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 나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고, 억지로 마음을 눌러 가라앉혔다.
- “선생님, 감사합니다. 알겠습니다.”
- 이번에는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다.
- 나는 천천히 의사 쪽으로 몸을 돌렸다.
- 그는 그런 나를 힐끗 보더니, 내가 조금 전과 달라졌다는 걸 눈치챈 듯했다.
- 짧게 한숨을 내쉰 의사가 낮게 말했다.
- “아이는 일단 고비는 넘겼습니다. 하지만 당분간은 입원해서 경과를 더 지켜봐야 해요.”
- 그는 잠시 내 눈치를 보더니 말을 이었다.
- “어머님, 잠깐 제 진료실로 들어오시겠어요?”
- 나는 말없이 그를 따라 진료실로 들어갔다.
- 문이 닫히자, 의사의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 “말씀하세요.”
- 의사는 잠시 말을 고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제가 의사 생활을 20년 넘게 하면서 별별 경우를 다 봤습니다.”
- “그런데 아이 상태가… 너무 심했어요.”
- “단순 실수로 보기에는 반응이 지나치게 큽니다.”
-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 “선생님의 말씀은....”
- 의사는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 대신 차분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 “오늘 진료 기록이랑 검사 결과는 전부 잘 보관해 두세요.”
- “반드시요.”
- 그의 눈빛만으로도 충분했다.
-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말을, 그는 지금 눈으로 대신하고 있었다.
- “그리고 집에 CCTV가 있다면 꼭 확인해 보세요.”
- “제가 무슨 뜻으로 드리는 말씀인지 아시겠죠.”
- 의사의 말은,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의심을 확신으로 바꿔 버렸다.
- 나는 깊게 허리를 숙였다.
- “감사합니다, 선생님.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 병원을 나설 무렵, 하늘이 조금씩 밝아오고 있었다.
- 도시는 천천히 깨어나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 나는 한때 집이라고 믿었던 곳으로 돌아갔다.
- 거실에는 어젯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 이민우의 코트가 소파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었다.
- 탁자 위에는 반쯤 먹다 만 땅콩 케이크가 놓여 있었다.
- 그 위에 박힌 노란 견과 조각들이 유난히도 눈에 거슬렸다.
- 나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켰다.
- 곧장 집 안 CCTV부터 확인했다.
- 손끝이 자꾸만 떨렸다.
- 겨우 어젯밤 영상을 재생했다.
- 곧 화면에 이민우가 나타났다.
- 그는 냉장고에서 케이크를 꺼냈다.
- 서준이는 울면서 필사적으로 버둥거리고 있었다.
- “안 먹을래… 아빠… 하지 마…….”
- 작은 손이 이민우의 팔을 힘껏 밀어냈다.
- 하지만 이민우 얼굴에는 미안함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 짜증.
- 오직 짜증뿐이었다.
- 그는 한 손으로 서준이를 거칠게 붙들어 눌렀다.
- 그리고 다른 손으로 케이크를 한 숟갈 크게 떠, 아들의 입안으로 억지로 밀어 넣었다.
- 서준이는 사레가 들린 듯 얼굴이 새빨개졌다.
- 거칠게 기침을 해댔다.
- 그런데도 이민우는 멈추지 않았다.
- 오히려 할 일 하나 끝냈다는 듯, 안도한 얼굴로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 CCTV는 그의 목소리를 선명하게 담아냈다.
- “가기야, 걱정하지 마”
- 그는 낮게 웃었다.
- “그 애도 한입 먹이니까 금방 조용해지더라.”
- “이제 곧 너한테 갈 수 있어.”
- “우리 자기의 생일, 같이 보내 줘야지.”
- “내가 제일 사랑하는 건 너잖아.”
- 툭.
- 휴대폰이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 쩍.
- 스크린에 금이 갔다.
- 마치 내 마음처럼.
- 나는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 역한 구토감이 목 끝까지 확 치밀어 올랐다.
- 결국 그대로 주저앉아 토해 버렸다.
- 미친 새끼.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다.
- 착각이 아니었다.
- 피스타치오로 잘못 안 게 아니었다.
- 처음부터 고의였다.
- 그 여자한테 가려고,
- 자기 친아들한테 알레르기 있는 걸 먹이다니.
- 사람도 아니었다.
- 나는 이를 악물고 한참이나 숨을 골랐다.
- 겨우 감정을 눌러 삼킨 뒤, 입가를 닦고 CCTV 영상을 더 앞으로 돌렸다.
- 날짜를 지난주 수요일로 맞췄다.
- 내가 출장 가 있었던 날이었다.
- 잠시 뒤, 현관문이 열렸다.
- 화면 속으로 한 여자가 들어왔다.
- 몸에 달라붙는 롱드레스를 입은 여자.
- 문세라였다.
- 그녀는 이민우의 팔을 자연스럽게 끼고 웃었다.
- 둘은 자연스럽게 입을 맞췄고, 그대로 거실 소파 위로 쓰러지듯 엉켜 들었다.
- 옷가지가 하나둘 바닥으로 떨어졌다.
- 그리고 조금 떨어진 아기 펜스 안에서는—
- 서준이가 난간을 붙잡은 채 울고 있었다.
- 처음엔 크게 울었다.
- 목이 터져라 울었다.
-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울음소리는 갈라졌고,
- 나중에는 거의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 그런데도 소파 위의 두 사람은 단 한 번도 아이를 돌아보지 않았다.
- 정말 단 한 번도.
- 아이 울음소리는 그저 시끄러운 소음쯤으로밖에 들리지 않는 듯했다.
- 거기까지 보고 나자, 더는 참을 수 없었다.
- “아아아악!”
- 비명이 터져 나왔다.
- 분노와 소름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 온몸이 덜덜 떨렸다.
- 차라리 내가 부서져 버릴 것 같았다.
- 내가 믿어 온 행복한 가정은
- 처음부터 정교하게 꾸며진 사기극이었다.
- 내가 사랑한다고 믿었던 남자는
- 다정한 남편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괴물이었다.
- 좋아.
- 이제야 다 끝났네.
- 이민우. 문세라.
- 너희 둘 다—
- 이번엔 내가 너희를 끝장낼 차례였다.
유료회차
결제 방식을 선택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