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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 강준우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얼굴에 가득했던 조바심은 순식간에 공포로 바뀌었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말기라니? 오늘을 못 넘긴다니요? 선생님, 그게 무슨 뜻입니까?”
  • “말 그대로입니다. 간암 말기라고요! 지금 재수술 중에 대출혈이 발생해서 위급합니다!”
  • “당장 수술 범위 확대 동의서에 서명하세요. 안 그러면 정말 늦습니다!” 의사는 분노로 떨리는 손으로 펜을 건넸다.
  • 그때 한서희가우는 강지후을 안고 다급히 달려왔다. 그녀는 강준우의 팔을 잡아끌며 물었다. “준우야, 여기서 뭐 해?”
  • “지후가 울면서 아빠만 찾던데. 은채 씨 일은 의사 선생님들이 알아서 해주시겠죠. 어서 지후를 좀 봐줘.” 말을 하며 한서희는 분노한 의사를 힐끗 보았다. 눈빛에 원망이 비쳤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가냘팠다. “선생님, 은채 씨 상태가 정말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죠? 혹시…… 준우의 관심을 끌어보려고 쇼하는 건 아닐까요?”
  • “은채 씨가 저랑 지후를 싫어하는 건 알지만, 자기 몸을 가지고 이런 장난을 치면 안 되잖아요……”
  • “입 닥치세요!” 주치의가 결국 폭발했다. 그는 한서희를 쏘아보며 일갈했다. “그쪽이 무슨 자격으로 저희 진단을 의심합니까?”
  • “고은채 씨 상태는 정밀 검사를 통해 확정된 겁니다. 매번 항암과 수술이 죽음의 문턱에서 끌어올리는 싸움이었다고요!”
  • “관심 끌기라고요? 그쪽 그 좁은 머리로 생각 좀 해보세요. 누가 자기 목숨을 걸고 이런 장난을 칩니까?”
  • 의사는 조수의 손에 있던 두툼한 차트 뭉치를 강준우의 가슴에 냅다 내던졌다. “직접 보시죠! 이름, 고은채! 말기, 전이, 이런 글자 읽을 줄은 하시겠죠?”
  • 의사는 말을 마치자마자 급히 수술실로 들어갔다. 강준우는 떨리는 손으로 차트를 넘겼다. 간암 말기. 그 글자가 눈에 박히는 순간,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기억들이 쏟아져 나왔다.
  • 창백한 얼굴로 피곤하다던 나를 그는 유난을 떤다고 치부했다. 한밤중에 식은땀을 흘리며 통증을 참던 나를 그냥 위경련쯤으로 여겼다. 세면대에 빠진 수많은 머리카락을 보고도 깊게 고민하지 않았고, 마른 내 몸을 보며 몸매 관리하는 줄로만 알았다.
  • 그는 이제야 깨달았다. 내가 떼를 쓴 것도,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그가 한서희과 아들을 위해 나를 밀어내고 책망하는 동안, 나는 홀로 죽음의 공포를 버티고 있었다.
  • 거대한 후회가 들이닥쳤다. 그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수술실 빨간 등을 노려보며 안으로 뛰어들려 했다. “은채야! 들여보내 줘요! 지금 봐야 겠어요!”
  • “준우야, 안 돼!” 한서희가 매달렸다. “수술실은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되잖아. 진정해. 우리 아들이 아직 열이 난단 말이야. 지후에겐 당신이 필요해. 아들부터 봐줘. 은채 씨에겐 의사가 있잖아……”
  • “저리 비켜!” 이성을 잃은 강준우가 한서희의 팔을 거칠게 뿌리쳤다. 그녀는 비틀거리다 넘어질 뻔했지만 그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오직 수술실 문만 뚫어지게 바라볼 뿐이었다.
  • 그때, 말쑥한 정장 차림의 서늘한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의 시선은 정확히 한서희에게 꽂혔다. “한서희, 여기 숨어 있었네. 내 아들은 어디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