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 나는 집 안 CCTV 영상을 모조리 확인한 뒤, 세 군데에 따로 백업해 뒀다.
- 하나는 클라우드에.
- 하나는 개인 노트북에.
-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암호화해 둔 USB에.
- 이건 이민우를 지옥까지 끌고 갈 결정적인 증거였다.
- 모든 걸 끝내고 나니, 어느새 창밖은 환하게 밝아 있었다.
- 나는 세수를 하고 거울 앞에 섰다.
- 충혈된 눈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 하지만 거울 속 내 눈빛에는 더 이상 흔들림이 없었다.
- 차갑고 단단했다.
- 남아 있는 건 결심뿐이었다.
- 나는 곧바로 한지석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 “한 변호사님, 저 윤세아예요.”
- “윤세아 씨, 안녕하세요. 상속 절차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 “알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 꼭 부탁드릴 일이 두 가지 있어요.”
- 내 목소리는 내가 들어도 낯설 만큼 차분했다.
- “우선, 저 이혼할 거예요.”
- “그리고 이민우는 한 푼도 가져가지 못하게 해 주세요.”
- 나는 숨을 고른 뒤, 또렷하게 말을 이었다.
- “그리고, 상속이랑 지분 이전 절차는 가능한 한 최대한 빨리 끝내 주세요.”
- “저와 제 아들 재산은 반드시 안전하게 지켜야 해요.”
- 수화기 너머의 한지석 변호사가 잠시 말을 멈췄다.
- 그러다 곧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 잠시 후,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 “이혼 소송에 필요한 외도 증거는 저희 쪽에서 추가로 확보해 드릴까요?”
- “그럴 필요 없어요.”
- 나는 비웃듯 피식 웃었다.
- “증거는... 이미 제 손에 있거든요.”
- “절대 발뺌 못 할 증거.”
- 전화를 끊고 나니, 목을 조이던 답답함이 조금 풀렸다.
- 그래.
-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 나는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 서준이 곁을 지켰다.
- 다행히 상태는 많이 안정돼 있었다.
- 아이는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 나는 아직도 붉은 자국이 남아 있는 작은 볼을 조심스럽게 쓸어내렸다.
- 가슴이 사정없이 조여 왔다.
- 내 서준이.
- 엄마가 널 잃을 뻔했어.
- 엄마가 반드시 돌려줄 거야.
- 네가 당한 만큼.
- 아니, 그 이상으로.
- 해가 질 무렵, 가사도우미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 집에 손님이 와 있다는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 드디어 왔구나.
- 나는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
- 현관문을 여는 순간, 눈앞에 가장 끔찍한 장면이 펼쳐졌다.
- 이민우와 문세라가 우리 집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 그리고 문세라는—
- 내 슬리핑 가운을 입고 있었다.
- 순간,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
- 나를 보자 이민우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죄책감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 오히려 모든 게 당연하다는 듯 태연하기만 했다.
- “세아야, 돌아왔어?”
-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문세라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 “소개할게. 이쪽은 문세라 씨.”
- “이번 프로젝트에 아주 중요한 고객님이야.”
- 문세라도 따라 일어났다.
- 천연덕스러운 얼굴.
- 그러면서도 어딘가 가련한 척하는 표정.
- 그녀는 이민우 뒤로 반쯤 몸을 숨기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 “안녕하세요....”
- “이분이 민우 씨 아내분이세요?”
- 웃기지도 않았다.
- 이민우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었다.
- “문세라 씨네 집은 배관이 터져서 아직 수리 중이래.”
- “갈 데가 없다길래, 당분간 우리 집에서 지내게 하려고.”
- 상의가 아니었다.
- 통보였다.
- 그는 나를 똑바로 보며 덧붙였다.
- “문세라 씨랑 하는 프로젝트는 회사에도 아주 중요해.”
- “넌 내 아내잖아. 이 정도는 맞춰 줘야지.”
- …맞춰 달라고?
- 둘이 짜고 치는 어설픈 연기를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 제3자를 버젓이 집 안까지 들여놓고,
- 이걸 내가 웃으면서 받아 주길 바라는 거야?
- 이민우.
- 도대체 나를 얼마나 우습게 본 거지?
- 하지만 나는 화를 내지 않았다.
- 그저 조용히 두 사람을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 내가 순순히 받아들이자 두 사람의 눈빛이 동시에 흔들렸다.
- 이민우는 이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 “역시 넌 말이 잘 통해.”
- 나는 아무 말 없이 앞으로 걸어갔다.
- 그리고 문세라의 손을 덥석 잡았다.
- “문세라 씨 맞죠?”
- “우리 집에 온 거, 환영해요.”
- 문세라가 당황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 “정말 편하게 지내세요.”
- “여길 자기 집이라고 생각하셔도 돼요.”
- 내가 너무 순순하게 나오자 오히려 문세라 쪽이 더 당황한 듯했다.
- “가, 감사합니다….”
- “정말 친절하시네요.”
- 나는 더 환하게 웃었다.
- “당연하죠.”
- “우리 남편 손님이면, 제 손님이기도 하니까요.”
- 나는 직접 문세라를 게스트룸까지 안내했다.
- 침구도 새로 펴 줬고, 필요한 게 없는지 하나하나 물어보기까지 했다.
- 이민우는 그런 나를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 역시 대표 아내답게 처신할 줄 안다고 생각하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
- 하지만 그는 몰랐다.
- 나는 속으로 차갑게 웃었다.
- 머릿속에선 이미 다음 계획이 다 짜여 있었다.
- 그날 밤, 나는 일부러 크림 버섯수프를 끓였다.
- 그리고 문세라를 주방으로 불러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붙였다.
- “세라 씨는 민우랑 알게 된 지 오래 되셨죠?”
- 문세라의 눈빛이 순간 가늘어졌다.
- 아주 잠깐, 경계심이 비쳤다.
- “아...아니요. 그렇게 오래되진 않았어요.”
- “긴장하지 말세요.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예요.”
- 나는 수프를 천천히 저으며, 시큰둥한 말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 “요즘 민우가 회사 자금 융통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더라고요.”
- “며칠 전에도 그러던데요. 서쪽 부지 프로젝트 대금만 잠깐 당겨 쓸 수 있으면 숨통이 좀 트일 것 같다고.”
- 나는 일부러 한숨을 섞었다.
- “그런데 그쪽 자금은 관리가 워낙 까다로워서, 방법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세라의 눈이 번쩍였다.
- 그녀는 곧장 휴대폰을 꺼내 들더니 베란다 쪽으로 걸어 나갔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 나는 못 본 척 수프를 계속 저었다.
- 이 말은 분명 이민우 귀에도 들어갔겠지.
- 좋아.
- 판은 내가 깔아 줬다.
- 어디 한번 해 봐.
- 어디까지 가는지 보자.
- 잠시 뒤, 문세라가 전화를 끊고 돌아왔다.
-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가 있었다.
- 들뜬 기색을 감추지도 못한 얼굴이었다.
- 그녀가 조심스레 내게 말했다.
- “방금 아는 사람한테 물어봤는데요….”
- “그 돈, 빼돌릴 방법이 있대요.”
- “게다가 거의 안 들킨다고 하던데요?”
- 그 순간, 서재 문이 열렸다.
- 이민우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 그는 나를 한 번 바라보더니 곧 문세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 잠시 눈빛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 그리고 낮게 말했다.
- “문세라 씨. 잠깐 서재로 들어와 주세요.”
- 그래.
- 둘은 아직도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믿고 있겠지.
- 하지만 곧—
- 제 발로 내가 놓아 둔 덫 안으로 들어오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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