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나와 신의 세 아들
Haedis
Last update: 1970-01-01
제1화
- 내가 태어난 날, 헤라는 어머니의 산실에 강림했다.
- 또다시 혼인 서약을 저버린 제우스를 벌하는 대신, 갓 태어난 아이를 내려다보며 얼어붙은 돌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심판을 내렸다.
- “이 아이는 평생 사랑을 갈망하되, 끝내 사랑받지 못하리라. 운명으로 맺어진 사내가 이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해 스스로 선택하지 않는 한, 25살이 되는 날 고통 속에서 영혼이 갈기갈기 찢기리라!”
- 나는 제우스의 딸, 칼리스타.
- 그리고 헤라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죄인이었다.
- 언젠가 한 여사제가 내게 말했다.
- 신의 아들 세 명이 내 운명과 이어져 있다고.
- 그중 한 명과 혼인한다면, 저주가 내 정신을 집어삼키기 전에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 그로부터 24년이 흘렀다.
- 나는 지금 24살의 마지막 한 달을 보내고 있다.
- 하지만 아직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 저주가 나를 송두리째 집어삼키기까지 이제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 그리고 한때 가장 큰 희망을 걸었던 남자, 반드로스는 지금 아프로디테의 신전에서 세실리아와 혼례를 올리고 있었다.
- 신전 안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 나는 문밖에 서서 반드로스가 고개를 숙여 세실리아의 입술에 입 맞추는 모습을 지켜봤다.
- 세실리아는 아프로디테와 인간 남자 사이에서 태어났다.
-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웠지만, 그녀의 진짜 재주는 따로 있었다.
- 누구든 자신을 연약하고 순수한, 보호받아야 할 존재라고 믿게 만드는 능력이었다.
- 반드로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 3년 전, 반드로스는 경기장에서 창에 몸을 꿰뚫렸다.
- 사제들조차 그가 그날 밤을 넘기지 못할 거라고 했다.
- 나는 내 안에 흐르는 신의 피를 내어 주었다.
- 헤라의 저주가 영혼을 할퀴는 고통을 견디며, 반드로스를 죽음의 문턱에서 끌어냈다.
- 그때 그는 내 손을 꽉 붙잡고 맹세했다.
- “칼리스타, 네가 내 목숨을 살렸어. 오늘부터 절대 널 저버리지 않겠어!”
- 얼마 뒤, 세실리아는 눈물을 흘리며 내가 사내들을 시켜 자신을 욕보이려 했다고 말했다.
- 그날부터 반드로스는 내 말이라면 단 한마디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 신전 안에서 울려 퍼지는 혼례의 찬가는 점점 더 커졌다.
- 그와 동시에 의식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던 저주가 터져 나왔다.
- 나는 그대로 몸을 웅크렸다.
- 숨을 한 번 들이쉬는 것조차 고문처럼 괴로웠다.
- ‘결국 마지막 순간까지도 나를 선택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구나.’
- 나는 혼례식장을 등지고 신전 앞의 넓은 석조 대로로 향했다.
- 축하 행렬의 전차들이 빠른 속도로 오가고 있었다.
- 지금 한 발만 내디디면 모든 게 끝난다.
- 나는 눈을 감고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 그 순간, 코앞에서 말이 날카롭게 울부짖었다.
- 전차 바퀴가 내 옷자락을 스칠 듯 지나갔고, 동시에 억센 손이 나를 거칠게 잡아채 길가로 내동댕이쳤다.
- “칼리스타!”
- 남자의 성난 고함이 귓가를 때렸다.
- “죽고 싶어도 사람들 앞에서 죽지는 마! 네 탓에 무고한 마부가 제우스의 딸을 죽인 죄로 처형되는 꼴이라도 보고 싶은 거야?”
- 눈을 뜨자 오빠 테론이 서 있었다.
- 그 역시 나처럼 제우스의 자식이었다.
- 가족 중에서도 나는 그의 사랑을 가장 간절히 바랐다.
- 헤라의 분노 때문에 사람들은 늘 내 존재 자체를 오점으로 여겼다.
- 그런 내게 테론은 보호자이자 가장 든든한 남매였다.
- 그는 나를 위해 싸워 주었고, 세상 누구보다 자신의 여동생을 아껴 주겠다고 약속했다.
- 그러나 세실리아가 내가 사내들을 시켜 자신을 욕보이려 했다고 주장한 뒤부터, 테론은 단 한 번도 나를 여동생이라 부르지 않았다.
- 그는 나를 억지로 전차에 태우더니 도시 밖으로 거칠게 내달렸다.
- 그리고 물살이 거센 강가에 나를 내려놓았다.
- 내가 미처 중심을 잡기도 전에 테론이 내 뺨을 세게 후려쳤다.
- “죽고 싶었던 거지?”
- 그는 등 뒤로 흐르는 강물을 가리켰다.
- 그 눈에는 노골적인 혐오만이 가득했다.
- “여기엔 네 죽음에 휘말릴 무고한 사람도 없어. 그렇게 죽고 싶으면 여기서 죽어.”
- 뺨이 화끈거리고 귀에서는 웅웅 소리가 났다.
- 그래도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나도 모르게 물었다.
- “오빠, 왜 거기 있었어?”
-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 “세실리아의 결혼식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혹시… 내가 신전에서 나오는 걸 보고 걱정돼서 따라온 거야?”
- 내가 바라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 그런데도 우스울 만큼 질긴 희망이 가슴 한구석에서 버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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