쳤어.”
  • 나는 고개를 들어 충격에 빠진 그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잔인하게 미소 지었다.
  • “미쳐서 자수하겠다는 거야. 내가 살인범이라고 온 세상에 광고라도 하려고. 그러니까 지금 당장, 나랑 같이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