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이전 화 다음 화

제3화

  • 일주일.
  • 7일.
  • 168시간.
  • 나는 처음 사흘 동안 어머니의 유품을 하나하나 다시 정리했다. 흩어졌던 진주를 하나씩 세어 보았다. 모두 마흔일곱 알이었다. 한 알이 모자랐다. 침대 밑도 세 번이나 뒤졌고, 장식장 틈새까지 손을 넣어 찾아봤지만 끝내 나오지 않았다. 남은 진주들은 새 줄에 다시 꿰어 다시 목에 걸었다.
  • 넷째 날부터는 웨딩드레스를 골랐다. 새하얗고 긴 트레인이 달렸으며, 어깨가 모두 드러나는 디자인이었다.
  • 윤아린도 한 번 찾아왔다. 문가에 기대 선 채 멀찍이서 드레스를 훑어보더니 비웃듯 말했다.
  • "언니, 그 드레스 너무 수수한 거 아니에요? 꼭 순장당하러 가는 신부 같아요."
  • 나는 말없이 그녀의 뺨을 후려쳤다.
  • 윤아린은 울면서 돌아갔다. 복도를 따라 멀어지는 울음소리가 끝까지 귓가를 파고들었지만, 나는 방문을 닫지도 않았고 그녀를 붙잡지도 않았다.
  • 그리고 일곱째 날 새벽.
  • 낮게 울리는 엔진 소리에 잠이 깼다. 커튼을 젖히는 순간 창밖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저택 앞 도로는 이미 검은 세단으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차들은 한 줄로 길게 늘어서 있었고, 저택 정문에서 시작해 눈에 보이지 않는 길모퉁이 너머까지 이어졌다. 적어도 서른 대는 넘어 보였다.
  • 모든 차량 앞에는 늑대 문장이 새겨진 깃발이 꽂혀 있었다. 검은 바탕에 금빛 문양. 바람이 불 때마다 깃발이 뒤집히며 늑대의 입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벌어졌다 닫혔다.
  • 잠시 후 차 문이 열렸다.
  • 철회색 정장을 입은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 넓은 어깨가 차 문을 가릴 만큼 건장한 체격이었다. 선글라스도 쓰지 않은 채 매서운 눈빛으로 저택 앞 정원을 천천히 훑어보던 그는 마지막으로 2층 창가를 향해 시선을 멈췄다.
  • 나는 커튼 뒤에 서 있었다. 그는 나를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이미 나를 발견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 그 남자는 저택 정문 앞에 멈춰 섰다. 이내 한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 그와 동시에 뒤에 늘어선 서른 대의 차량이 일제히 시동을 껐다. 순식간에 거리 전체가 숨을 죽였다. 바늘 하나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만큼 고요해졌다.
  • "한성가에서 안주인을 모시러 왔습니다."
  • 그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멀리까지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 나는 조용히 숨을 들이마신 뒤 침실 문을 열었다.
  • 거실에는 강도윤이 소파에 기대앉아 있었다. 손등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고, 오른손 검지와 중지 마디는 아직도 퉁퉁 부어 있었다. 하이힐 굽이 박혔던 상처에는 검붉은 딱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며칠째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듯 눈 밑은 깊게 꺼져 있었고, 셔츠 깃도 구겨진 채였다.
  • 윤아린은 그의 옆에 바짝 붙어 앉아 따뜻한 차를 두 손으로 감싸 들고 있었다. 후후 입김을 불어 식혀 주던 그녀는 나를 보자 동작을 멈췄다.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나를 향했다.
  • 나는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회전계단을 천천히 내려갔다. 긴 치맛자락이 계단을 스치며 사각사각 낮은 소리를 냈다.
  • 원래 윤아린을 찾아왔던 강도윤은 나를 보는 순간 그대로 굳어 버렸다. 무려 5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서아."
  • 그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 "어디 가는 거야?"
  • 나는 마지막 계단을 내려와 담담하게 대답했다.
  • "결혼하러."
  •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강도윤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손등에 감긴 붕대가 테이블 모서리에 스치자 낮게 신음했지만, 곧 비웃듯 웃음을 터뜨렸다.
  • "하, 결혼? 설마 진짜 결혼이라도 한다는 거야? 이렇게까지 차려입은 것도 결국 내 관심 끌려고 그러는 거잖아."
  • 그때 현관 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철회색 정장을 입은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노크도 하지 않았고, 그를 막는 사람도 없었다. 곧장 거실 한가운데까지 걸어온 그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시선은 강도윤을 스쳐 지나 윤아린에게 머물렀다가, 마지막으로 내게 향했다.
  • "사모님."
  • 그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 "가주님께서 모시러 오라고 하셨습니다. 차량은 밖에 대기 중이며, 예식장 준비도 모두 끝났습니다."
  • 윤아린의 손에서 찻잔이 툭 떨어졌다. 도자기 조각이 바닥에 산산이 부서지며 맑은 소리를 냈고, 반쯤 남아 있던 차가 그녀의 치맛자락 위로 튀었다. 그녀는 짧게 비명을 지르며 황급히 몸을 뒤로 뺐다.
  • 강도윤은 그녀보다 한 박자 늦게 현실을 받아들였다. 멍하니 굳어 있던 얼굴이 약 2초 만에 핏기를 잃었고, 세 번째 초가 되자 성큼 앞으로 나섰다.
  • "무슨 연극을 하는 거야? 설마 네가 돈 주고 불러온 배우들이야?"
  • 철회색 정장 차림의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화를 내지도 않았고, 비웃지도 않았다. 그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 "이 분. 말씀을 조심하시죠."
  • "한성가 그 사람이 정말 너랑 결혼할 리가 없잖아. 얼굴 한 번 본 적도 없는데!"
  • 강도윤은 그대로 손을 뻗어 내 드레스 자락을 잡으려 했다.
  • "서아, 이제 그만해. 사람들까지 동원해서 이런 연극을 하는 게 안 유치해?"
  • 나는 조용히 한 걸음 옆으로 비켰다. 드레스 자락이 그의 손끝을 스치듯 미끄러져 빠져나갔다.
  • "그쪽, 이건 내 약혼자가 보낸 차량이야."
  • 나는 끝까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 "그리고 한 번만 더 절 건드리시면, 그 손을 계속 쓸 수 있을 거라고는 장담하지 못하겠네."
  • 강도윤의 손이 허공에서 그대로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