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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혼당한 그녀가 암흑가 부인이 되었다

파혼당한 그녀가 암흑가 부인이 되었다

Leocadia

Last update: 1970-01-01

제1화

  • 정략결혼 연회장에서 4년을 사랑해 온 약혼자 강도윤은 도시의 모든 명문가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내 어머니의 유품을 짓밟고, 불쌍한 척 연기하는 의붓동생을 선택했다.
  • “서아, 난 그냥 네 동생 아린이가 안쓰러워서 그런 거야. 몇 달만 지나면 다시 너와 약혼하면 되잖아. 안 그래?”
  • 하지만 그는 몰랐다. 우리 윤 가문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암흑가 조직인 윈터 가문과 맺은 오래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오늘 밤이 지나도록 약혼자가 없는 여자는 그들의 죽음을 앞둔 후계자와 결혼해야 한다는 사실을.
  • 그리고 내가 정말 그 조직의 가문으로 들어가, 내 남편이 될 남자를 직접 마주하게 된 순간.
  • 가장 미친 듯이 후회하게 된 사람은 바로 강도윤이었다.
  • 내 이름은 윤서아. 윤 가문의 정략결혼 연회에는 수백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특별한 규칙이 하나 있다.
  • 연회가 열리는 날 밤, 결혼 적령기의 여성들은 각자 자신의 신표를 준비한다. 그리고 남자는 그중 하나를 선택한다. 선택받은 신표의 주인이 곧 그의 아내가 된다.
  • 그 규칙은 오랜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깨진 적이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증인이 되는 자리에서 이루어진 선택을 감히 번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오늘 신표대 위에는 두 개의 장신구가 놓여 있었다.
  • 하나는 내 진주 목걸이였다. 수십 개의 골동품급 진주를 정성스럽게 엮고, 중앙에는 비둘기의 피처럼 선명하고 깊은 붉은빛을 띠는 다이아몬드 펜던트를 달아 놓은 목걸이.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직접 만들어 내게 남겨 주신 세상에 단 하나뿐인 유품이었다.
  • 다른 하나는 계모의 딸, 윤아린의 크리스털 목걸이였다.
  • 값비싼 보석은 아니었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물건도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내 목걸이와 나란히 신표대 위에 놓여 있었다.
  • 오늘 신표를 선택할 남자는 강도윤. 태성그룹의 유일한 후계자.
  • 그리고 내가 4년 동안 사랑해 온 남자였다.
  • 깊은 바다를 닮은 푸른 눈동자와, 누구에게나 다정하게 웃어 주는 부드러운 미소.
  • 양가 어른들은 오래전부터 우리의 관계를 알고 있었고, 오늘 신표를 고르는 의식 역시 그저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었다.
  • 연회장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이런 결과를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 집사가 은쟁반을 받쳐 들고 강도윤 앞으로 다가갔다.
  • 그는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물론 내 목걸이를 알아보았다.
  • 길고 단정한 손가락이 진주의 표면을 따라 천천히 미끄러졌다. 그리고 어머니가 남겨 주신 붉은 다이아몬드 펜던트의 곡선을 손끝으로 가볍게 쓸어내리며,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소중한 물건처럼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 “태성그룹 도련님께서 윤서아 아가씨를 선택하셨습니다!”
  • 누군가 외쳤다.
  • 순간 연회장 안에 우렁찬 박수가 터져 나왔다.
  • “축하드립니다, 윤 가문 아가씨!”
  • “역시 강도윤 도련님과 윤서아 아가씨는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네요!”
  • 샴페인 잔들이 연이어 부딪혔다. 투명한 잔 속 황금빛 액체가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반짝였다.
  • 사람들이 한꺼번에 내게 몰려왔다. 수많은 웃는 얼굴들이 눈앞을 가득 채웠고, 누군가는 내 어깨를 두드렸으며 누군가는 내 손을 잡고 축하의 말을 건넸다.
  • 나는 그 자리에 서서, 그제야 긴장으로 굳어 있던 숨을 조금 내려놓으려 했다.
  • 그 순간이었다. 강도윤의 입꼬리가 아주 살짝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 그는 시선을 내린 채 내 진주 목걸이 위를 지나가던 손끝을 천천히 거두었다.
  • 그리고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옆에 놓여 있던 다른 신표를 집어 들었다.
  • 윤아린의 크리스털 목걸이였다. 그의 길고 곧은 손가락이 값싼 장신구를 걸어 올렸다.
  • 강도윤은 그 목걸이를 가볍게 들어 올려 사람들 앞에서 흔들었다.
  • “선택했습니다.”
  • 그 한마디와 함께. 방금 전까지 연회장을 가득 채우던 박수 소리가 거짓말처럼 멈췄다.
  • “강 도련님께서 선택하신 사람이…… 윤아린 아가씨라고요?”
  • 집사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잠시 멈칫했다. 겨우 입을 열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눈에 띄게 떨리고 있었다.
  • 순간 연회장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조금 전까지 내 어깨를 두드리던 손들은 그대로 허공에 멈춰 있었고, 나를 축하하던 말들은 채 끝나기도 전에 사람들의 목 안에 걸려 버렸다.
  •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둘 굳어 갔다.
  • 나를 향했던 눈빛이 천천히 윤아린에게로 향했다.
  • 윤아린은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 그리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럽게 눈시울을 붉혔다.
  • 눈물은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게. 마치 누군가에게 보여 주기 위해 준비한 것처럼 완벽한 타이밍에 흘러내렸다.
  • “도윤 오빠……”
  •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강도윤을 불렀다.
  • 강도윤은 그녀에게 다가갔다.
  •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몸을 숙여 그녀의 목에 크리스털 목걸이를 걸어 주었다.
  • 그는 다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 그의 눈빛에는 묘한 장난기가 어려 있었다.
  • “아린이는 윤 가문의 친딸이 아니잖아. 어릴 때부터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알아. 나한테는 오히려 아린이가 더 필요해.”
  •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웃었다.
  • “그렇지 않아?”
  • 화려한 샹들리에 불빛이 눈부시게 쏟아졌다.
  • 나는 귀 안쪽에서 웅웅 울리는 소리만 들렸다.
  • “아…… 그래도 둘째 아가씨도 괜찮지 않나요?”
  • “강 도련님은 역시 마음이 깊으시네요. 사람의 사정을 헤아릴 줄 아시는 분이에요.”
  •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며 다시 윤아린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 그리고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 방금 전까지 나를 축하하던 모든 시선이, 너무도 쉽게 다른 사람에게 향했다는 것을.
  • 그녀의 울음소리는 아주 낮게 눌려 있었다. 낮고도 낮아서, 모두가 들을 수 있을 만큼만. 가엾어 보이기에 딱 알맞은 정도였다. 그 울음은 아무 말 없이도 말하고 있었다. 계모의 딸인 자신의 불쌍한 처지를. 그리고 친딸인 내가 얼마나 오만한 사람인지.
  • 나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또각. 또각. 하이힐이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 "서아!"
  • 강도윤이 뒤따라와 내 손목을 붙잡았다. 가까운 거리. 그의 푸른 눈동자에는 아직도 웃음기가 남아 있었다.
  • "화났어?"
  • "..."
  • "아린이가 먼저 찾아와 울더라. 자길 선택하지 않으면 아버지가 이웃 나라 늙은 재벌한테 정략결혼을 시켜 버린다고."
  • 그는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 "난 그냥 한 번 도와준 것뿐이야. 길어야 석 달이면 약혼은 없던 일로 할 거고, 그다음엔 원래대로 너랑 결혼하면 되잖아."
  • 나는 그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손목에는 그의 손가락 자국이 희미하게 하얗게 남아 있었다.
  • "석 달이라고?"
  • 나는 차갑게 그를 바라봤다.
  • "오늘 내가 약혼자가 없으면, 일주일 뒤에 내가 어떻게 되는지 알고는 있는 거야?"
  • "알아."
  • 그가 내 말을 끊었다. 느긋한 웃음이 입가에 걸렸다.
  • "윤가랑 한성가가 맺은 그 약속 말이지?"
  • "안 그래도 까먹을 뻔했네."
  • 그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 "그 곧 죽을 반쯤 폐인이나 다름없는 후계자?"
  • "설마 윤가에서 널 그런 놈한테 시집보내 애까지 낳게 하겠어?"
  •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봤다. 복도 조명이 그의 등 뒤에서 비쳐 얼굴을 반으로 갈랐다.
  • 지난 4년. 장미꽃. 편지. 수없이 쌓여 온 추억들이 한순간에 목 끝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끝내 아무 말도 되지 못한 채 목 안에 걸려 버렸다.
  • "난 그냥 착한 일 한 거야."
  • 그가 다시 말했다. 토라진 아이를 달래듯 가벼운 목소리였다.
  • 그때였다. 뒤에서 조심스러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아버지가 복도 모퉁이에 서 있었다. 손에는 금박이 찍힌 봉투 하나가 들려 있었다. 입술은 몇 번이나 달싹였고, 시선은 내 얼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 그 표정을 보는 순간. 가슴이 천천히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봉인을 장식한 늑대 문장이 차갑게 빛났다.
  • 아버지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나를 한 번 바라봤다. 단 한 번. 하지만 그 한 번의 시선이 천 마디 말보다 무거웠다.
  • 멀리 연회장에서는 아린이의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흘러온 그 목소리가 귓가를 휘감았다.
  • "도윤 오빠… 언니가 화난 거죠?"
  • "아린은 정말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었어요…"
  • 한 글자도 빠짐없이 들렸다. 나는 다시 시선을 거두었다.
  • "강도윤."
  • 입을 여는 순간 깨달았다. 내 목소리는 생각보다 차분했다.
  • "넌 알고 있었잖아."
  • "윤가가 한성가의 비호가 필요하다는 것도."
  • "오늘 내가 약혼자가 없으면, 일주일 뒤엔 한성가로 시집가야 한다는 것도."
  • 그제야 그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 "이제는 알았겠네."
  •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 "하지만 이제 와서 네 도움이 필요하진 않아."
  • 나는 그대로 복도 안쪽으로 걸어갔다. 뒤에서 강도윤의 발걸음이 두어 번 따라오다 멈췄다.
  •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에서 아린의 울음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 "언니, 도윤 오빠는 탓하지 말아요…"
  • 그 말이 또렷하게 귀에 꽂혔다. 나는 아버지 앞에 멈춰 섰다. 금박 봉투를 움켜쥔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목울대가 힘겹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 "서아……."
  • "제가 갈게요."
  • 아버지의 입술이 떨렸다. 눈가도 붉게 물들었다. 하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그의 손에서 봉투를 받아 들었다. 늑대 문양의 금박이 손끝을 눌렀다.
  • 소문으로만 들은 남자.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남자. 잔혹하고.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시한부라는 남자.
  • 그런 남자의 아내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나는 등을 돌려 계단을 올라갔다.
  • 등 뒤에서는 연회장의 소란이 벽을 넘어 희미하게 밀려왔다. 웅웅거리는 물소리처럼 점점 멀어졌다. 전국을 움직이는 거대한 범죄조직 명문가. 죽음을 앞둔 후계자. 결혼과 동시에 아이를 낳기 위한 도구가 될 여자.하지만. 이제 와서는 되돌아갈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