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우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얼굴에 가득했던 조바심은 순식간에 공포로 바뀌었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말기라니? 오늘을 못 넘긴다니요? 선생님, 그게 무슨 뜻입니까?”
“말 그대로입니다. 간암 말기라고요! 지금 재수술 중에 대출혈이 발생해서 위급합니다!”
“당장 수술 범위 확대 동의서에 서명하세요. 안 그러면 정말 늦습니다!” 의사는 분노로 떨리는 손으로 펜을 건넸다.
그때 한서희가우는 강지후을 안고 다급히 달려왔다. 그녀는 강준우의 팔을 잡아끌며 물었다. “준우야, 여기서 뭐 해?”
“지후가 울면서 아빠만 찾던데. 은채 씨 일은 의사 선생님들이 알아서 해주시겠죠. 어서 지후를 좀 봐줘.” 말을 하며 한서희는 분노한 의사를 힐끗 보았다. 눈빛에 원망이 비쳤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가냘팠다. “선생님, 은채 씨 상태가 정말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죠? 혹시…… 준우의 관심을 끌어보려고 쇼하는 건 아닐까요?”
“은채 씨가 저랑 지후를 싫어하는 건 알지만, 자기 몸을 가지고 이런 장난을 치면 안 되잖아요……”
“입 닥치세요!” 주치의가 결국 폭발했다. 그는 한서희를 쏘아보며 일갈했다. “그쪽이 무슨 자격으로 저희 진단을 의심합니까?”
“고은채 씨 상태는 정밀 검사를 통해 확정된 겁니다. 매번 항암과 수술이 죽음의 문턱에서 끌어올리는 싸움이었다고요!”
“관심 끌기라고요? 그쪽 그 좁은 머리로 생각 좀 해보세요. 누가 자기 목숨을 걸고 이런 장난을 칩니까?”
의사는 조수의 손에 있던 두툼한 차트 뭉치를 강준우의 가슴에 냅다 내던졌다. “직접 보시죠! 이름, 고은채! 말기, 전이, 이런 글자 읽을 줄은 하시겠죠?”
의사는 말을 마치자마자 급히 수술실로 들어갔다. 강준우는 떨리는 손으로 차트를 넘겼다. 간암 말기. 그 글자가 눈에 박히는 순간,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기억들이 쏟아져 나왔다.
창백한 얼굴로 피곤하다던 나를 그는 유난을 떤다고 치부했다. 한밤중에 식은땀을 흘리며 통증을 참던 나를 그냥 위경련쯤으로 여겼다. 세면대에 빠진 수많은 머리카락을 보고도 깊게 고민하지 않았고, 마른 내 몸을 보며 몸매 관리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는 이제야 깨달았다. 내가 떼를 쓴 것도,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그가 한서희과 아들을 위해 나를 밀어내고 책망하는 동안, 나는 홀로 죽음의 공포를 버티고 있었다.
거대한 후회가 들이닥쳤다. 그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수술실 빨간 등을 노려보며 안으로 뛰어들려 했다. “은채야! 들여보내 줘요! 지금 봐야 겠어요!”
“준우야, 안 돼!” 한서희가 매달렸다. “수술실은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되잖아. 진정해. 우리 아들이 아직 열이 난단 말이야. 지후에겐 당신이 필요해. 아들부터 봐줘. 은채 씨에겐 의사가 있잖아……”
“저리 비켜!” 이성을 잃은 강준우가 한서희의 팔을 거칠게 뿌리쳤다. 그녀는 비틀거리다 넘어질 뻔했지만 그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오직 수술실 문만 뚫어지게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 말쑥한 정장 차림의 서늘한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의 시선은 정확히 한서희에게 꽂혔다. “한서희, 여기 숨어 있었네. 내 아들은 어디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